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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호남선은 왜 전주 비켜갔나···'유지 반대설'의 진실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지난 5일 전주종합경기장 내 그의 사무실에서 본인이 국역한 『전주부사』를 보고 있다. 일제 강점기 전북 역사를 다룬 이 책과 『군산개항사』 등에 따르면 100여 년 전 전주 유지들은 관 주도의 호남선 철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조선총독부조차 '빈껍데기'라고 한 사설 철도 기구의 주식 매입을 거부했다. 김준희 기자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지난 5일 전주종합경기장 내 그의 사무실에서 본인이 국역한 『전주부사』를 보고 있다. 일제 강점기 전북 역사를 다룬 이 책과 『군산개항사』 등에 따르면 100여 년 전 전주 유지들은 관 주도의 호남선 철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조선총독부조차 '빈껍데기'라고 한 사설 철도 기구의 주식 매입을 거부했다. 김준희 기자

 
"일제 시대 전주 유지(有志)들이 호남선을 반대해 철도가 전주를 비켜 익산을 통과하게 됐다. 그 바람에 전주 발전이 늦어졌다."
 
전북에는 이 같은 속설(俗說)이 60년 넘게 전해 내려온다. 학계에 따르면 1950년대 초반 전북 지역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고, 이후 여러 사람들이 인용하면서 아예 통설(通說)로 굳어졌다. 
 
전북에서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논란이 될 때마다 '호남선 전주 우회'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는 논리가 동원된다. 최근에는 (주)자광이 전주의 '마지막 노른자 땅'인 효자동 대한방직 터를 개발하는 문제에 이 논리가 등장했다. '143층 익스트림 타워'와 쇼핑몰·호텔 등을 짓는 2조원 규모의 계획을 반대해서는 지역 발전을 앞당길 수 없다는 의미다.  
 
호남선의 전주 우회는 얼마나 사실(史實)에 부합할까. 향토사학자인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은 고증(考證)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다.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5일 사무실에서 본인이 국역한 『전주부사』를 보고 있다. 김준희 기자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5일 사무실에서 본인이 국역한 『전주부사』를 보고 있다. 김준희 기자

이 원장에 따르면 전주 유지들은 관(官)이 주도한 호남선 철도를 반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사설(私設) 철도 기구의 주식 매입을 거부했다. '사설 호남선'은 당시 조선 총독부가 '빈껍데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실체가 없었다. 
 
이 원장은 그 근거로 『전주부사』와 『군산개항사』 를 들었다. 『전주부사』는 1932~1942년 전주부(현 전주시)가 전주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원장이 2004년 일본어로 기록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2008년 발간했다. 『군산개항사』는 1925년 군산에 거주한 일본인 야수다카 세이키(保高正記)가 당시 군산 지역 항만·철도 현황 등을 서술한 책이다.
    
이 원장을 지난 5일 전주 덕진동 종합경기장 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호남선 반대'를 둘러싼 진실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지들이 반대했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배경은 뭔가.
"그간 이 속설의 진위(眞僞)를 규명한 사람이 없었다. 1950년대 초반 육군보병학교가 전주 근방에 들어오려고 했다. 전주 유지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육군보병학교가 광주 상무지구로 넘어갔다. 광주가 이것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일부 지식인들이 육군보병학교처럼 '발전의 호재'였던 호남선도 전주 유지들이 무턱대고 반대했다는 논리를 폈다."  
  
1925년 야수다카 세이키(保高正記)가 쓴 『군산개항사』. "조선인끼리 철도 이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서오순과 유길준 등이 '호남선 철도 특허를 받았다'며 주식 모집에 착수했다. 이건 사익을 위한 것이지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준희 기자

1925년 야수다카 세이키(保高正記)가 쓴 『군산개항사』. "조선인끼리 철도 이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서오순과 유길준 등이 '호남선 철도 특허를 받았다'며 주식 모집에 착수했다. 이건 사익을 위한 것이지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준희 기자

-'호남선 반대'의 진실은 뭔가. 
"1912년 봄 처음으로 사립 호남철도기성회 회장 서오순이란 사람이 전라북도장관(현 전북도지사)인 이두황을 찾아 와 '(미쓰비시에서 앞장서서) 사립 호남선 철도를 놓으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미리 전주에 있는 유지들이 1주당 액면 50엔(500원)짜리 주식을 샀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부탁을 받은 이두황이 전주면(현 전주시) 참의원(시의원)을 중심으로 유지 10여 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당시 토호이자 지배층이었다. 이 자리에서 서오순이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주식 구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기순과 유두환 등 참석자 전원이 반대했다. 그러자 이두황이 탁자를 치며 '전주는 결국 망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호남선 철도는 관설(官設)로 전주를 제외한 이리(현 익산) 쪽으로 1914년 완공됐다. 이 내용은 『전주부사』에 기록돼 있다. 이게 호남선 철도의 전모(全貌)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시 개인이 호남선 철도를 추진했다는 사실은 감추고 '전주 유지들이 호남선을 반대했기 때문에 전주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이다."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국역한 『전주부사』 중 1912년 전주 유지들이 사립 호남선 철도를 추진하던 서오순의 주식 매입 제안을 거절한 일화가 나오는 대목. 김준희 기자

향토사학자 이인철(91) 체육발전연구원장이 국역한 『전주부사』 중 1912년 전주 유지들이 사립 호남선 철도를 추진하던 서오순의 주식 매입 제안을 거절한 일화가 나오는 대목. 김준희 기자

-전주 유지들은 왜 호남선 철도 주식 매입을 거부했나.  
"일본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하려고 철도를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자국 농민과 사무라이(봉건 영주의 사병)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 무렵 군산과 이리(익산) 지역에 있던 일본인 대지주들이 '호남선 철도 유치 공작'을 벌였다. 군산에선 오오쿠라 농장주 오오쿠라(大倉)가, 이리 지역은 호소가와 농장주인 호소가와(細川)가 자기 땅에 철도가 지나가길 바랐다. 반면 전주는 철도 유치 공작을 벌인 일본인이 없었다. 그럴 만큼 넓은 토지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다. 이두황이 초청한 사람들은 군산과 이리 등을 오가던 상인(미곡상)들이었다. 이들은 정부가 호남선 철도를 1907년부터 관 주도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때문에 사설 철도는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서오순은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기성회는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기구를 내세워 주식을 사라고 하니 당시 전후 사정을 잘 아는 전주 유지들이 믿지 못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객관적 근거가 있나.  
"『군산개항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1897년 경부선(서울-부산)과 경의선(서울-신의주) 부설 허가권을 일본과 프랑스가 각각 가져간 가운데 조선인끼리 철도 이권을 다퉜다. 이 과정에서 서오순과 유길준 등이 '호남선 철도 특허를 받았다'며 주식 모집에 착수했다. 이건 사익을 위한 것이지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라는 내용이다. 미쓰비시가 호남선 철도를 측량했다는 것도 정부가 공인한 사항이 아니다. 책에는 '서오순과 유길준 등이 농상공부장관 송병준을 등에 엎고 추진한 사설 철도 음모가 총독부에 알려지자 일본인 농상공부차관 미야오카(官岡)가 강하게 항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미야오카는 이 사실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에게 보고했고, 깜짝 놀란 총독은 미쓰비시의 측량을 즉각 중단시켰다."  
 
-서오순과 이두황이 전주 유지들을 속인 건가.

"사설 호남선이 전주를 지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이두황 말대로 서오순이 제시한 주식을 전주 유지들이 샀다면 사기를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두황은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을 무력으로 진압한 토벌대 대대장(초토영군)이었다. 정부에서 철도를 놓는다고 했는데 전주 유지들이 반대했다면 정말 나쁜 사람들이지만, 당시 서오순이 한 얘기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고, 유지들은 이를 반대한 것이다. 이두황이란 악질 친일파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어 반대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전북도장관(현 도지사)을 지낸 이두황.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동학혁명군을 무력으로 진압한 토벌대 대대장(초토영군)이었다. 김준희 기자

일제 강점기 전북도장관(현 도지사)을 지낸 이두황.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동학혁명군을 무력으로 진압한 토벌대 대대장(초토영군)이었다. 김준희 기자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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