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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법 대신 억지 쓴 공정위원장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정거래위원장이 뭐하는 자리인지 찾아봤다. 공정거래법 제1장 제1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중략)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목적이라고 되어 있다. 어디에도 정책 실패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편의점 본사 간 담합을 허용해도 좋다는 구절은 없다. 프랜차이즈와 관련해 공정위원장이 보호할 대상은 ‘경쟁과 소비자’라고 법이 못 박아 놓은 것이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거는 대로 코걸이, 귀걸이

그런데도 김상조 위원장은 편의점 업계의 자율 규약 마련에 앞장섰다.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편의점 과밀 해소를 위해 공정위가 잘 뒷받침하라”고 지시하자 부랴부랴 당정 협의를 시작했다. 그래놓고 50~100m 이내 신규 출점을 사실상 금지하는 거리 제한을 밀어붙였다. 공정위는 18년 전 ‘기존 편의점 80m 이내에는 신규 출점하지 않는다’는 업계 협정을 담합이라고 판정했다. 당시 공정위 판정에 따라 협정은 폐기됐다. 김 위원장도 그런 입장이었다. 그는 지난 7월 업계가 이번 규약안을 가져왔을 때 "고민스럽다. 담합의 소지가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확한 거리를 명시하지 않았으니 담합이 아니다”고 했다. 그때는 (담합이) 맞고 지금은 틀리다니, 참 군색한 변명이다.
 
석연찮은 건 또 있다. 4일 열린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 선포식’에선 6개 편의점 대표를 압박했다. 김 위원장과 여당 유력 정치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율 규약 이행 선언문’에 한 사람씩 사인하도록 했다. 김 위원장은 "규약을 충실히 실천한 가맹본부(편의점)는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당근도 줬다. 채찍과 당근이야말로 강압의 증거다. 김상조는 공정위의 권한 밖 일을 한 것이다. 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 따라) 담합의 정의가 모호해졌다”고 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평소 "편의점 과밀화로 자영업자인 가맹점주가 수익성 악화로 고통받고 있다”며 "담합을 피하면서 신규 출점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하라”는 특별지시를 듣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조치로 편의점 업계는 과당 경쟁의 부담을 피하게 됐다. 3만8000여 가맹점주들도 한숨 덜게 됐다. 패자는 따로 있다. 신규 창업을 꿈꾸던 미래의 가맹점주와 물건값 상승을 감내해야 할 소비자다. 편의점 업계도 편치만은 않다. 한때 4%가 넘던 영업이익률은 올해 1%대로 주저앉았다.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승자는 엉뚱한 데서 나올 수 있다. 공정위가 만든 칸막이의 결과는 누구나 안다. 토종의 몰락이다. 커피가 좋은 예다. 스타벅스만 승승장구할 뿐 토종 커피 체인은 모두 쪼그라들고 있다. 직영점만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공정위의 ‘500m 거리 제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업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자영업의 몰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법은 진작 나와 있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는 "퇴직을 늦춰도 되는 사회 시스템, 퇴직 후에도 자잘한 일거리가 주어지는 사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노동시장”이라고 했다. 실천은 어렵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문 교수는 창업 성공률이 높고 선택지가 많은 프랜차이즈 활성화를 그중 하나로 꼽았다. 규제를 풀고 경쟁을 부추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반대로 했다. 기존 상권을 국지적 독점으로 보호하고 신규 진출을 막았다. 기득권 보호로는 사라지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도, 빈곤을 막을 수도 없다. 물론 자영업의 몰락을 멈출 수도 없다. 공정위원장이 딱히 몰라서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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