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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원희룡과 슈뢰더

기자
김종윤 사진 김종윤
 VIP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겨울의 첫 자락이 성큼 몰려 왔습니다. 살결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으스스한 게 바닥으로 가라앉은 연말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거리에서는 송구영신의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기 힘듭니다. 오히려 걱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서서히 밀려오는 경기 침체의 먹구름, 겨울을 습격한 미세먼지의 고통 등 현실은 뿌옇고 마음은 낮게 깔린 구름 마냥 무겁기만 합니다.  
 
이럴 때 제주에서 들려온 소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공론조사위원회의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의 국내 첫 개설을 허가하기로 했습니다. 외국인만 진료하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중국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은 2015년 12월 승인됐습니다. 이 대목에서 영리병원의 효과와 장단점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녹지국제병원을 둘러 보는 원희룡 지사. 최충일 기자

녹지국제병원을 둘러 보는 원희룡 지사. 최충일 기자

다만 저는 지도자의 자세에 조금이나마 다가가려 합니다. 영리병원 설립은 워낙 민감한 문제여서 반대 목소리도 컸습니다. 올 2월에 일부 시민단체와 제주 도민은 숙의민주주의 조례에 근거해 제주도에 공론조사를 청구했습니다. 원 지사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10월에 나온 공론 조사 결과는 ‘개설 불허’였습니다.  그런데도 원 지사는 “공론조사 결과를 존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담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영리병원은 공공의료체계를 흔들지 못할 것"이라며 "의료비가 폭등하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원 지사의 정치적 생명에 치명상이 될까요? 정반대로 큰 자산이 될까요?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이는 유권자(국민)가 판단할 몫입니다. 일일이 따지려 하지 않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리더의 철학입니다. 당장 원 지사에게 비난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원 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취지를 강조했습니다. 의료관광과 같은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해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이 법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외국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독일 사회민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결단입니다. 2000년대 초반 독일은 500만 명이 넘는 실업자와 50년간 손보지 않은 사회보장 제도 등 난제가 수두룩했습니다. 슈뢰더가  2002년 재집권하자마자 노동개혁, 연금 개혁, 보건 개혁으로 무장한 ‘어젠다 2010’을 추진한 이유입니다. 사민당 지지층인 노동자와 취약계층 등의 강한 반발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잘 알다시피 사민당은 2005년 선거에서 메르켈 현 총리가 이끌던 보수연합인 기민기사연합에 정권을 내주었지만, 슈뢰더가 추진한 개혁의 성과는 독일을 유럽 최대 경제 강국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슈뢰더는 한국의 한 포럼에 참석해서 ‘어젠다 2010’에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젠다 2010’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국민을 열심히 설득했지만 조금 모자랐다”고 말했습니다. 슈뢰더는 메르켈을 맹추격했지만 부족했습니다. 득표율 차이는 1%포인트였습니다. 가까스로 승리한 메르켈은 후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독일이 유럽의 리더로 부상한 건 슈뢰더의 용기 있고 과감한 개혁 덕분이었습니다."
 
지도자의 신념은 어떠해야 합니까. 정파와 정당의 이익이 우선입니까,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우선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쉽습니다. 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답대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 정치의 벽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철학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에 담겨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이런저런 부작용으로 비틀댑니다. 이럴 때는 혁신 성장의 가치가 더 부각돼야 합니다. 
 
그런데 혁신 성장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요. 혁신하려면 기존의 관행과 막힌 사고의 틀을 깨야 합니다. 규제 완화나 구조 개혁은 그래서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혁신의 싹이 움튼 게 있나요? 원격의료나 차량ㆍ숙박 공유서비스 같은 도전은 구(舊)질서 수호자들의 포위에 고립돼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습니다.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의 포장지에 그친다는 비아냥까지 나옵니다. 
 
리더는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의 결단이 결여된 시대에 원 지사의 결정이 눈에 띄는 이유입니다. 설령 여기에 정치적 목적이 끼어 있더라도 "미래를 보겠다"는 그의 말은 울림이 있습니다. 영리병원 허용이 제주도,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보겠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K팝 유학생이 몰려오는데 이들을 꽉 잡을 ‘한 방’이 없는 현실을 전했습니다.  ‘코리아 팬덤’ 이 뜨겁지만, 글로벌 1020을 위한 맞춤형 홍보나 국가 브랜드 홍보가 미흡한 현실이 개선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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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아십니까. 독일식 일·학습병행 이원 진로교육시스템입니다. 기업이 대학과 협약을 맺어 실력 있는 인재를 확보한 뒤 직업 훈련과 대학 교육을 병행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에도 도입돼 서서히 활성화하는 중입니다. 현장을 살펴보고 개선책 등을 이번 호 중앙SUNDAY에서 고민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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