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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양대 조폭두목 김유태, 사회복지학과 새내기 됐다

김유태씨가 지난 3일 부산 동구 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독거노인에게 전달할 일주일치 반찬과 간식 등을 준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유태씨가 지난 3일 부산 동구 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독거노인에게 전달할 일주일치 반찬과 간식 등을 준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칠성파와 함께 부산 양대 조폭(조직폭력)으로 꼽힌 유태파 두목 김유태(62)씨가 부산경상대 사회복지학과 19학번 새내기가 됐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비영리 봉사단체를 설립하려는 꿈을 이루고자 대학에 진학했다. 수시(만학도 전형)로 합격했다. 그는 중졸로 2018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마쳤다.      
 

2008년 4번째 수감 중 봉사로 여생 보내기로 결심
2015년 봉사회 결성,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봉사
60세 넘어 방통고 졸업 하고 사회복지사 되려고 대학 진학
비행 청소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도자 되고파

40년간의 조폭 생활과 9년간의 옥살이를 청산하고 사회복지사로 인생 제2막을 시작하려는 김씨를 지난 3일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응할지 고심이 많았다”는 그는 “언론에 공개돼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마음먹은 것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담배도 금연을 주위 사람에게 알리니깐 끊게 되더라”고 했다. 그는 60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각목을 잡던 그의 투박한 손에는 반찬 통이 들려 있었다. 그는 어묵과 두부, 콩나물, 돼지 김치찜을 꾹꾹 눌러 담았다. 독거노인에게 줄 도시락이다. 반찬은 그가 손수 마련했다. 도시락을 싸자마자 그는 이날 오후 1시부터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해 배달했다. 30가구를 방문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김씨는 3년 전 도시락을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6월 ‘더불어우림 숲 봉사회’를 만들고 그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다. 회장을 맡은 그는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회원 가입을 권했다. 현재 봉사회원은 23명. 25세 주점 종업원부터 75세 건물주까지 연령·직업도 다양하다. 회비와 후원금으로 매주 월요일 30명의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다. 한 달에 200만~300만원 정도 들어간다.   
 
김씨가 봉사활동을 결심한 건 오로지 가족 때문이다. 그는 “2008년부터 3년간 교도소에 있으면서 80대 노모가 돌아가실까 봐 노심초사했다”며 “장성하게 자란 자녀와 손주도 눈에 아른거렸다. 출소 이후에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출소 후 방황하던 그는 부산 동구 적십자회장을 했던 외사촌 동생을 따라 우연히 봉사활동을 나갔다. 조폭인 줄 모르고 자신을 반기는 노인을 보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동구 일대 독거노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3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단 한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김씨. “기다리는 어르신을 생각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월요일은 도시락 배달을 갑니더. 2016년 가스레인지 불을 켜두고 잠이 든 노인 집을 찾았다가 불을 끈 경험을 한 이후로는 사명감까지 생겼습니더.”
 
김씨 가족은 그의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반찬 요리는 김씨의 첫째 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한다. 반찬 재료 손질은 아내의 몫이다. 아내 정보영(62)씨는“남편이 착한 마음을 먹은 것 자체가 고맙다”며 “천성이 착한 사람인데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조폭이 됐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1956년 부산 동구 범일 5동에서 태어난 김씨는 중학교 시절 레슬링 선수를 하다 조폭 선배 눈에 띄었다. 1974년 고등학교 중퇴를 하고 당시 ‘용길파’ 조직에 가입했다. 198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유태파를 결성하고 조폭 두목이 됐다. 그해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이후에도 3번이나 더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1978년 아내를 만났지만, 처가댁의 반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아이 3명을 낳고서야 1991년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막내아들을 낳아 현재 2남 2녀의 자녀가 있다. 손주는 3명이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비행 청소년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봉사만큼 쉬운 게 없습디더. 봉사는 취미고, 강의하는 지도자가 되는 게 최종 목표입니더. 제가 걸었던 음지의 길을 비행 청소년이 되밟지 않아야 하니깐요.”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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