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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종이인형 같은 인물 단순화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셰익스피어의 사극과 4대 비극은 400년 묵었는데도 늘 새롭다.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절대적 옳고 그름도,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는 현실 정치판이 묘사되니까. 더 놀라운 건, 이런 연극을 셰익스피어 시대에 귀족·평민이 함께 봤다는 것이다.  귀족은 비싼 좌석을, 서민은 값싼 무대 앞 입석을 이용했지만,  입석 관객도 중요했기에 셰익스피어는 그들 취향에 맞는 농담을 심각한 비극에도 넣곤 했다. 이런 문화가 훗날 영국의 무혈 시민혁명의 바탕이 된 게 아닐까.
 
반면에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이 즐기는 문학·예술은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탁월한 문자 한글이 생겼는데도 양반은 고차원의 사상을 평민이 접근하기 힘든 한문으로 주로 썼고, 서민문학인 한글소설과 판소리는 정치를 다루지 않거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선악구도로 풀어냈다.  주인공은 유교적 도덕의 화신, 즉 효자·충신에다가 청빈하며, 악역은 그 반대다. 이 전통은 21세기 우리 대중문화로까지 이어져서, 예외들도 있지만 많은 사극이 복잡한 정쟁을 단순 선악구도로 재현해왔다. 이제 유교적 충성의 대상은 임금 대신 국가·민족이 되어 ‘주인공=선=민족주의자’와 ‘대립상대=악=외세와 결탁하는 자’로 그려지고, 그 공식에 짜맞추기 위해, 실존인물들과 정치상황들이 종이인형처럼 납작하게 평면화되고 왜곡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착한 민족주의자여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황당한 사례 중에, 복합적·논쟁적 인물 기황후를 애국애족 순정파로 둔갑시킨 사극이 기억나는데,  그 외에도 많다.
 
생각해 보면 EBS의 북한 지도자 김정은 종이인형 교구도 같은 맥락이다. 교구 설명만 보면 그는 “세계 평화로 나아가는 새로운 지표를 마련”한 정상국가의 선한 지도자다. ‘우리 민족끼리’ 잘 지내는 것이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 등등보다 중요한 민족지상주의 입장에서 그는 착하고 쿨한 지도자로 단순화돼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와 대화해야 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그를 미화해야 할까? 교구 설명은 이렇게 썼어야 한다. “3대 세습으로 ‘최연소 국가원수’가 됐으며, 그 입지를 다지기 위해 대규모 숙청을 했고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며, 여러 번 우리에게 무력도발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우리가 협상해야 하는 인물이며, 정치란 건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게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다면, 그런 교구를 아예 만들지 말았어야 하고 말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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