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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습격 노인, 그에게도 억울한 사연은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사법부 수장 ‘화염 공격’ 사건을 들여다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가 남모씨의 화염 공격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가 남모씨의 화염 공격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7일 출근길에 화염 공격을 받았다. 일흔넷의 남모씨가 500ml 페트병에 담긴 시너에 불을 붙인 뒤 김 대법원장이 탄 차에 뿌렸다. 차 문 바깥쪽에 불이 붙었으나 대법원 정문을 지키던 청원경찰관이 곧바로 꺼 다친 사람은 없었다. 건국 이후 처음 발생한 대법원장 습격 사건이다. 법관들의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한 분노 표출 또는 김 대법원장을 비롯한 이른바 사법부 ‘신(新)주류’를 겨냥한 시위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런 일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송사(訟事)에 대한 개인적 불만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도대체 무엇이 70대 노인을 ‘대법원장 테러범’으로 만들었을까. 그의 행적을 추적해 봤다.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 더군다나 상대가 대법원장이다. 사연이 무엇이든 남씨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의 행적을 좇은 것은 그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범죄 경력이 없는 70대 노인에게 그런 극단적 행위를 유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보도와 달리 ‘화염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경찰이 ‘화염병 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법에 화염병은 ‘용기에 인화 물질을 넣고 발화장치 또는 점화장치를 붙인 물건’이라고 규정돼 있다. 남씨가 들고 있던 페트병에는 통상 솜이나 천으로 만드는 발화장치가 없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남씨가 거주해 온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동창리 주민과 그가 다닌 마을 교회 교인의 말, 경찰 조사 내용 등에 따르면 그는 1993년에 그곳으로 이주했다. 전에는 수도권에서 살았다. 베트남 전쟁에 사병으로 참전한 이력을 갖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교회 버스 기사로 일하다 교회 수련회 때문에 내촌면에 오게 됐고, 그때 이사를 생각했다. 집을 팔아 약 8000㎡(2400평)의 땅을 샀다. 그 뒤 약 7년 동안 밭농사를 지었다.
 
문제는 돼지 사육에서 비롯됐다. 2000년 강원도청은 ‘토종 흑돼지’ 장려 사업을 벌였다. 자금 조달을 도와주고 보조금도 줬다. 남씨도 그 일에 뛰어들었다. 홍천군·고성군 등에서 10여 집이 손을 들었다. 2001년 말에 흑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그는 1년 뒤쯤 ‘친환경 축산’에 도전했다. 2007년에 ‘무항생제 축산’ 인증을 받았고, 2년 뒤에는 ‘유기농 축산’까지 인정받았다. 흑돼지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였다. 유기농 축산은 유기농 방식에 따라 생산된 먹이만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뒤 남씨는 농협중앙회장 표창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성공 사례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유기농 배합사료를 만드는 설비와 돈육을 잘라 판매용으로 포장하는 시설을 마련하고, ‘너브내 머루 흑돼지’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사육 원가가 높아 값이 비쌌다. 판매망 확보도 쉽지 않았다. 그가 운영했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2월(2013년) 매출 10만8000원, 농장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글이 있다. 그렇게 힘겨워하던 때 희망의 빛이 나타났다. 한 지상파 방송이 농장을 소개했다. 온라인 주문이 크게 늘고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판매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013년 봄 상황이다. 그가 다닌 교회의 신동신 목사는 “‘이제는 뭔가 되려나 보다’하는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런데 그해 8월 남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친환경 생산 인증 업무를 관장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유기농 인증 연장을 거부했다. 이 인증은 1년마다 갱신하게 돼 있는데, 부적합 판정이 났다. 문제는 미강(쌀 도정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있었다. 남씨가 사료에 섞은 미강이 100% 유기농산물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농산물품질관리원 심사 결과였다.
 
남씨는 집에서 약 20㎞ 떨어져 있는,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된 곡물만 취급하는 미곡처리장에서 미강을 조달했다. 그래서 별문제 없이 3년간 인증이 연장됐다. 하지만 그해엔 조사원이 그 미곡처리장에서 ‘유기농 쌀’뿐만 아니라 ‘무농약 쌀’도 도정(전체 물량의 15.76%)한다는 것을 확인해 유기농 인증에 적합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냈다. 무농약은 농약은 쓰지 않지만 화학비료는 쓰는 것을, 유기농은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 뒤 남씨는 추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돈육 판매가 막혔고, 시설 등에 투자한 융자금 상환 압박에도 시달리게 됐다. 2015년 농장 일에 매달려 온 그의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농장 전체가 경매로 넘어갔다. 파산한 남씨는 농장 앞에 높인 컨테이너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농산물품질관리원 조사원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남씨가 살던 무허가 거주지(사진 왼쪽). 컨테이너 박스를 비닐로 덮었다. 오른쪽은 남씨가 흑돼지를 길렀던 농장. [이상언 논설위원]

남씨가 살던 무허가 거주지(사진 왼쪽). 컨테이너 박스를 비닐로 덮었다. 오른쪽은 남씨가 흑돼지를 길렀던 농장. [이상언 논설위원]

2000평의 땅을 보유한 귀농인에서 대법원장 테러범이 되기까지, 그사이에는 세 개의 주요 변곡점이 있었다. 하나는 흑돼지 사육이다. 홍천군청 관계자는 “토종 흑돼지는 성장 속도가 더디고 다 자라봐야 개량종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아 사실 사업성이 없었다. 강원도청이 추진한 흑돼지 키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금은 예외 없이 모두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사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촌면의 한 주민은 “농촌에는 나라에서 실상을 모르고 만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빚만 떠안게 된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다른 한 포인트는 유기농 인증 심사 과정이다. 남씨가 소송에서 주장한 쟁점 중 하나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 취소 통보를 하기 전에 사전 통지나 의견 제출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미강에 대해 남씨가 항변하거나 유기농산물임을 입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남씨에게 그런 기회가 제공됐다면 설사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그는 덜 억울해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검사 기관의 입장이라 ‘가이드’ 역할을 하기 어렵다. 법적으로 그런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조건이었는데 왜 앞선 세 차례는 연장이 됐느냐”는 질문에는 “서류가 보관돼 있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또 하나의 변곡점은 남씨가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때다. 1·2심에서 패소한 그는 상고한 뒤 대법원 앞에서 석 달간 1인 시위를 했다. 그리고 상고심 기각 결정이 나자 대법원장 차에 시너를 뿌렸다. 남씨가 시위를 이어갈 때 법원에서 누군가가 나와 이유라도 들어봤을까. 지난 4일 대법원에 물어봤다. 법원 측은 “민원상담관이 면담하게 돼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수 시간 뒤 답변이 바뀌었다. “확인해 보니 민원상담관이 다른 일이 많아서 남씨를 만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씨는 정부가 무책임하게 벌인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런데 농산물품질관리원이라는 국가기관은 냉담했고, 법원은 노숙하며 시위하는 그의 하소연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이런 일들 때문에 점점 ‘분노 국가’가 돼가는 것은 아닐까,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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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