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식물인간 된 9급 공무원…1심 "과로 원인" 항소심 "희귀병 탓"

2016년 3월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전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최모(41)씨. [사진 최씨 가족]

2016년 3월 갑자기 심정지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전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최모(41)씨. [사진 최씨 가족]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30대 가장이 운전 중 도로 한복판에서 심정지로 의식을 잃었다. 직장에 병가를 내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운전자가 승용차 운전석에서 그를 발견해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식물인간'이 됐다. 
 
전북도립국악원에서 9급 임기제(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최모(41)씨 얘기다. 최씨는 2016년 3월 21일 쓰러진 뒤 2년 8개월간 전북 전주의 한 요양병원에 누워 있다.

 
최씨는 심정지로 쓰러진 뒤에도 병가 상태로 6개월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다 2016년 11월 계약이 해지됐다. 하지만 여태 정부로부터 병원비와 요양급여 등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최씨 가족이 공무원연금공단에 요양 승인 신청을 했지만, 공단이 "업무와 연관이 없다"며 거부해서다. 공단은 "최씨가 쓰러진 건 그가 앓던 것으로 의심되는 '브루가다 증후군' 탓"이라고 주장했다. 브루가다 증후군(Brugada Syndrome)은 유전에 의한 것으로 심장 발작 및 심정지를 일으키는 희귀 질환이다.  
 
최씨 가족은 지난해 2월 서울행정법원에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지난 5월 "과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건강한 30대 가장이 쓰러졌다"며 최씨 가족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박용근 판사는 "원고(최씨)의 공무 수행과 심정지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최씨가 브루가다 증후군에 해당한다고 추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초 심폐소생술 이후 브루가다 증후군 양상이 사라진 데다 가족 중 급사한 병력이나 심장 관련 질환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다.    
 
대신 재판부는 심장 발작 원인을 '공무 수행'에서 찾았다. "원고는 공무원 임용 후 기존에 다뤄본 적 없는 공연 유료화 추진, 지정좌석제 시행이라는 업무를 전담했다. 게다가 신입으로 국악원 내 최하위 임기제 공무원이었는데도 도지사 등에 대한 보고 업무까지 전담해 홍보 담당자로서 스트레스가 매우 컸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식물인간이 된 전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최모(41)씨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 부인 서모(45)씨, 아들(12)·딸(9)과 함께 2015년 9월 전주자연생태박물관 실내에서 전주향교를 배경으로 찍었다. [사진 최씨 가족]

식물인간이 된 전 전북도립국악원 단원 최모(41)씨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 부인 서모(45)씨, 아들(12)·딸(9)과 함께 2015년 9월 전주자연생태박물관 실내에서 전주향교를 배경으로 찍었다. [사진 최씨 가족]

법원과 국악원에 따르면 문화저널 기자와 전주세계소리축제 기획자 등으로 일한 최씨는 2015년 4월 9일 전북도립국악원에 임기 1년의 9급 임기제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업무 실적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자리였다. 최씨는 국악원 홍보 업무를 도맡았다. 2016년에는 국악원 개원 30주년을 맞아 업무도 급증했다. 최씨는 당시 동료들에게 "스트레스가 심하다" "재계약이 안 될까 봐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행정4부(부장 이승영)는 지난달 27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공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건강검진 결과 원고의 발병 전 건강 상태는 정상으로 판정됐다"면서도 "브루가다 증후군으로 인해 심정지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따르면 최씨는 최초 심폐소생술 이후 심전도 검사에서 브루가다 증후군과 유사한 양상이 확인됐다. 하지만 현재 식물인간 상태여서 확진 검사는 불가능하다. 재판부는 "브루가다 증후군이 있는 경우 과로나 스트레스가 없더라도 급성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학적 견해도 근거로 삼았다. 
 
아울러 1심과 반대로 "육체적 과로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근로자는 한 달 초과 근무 시간이 최소 80시간이 넘어야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인정되는데, 최씨는 쓰러지기 전 6개월간 초과 근무 시간이 이 기준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전 경력을 고려하면 국악원 홍보 업무가 새로운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재계약 등에 대한 부담감도 원고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패소 소식에 최씨 가족과 국악원 동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 부인 서모(45)씨는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힘들다"고 했다.  

 
최씨 부부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12)과 초등학교 3학년 딸(9)을 뒀다. 서씨는 남편이 쓰러진 뒤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와 보조 교사로 일하며 남편 병원비와 양육비를 대고 있다. 수백만원의 소송비도 서씨 몫이다. 
 
서씨는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는 게 과로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