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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 빠진 퍼즐 일본 화가들이었네

책 속으로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황정수 지음
이숲
 
744쪽에 달하는 목침만한 책은 술술 읽혔다. 저자의 단순한 호기심과 그것을 오랜 시간 일일이 손과 발과 눈으로 확인한 정성이 귀한 도판과 사진, 촘촘한 글로 결실을 맺어 흥미를 돋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애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저자는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일본 화가가 이 땅을 찾았을까.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어떤 작품으로 남겼을까. 우리 화단에 미친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지만 국내 미술사 연구에서 이 시기는 “커다란 블랙홀이 뚫려있”다고 할 정도로 연구 자체를 회피하고 도외시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하여 이 책은 근현대 한국 미술사라는 거대한 퍼즐 맞추기다. 아니, 퍼즐을 완성하고픈 저자의 퍼즐 조각 찾기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조각들을 찾기 위해 저자는 1922년부터 44년까지 23회에 걸쳐 열린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자 목록을 헤집고, 한국 사람과 풍경과 사물을 그린 일본인들의 화집과 엽서집을 뒤졌다.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경성공립중학교(현 서울고)·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 사범대) 등의 미술 선생님 명단도 빼먹지 않았다.
 
제국미술학교 교수 야마구치 호슌이 1932년 경성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시장’(부분). 두 폭의 병풍이다. [사진 이숲]

제국미술학교 교수 야마구치 호슌이 1932년 경성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시장’(부분). 두 폭의 병풍이다. [사진 이숲]

1911년 경성에 ‘양화속습회’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 강습소를 세운 야마모토 바이카이(山本梅涯)의 ‘눈 내린 풍경’이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위창 오세창 선생의 의뢰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전국에 31개 지부를 조직하고 300명이 넘는 관료 화가를 회원으로 삼은 ‘조선남화원’을 이끈 구보타 텐난(久保田天南), 조선미술전람회 전 회에 작품을 출품하며 조선 미술계 발전을 위해 헌신한 가토 쇼린(加藤松林), 우리 도자기와 공예를 깊이 사랑한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형제의 이야기와 남긴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을 이끈 최제우와 최시형의 마지막 처형 당하는 순간을 그린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의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는 충격적이다. 2015년 한 미술품 경매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그림들은 우리의 ‘민족정신’이 꺾이는 뼈아픈 현장이 일본인 화가에 의해 남겨졌다는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 인정하고 극복해야 하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야마구치 호슌(山口蓬春)이 1932년 경성에서 보고 느낀 것을 모티브로 그린 ‘시장’은 기교와 완성도, 품격이라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수작이다.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나란히 등장한 김기창의 ‘엽귀’와 가타야마 탄(堅山坦)의 ‘구(丘)’를 비교한 대목 역시 당시 화풍 대비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교토에서 미인화로 잘 알려진 야마카와 슈호(山川秀峰)가 저명한 네 명의 화가와 함께한 한 달간의 조선 여행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기생을 모델 삼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부인’은 색기 어린 요염한 게이샤와 달리 단정하고 후덕한 품격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가 조선의 기생을 대한 태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조선의 야만성을 대표하는, 가슴을 드러낸 여인 사진들이 대거 등장한 것에 대해 “외국인들의 잘못된 정보 인식과 일본인들의 배려 없는 식민지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퍼즐 조각이 아직 더 많이 필요하다.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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