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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북정책에 좌·우가 왜 필요한가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지금부터 7년 전쯤이다. 경제자문회의인데도 대통령은 경제보다 북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을 제재·압박한 결과 북한의 불안정성이 매우 커졌다는 취지였다. 자신의 최대 업적이 마치 북한 길들이기에 성공한 것으로 믿는 듯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 북한은 중국에 광물을 수출해 떼돈을 벌고 있었다. 북한 무역 자료만 확인하면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공허한 이념으로 눈이 가려진 듯 허공만 때리는 대북정책이 보수 정부 내내 집행됐다.
 
지난해 대선 후 진보 진영의 유력 정치인이 참석한 세미나에 갔었다. 북한 경제가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에 제재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서도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대북제재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같은 민족에 대한 제재는 진보의 가치와 맞지 않습니다.” 진영은 다르지만 그의 눈도 가려져 있었다. 가치로 포장됐을 뿐 이런 진보는 이념적 몽상에 가까웠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러나 교훈은 얻어야 한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전 한국이 북한과 더 교류하고 경협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전과 같은 식의 경협이 아니라 북한 시장에 보다 전략적으로 관여하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고, 제도 개선을 조건으로 개성공단 확장과 아울러 다른 특구 사업도 했으면 어땠을까. 지난 정부의 고위 인사도 이런 제안에 다 동의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교수님, 지금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을 어떻게 설득하지요?” 가야 했던 길을 남남갈등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가 가로막았다.
 
그 결과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를 크게 키워 놓아야 할 시기를 허비했다. 이 상태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자 북핵 문제는 바로 국제문제가 됐다. 북한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한 중국이 제재의 키를 쥔 상태에서 북핵 문제는 미·중 관계와 얽혀 버렸다. 우리는 중국 눈치를 보고 미국의 영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사드로 중국에 얻어맞고 미국 대통령의 한밤중 트위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김병연칼럼

김병연칼럼

한반도에 전쟁을 막은 것은 진보의 가치가 아닌 냉철한 전문성이었다. 2016년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발효됐고 중국도 2017년 3월부터 제재에 적극 동참했다. 결국 올해 초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에 나왔다. 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타격한 경제 제재와 미국의 군사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만약 진보 일각의 주장처럼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제재를 해제하고 김정은을 선의로 대했다면 전쟁이란 지옥문이 열렸을지 모른다.
 
최근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보이지 않자 대북정책은 다시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듯하다. 그러나 진보는 ‘무조건 경협’을, 보수는 ‘오로지 제재’를 외치면 비핵화는 실패할 것이다. 경협이나 제재는 가치가 아니라 정책 수단이다. 정부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경제 상황에 맞게 쓰듯이 경협과 제재도 그 조건과 효과를 보고 실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북제재를 확실히 유지하는 것이 비핵화를 위해 필수다. 그러나 이로써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미국은 대북제재 유지 외에 다른 구상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움직이지 않는 미·북 사이에 끼여 마음이 급한 정부는 남북 경협이나 외교를 통해 미국을 우회 압박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불신만 초래할 악수(惡手)다.
 
미국을 움직이려면 실력에 입각한 정공법이 답이다. 미국 주류는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북한 경제의 변화도 잘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김정은이 통제하는 사회주의 철옹성 국가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정은이 경제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북한 내부 레버리지를 활용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실증적 근거에 입각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기초로 한·미가 핵심적인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한에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명확히 해서 북한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성과 경륜을 갖춘 실력자가 우리 사회에 없지 않다. 그러나 ‘진보의 가치’는 실력보다 이념적 정체성을 따져 묻는 듯하다. ‘우리 민족끼리’와 ‘무조건 경협’을 외쳐야만 진보인가. 한반도를 살리자는 대북정책에 좌우가 왜 필요한가.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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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