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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영원한 결핍, 더 나은 삶을 향한 목마름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이제 좀 쉬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도, 다 잊고 휴가나 떠나자고 결심할 때도, 몸이 쉴 때조차도 마음만은 쉴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끝없는 갈망, 혹시 이렇게 쉬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인생이 예상보다 훨씬 짧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그런 결핍감과 목마름이 연말만 되면  ‘올해도 왜 이것밖에 이루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움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감정이 마음을 할퀼 때 나는 음악의 피신처로 도피한다.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욕망하는 우리 인간에게 음악 만큼 완벽한 피난처는 없는 것 같다. 언어는 가끔 사심없이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끊임없이 욕망과 결핍을 자극하는 폭주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리를 잠시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시켜, 선율과 리듬이 인도하는 무한한 감성의 세계로 이끄는 음악이야말로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명곡이 된다.
 
삶의 향기 12/08

삶의 향기 12/08

현악사중주나 교향곡은 오직 멜로디와 리듬만으로 자연스레 ‘언어로부터의 탈출’을 이끌어주지만, 가사가 있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무한한 엑스터시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음악도 있다. 예컨대 퀸의 명곡들이 그렇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나는 학창시절 테이프가 늘어지고 CD가 튀도록 듣고 또 들었던, 입시지옥의 고통과 성장의 아픔으로부터 내 영혼을 지켜주었던 퀸의 명곡들을 완전히 새로운 곡처럼 다시 듣게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은 가슴이 뻥 뚫리도록 솔직하고도 시적인 가사와 완벽히 어우러짐으로써, ‘장조’일 때도 한없이 슬프고 ‘단조’일 때도 한없이 희망적인 음악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역설을 일구어낸다. 나는 사랑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단발머리 여중생시절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사랑의 설렘과 절망을 온전히 이해했으며, ‘돈 스탑 미 나우’를 들으며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열정의 날카로운 본질을 이해했다. 퀸의 음악에는 삶에 대한 사랑, 사랑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꿈틀댄다. 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지나친 욕심이 씻겨나가고 오직 ‘사랑하는 존재’로서 내 삶을 가꾸어야겠다는 든든한 결심이, 불안에 휩싸인 영혼을 달래준다.
 
암투병 속에서도 생의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 김진영의 유작 ‘아침의 피아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모든 시끄러운 일상들이 문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오로지 사랑의 대상들만이 남았다. 세상이 사랑의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내 심장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비수로 꽂히는 듯한 행복한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 이 세상이 ‘내가 사랑을 쏟아야 할 대상들’과 ‘소란하고 무의미한 소음들의 대상들’로 나뉘어 있다는 것, 나는 오직 사랑의 대상에만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더욱 맹렬하게, 사랑해야 할 대상들을 향해 온 힘을 집중함으로써 쓸데없는 집착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야 한다. 이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남은 생의 고통을 온전히 견디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샘솟는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는 울고불고 하지말자고, 슬픔에 쏟아부을 시간이 없다고, 오직 사랑할 시간이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있는 힘껏, 저마다의 삶을 더 많이 토닥이고, 쓰다듬고, 마침내 포옹할 수 있기를.
 
‘올해도 이렇게 가버리는구나’라는 생각때문에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철학자 김진영의 아름다운 문장을 선물한다.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사랑할 대상만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는 일과 사랑할 수 있는 삶이 있는 한, 우리는 아직 괜찮으니까.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하며 슬픔에 빠진 나를 힘껏,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게, 온 힘을 다해 꼭 껴안아주고 싶은 오늘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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