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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⑨] 성폭행 연기 충실했다던 조덕제는 왜 유죄 받았나...판결 추적해보니

 
재판이 끝났지만 반민정(오른쪽)과 조덕제(왼쪽)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자는 두 배우에게서 수십여개의 소송자료를 받아 재판 상황을 구성했다. [MBC '당신이 모르는 페이크' 캡처]

재판이 끝났지만 반민정(오른쪽)과 조덕제(왼쪽)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자는 두 배우에게서 수십여개의 소송자료를 받아 재판 상황을 구성했다. [MBC '당신이 모르는 페이크' 캡처]

 
“문제 영상 전체를 공개합시다,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배우 조덕제(50)가 지난달 28일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영화 ‘사랑은 없다’ 성폭행 씬 촬영 도중에 배우 반민정(38)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란 자신의 ‘무죄’입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걸까요? 만일 가장 공정해야 할 사법부가 무고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만들었다면, 이는 사법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일 겁니다.

 
반대로 대법원의 판결이 정당했어도 큰 문제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인 반민정이 되려 가해자로부터 공개 비난을 받고 있고, 끔찍했던 피해 장면이 담긴 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하라는 압박에 처해 있다면 그 또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중앙일보는 이 사건의 흩어진 퍼즐을 맞춰보기로 했습니다. 반씨와 조씨에게 ‘가능한 모든 소송 관련 기록을 달라’ 요청했습니다. 양 측 모두 응했습니다. 이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들 위주로 재판의 흐름을 따라가 봅시다.
 
의문1: 성폭행 연기 중 신체 접촉은 어디까지?
“강간 연기 중에 신체접촉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성폭력 사건을 많이 다뤄본 주변의 법조 기자들도 이 부분에서 갸우뚱하더군요. 실제로 연기 중에 일정 수준의 접촉은 위법성이 없어질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일정 수준’은 어디까지일까요.

이에 대해 1심과 2심 모두 연기와 추행을 가르는 기준을 공통으로 제시했습니다. 바로 ‘사전 합의 여부’입니다.

 
1심 재판부는 “감독의 지시, 구체적인 연기 내용과 노출 수위 등이 사전에 감독과 배우, 스태프 사이에 충분히 공유되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

 
2심은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19세 미만 관람불가 등급 영화라 할지라도, 감독의 일방적인 연기지시나 이에 따른 연기내용에 관해 상대 배우에 사전에 공유하거나 승낙받지 않은 이상, 단지 정당한 연기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는 영화계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증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10~20년 차 배우들은 재판에 나와 “베드씬을 찍을 때는 미리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춰야 하고, 애드립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문2: 조덕제에게 허용된 연기 범위는 어디까지였나
그럼 촬영 당시 조덕제에게 주어진 연기 지시는 어디까지였을까요. 원래 시나리오는 조씨가 반씨의 ‘바지’를 찢은 뒤 등 뒤로 밀착해 강제로 성행위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현장에서 ‘상의’를 찢는 걸로 변경됐습니다. 카메라도 두 배우의 상반신에만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여기서 접촉이 예상되는 범위는 어깨와 등, 허리 같은 상체 일부와 가슴을 스치는 정도일 겁니다. 반씨 가슴이나 음부에 직접적인 접촉이 예정됐다면 이른바 ‘공사’ 처리가 있어야 하지만, 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훈 감독이 조씨에게만 따로 추가 연기 지시를 합니다.
 
“옷을 확 찢어버리는 거야…그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시라니까…그러면 뒤로 돌려. 이거는 에로가 아니잖아. 죽기보다 싫은, 강간당하는 기분이거든. 얼굴 위주로.”
 
장 감독의 지시가 담긴 메이킹 영상은 온라인에도 공개돼 파장이 컸습니다. 특히 “마음대로 하라”는 발언은 자칫하면 남자 배우에게 “모든 신체 부위를 터치해도 된다”고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장 감독은 시범을 보이면서 가슴을 움켜쥐는 듯한 시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1심과 2심은 여기에서 판단을 달리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장 감독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장 감독이 흥행을 위해 여배우에게는 제대로 알리지 않고 남배우에게만 거친 연기를 주문해 노출 수위를 높이려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씨는 정식 리허설도 없던 급박한 상황에서 감독의 지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결국 합의된 건 상체 일부 아니냐’는 시각을 보였습니다. 장 감독의 지시는 여배우에게 공유되지 않았으니 허용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장 감독의 지시를 뜯어보면 ‘가슴을 만지라’던가 ‘바지에 손을 넣어라’는 부분은 없고, ‘얼굴 위주’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심에서 조씨에 유리한 증거가 됐던 메이킹 영상이 2심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겁니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장 감독은 “시늉만 하라고 했지 실제 만지라고 한 적은 없지 않냐”고 증언했습니다. 또 “메이킹 영상엔 없지만, 별도로 조씨에 허리 밑으로는 손대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의문3: 영상에는 ‘추행의 진실’이 담겼을까?
이제 조덕제가 사전 합의 범위를 현저하게 넘어서는 연기를 실제로 했어야 추행죄가 성립됩니다.

 
여기서 두 배우가 성추행 장면 영상 전체 공개를 놓고 다투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해당 영상이 제출됐음에도, 추행 유무에 대한 판단은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그저 “스쳤을 뿐”이라던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조씨가 반씨의 음부를 3회 만졌다고 인정했습니다.

 
2심 재판에 나온 영상분석가는 조덕제의 손과 어깨의 위치, 반민정의 회피 움직임 등으로 "추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캡처]

2심 재판에 나온 영상분석가는 조덕제의 손과 어깨의 위치, 반민정의 회피 움직임 등으로 "추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캡처]

애초에 ‘상반신’만, 그것도 뒷모습 위주로 찍었기 때문에 영상만으로는 정확히 판별할 수 없었던 겁니다. 1심과 2심 판결문 어디에서도 영상에 대한 결론은 정확히 내지 않습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1심과 달리 성폭행 장면 분석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특히 조덕제의 피고인 신문 기록에는 재판부가 손의 위치 관련해 조씨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손이 아래를 향하는 장면) 오른손과 왼손이 어디에 있었지요”
조덕제: “아마 제 바지 쪽에 있지 않을까.”
“피해자한테 접촉이 안 된 상태인가요?”
조덕제: “예, 그렇게 기억하고”
 “그렇게 보기에는 두 사람이 너무 붙어 있지 않나요?”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영상분석가 역시 “조씨의 어깨선과 손의 위치, 벗어나려는 반씨의 움직임 등으로 볼 때 실제 추행이 있던 걸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의문4: 조덕제 옹호한 스태프의 진술은 왜 인정되지 않았나
조덕제가 기자에게 보낸 자료 중 상당수는 “추행을 못 봤다”는 현장 스태프의 진술서였습니다. 이들은 “1m 앞에서 연기를 지켜보았지만 이상한 징후는 없었다”거나, “여배우가 NG를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조씨에 유리한 진술을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판결문에 담았습니다.
 
반면 2심에서는 제작진의 진술이 배제됐습니다. 2심 재판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촬영이 이뤄지던 경기 이천시의 아파트 구조를 봅시다.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이 이뤄진 경기도 이천의 한 아파트 당시 구조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이 이뤄진 경기도 이천의 한 아파트 당시 구조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성폭행 장면의 배경이 된 이 아파트 현관은 매우 비좁았습니다. 따라서 배우 2명과 카메라 스태프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실과 방 등에서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영상으론 추행 여부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코앞에서 지켜본 3명은 어떨까요. 이들은 “카메라에 집중하느라 하체 부분은 못 봤다”고 공통으로 증언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스태프의 진술이 실체를 가리는 데 의미가 없다고 본 겁니다.

 
의문5: 재판부는 누구 진술을 믿었나
1심 재판부는 반민정 말을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성폭행 연기 중 속옷까지 찢어졌는데 감독과 조씨가 사태를 무마하려고 하자 과장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오히려 조덕제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않다고 봤습니다. 특히 반씨가 촬영 직후 추행에 대해 항의했을 때, 조씨의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그가 한 말은 “연기에 몰입해서 그런 것 같다” 였습니다. 만일 추행이 없었다면 “내가 거길 만진 적은 없었는데 오해한 것 같다”는 식의 반응이 나와야 하지 않냐는 겁니다.

 
이후에 이어진 발언들도 재판부는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건 며칠 뒤 조씨는 반씨에게 “바지를 벗겨야 하고 벨트를 내리려는데 잘 안 내려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씨가 입었던 바지에는 애초에 벨트가 없었습니다. 또 이는 아예 하체에는 손대지 않았다는 조씨 주장과도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밖에 1심은 영화의 조연인 조씨가 주연 여배우와의 첫 촬영씬에서 추행할 마음을 먹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반면 2심은 촬영 상황에서도 조씨가 ‘우발적 흥분’에 따라 추행이 저질러졌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조덕제는 반민정 또한 진술 번복을 했다고 강조합니다. 반씨가 수사 초기 등에는 ‘음모를 만졌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음부’로 말을 바꾸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답은 이렇습니다. “음부는 음모를 포함하는 단어다.”
또 조씨는 반씨의 생리 여부 등이 달라졌단 점 등을 문제 삼았는데, 2심 재판부는 “이는 사건의 지엽적인 부분이며, 혼동될 수 있는 사항”이라 봤습니다.
 
감당은 두 배우만의 몫인가 
3심은 2심의 판단이 맞다고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재판을 통해 드러난 점은 당시 촬영 현장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 부재했고, 금방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는 겁니다.

 
그 모든 책임을 조덕제 배우 한명만이 오롯이 짊어지는 게 맞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럼 이를 반민정이 감당한 채 원하지 않는 성적 침해도 참았어야 할까요. 두 선택지 사이에서 잘잘못을 가리기엔 진실이 무 자르듯 명확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두 배우를 향한 낙인식 악플과 선정적인 보도는 도를 넘고 있습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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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는 ‘판결 다시 보기’의 줄임말입니다. 중앙일보 법조팀에서 이슈가 된 판결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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