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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선] 노무현의 ‘대통령이면 넘어야할 다섯가지 고개’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의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였다. 고스트라이터는 대필작가다. 윤 전 대변인이 노 전 대통령의 말 중 일부를 발췌해 ‘대통령의 말하기’(2016년)란 책을 펴냈다.
 
2006년 8월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때 했다는 책 속의 이 한마디가 시선을 확 붙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넘어야하는 다섯가지 고개가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에게 조목조목 열거했다. 결코 10년전 얘기로만 흘려보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첫째, 여소야대입니다.” 마침 오늘도 새해 예산안이 여소야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둘째, 지역감정입니다.” 지역감정은 많이 완화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개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는 이유가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의 이탈이라는 분석이 있다. 언제든 과거구도로 복원될 수 있다.
 
“셋째 정치언론의 공세이고, 넷째는 여당권력입니다.” 이 대목은 부연이 필요하다. 2006년 당시 노무현정부는 한미 FTA를 본격추진했다. 이때 진보진영이 이탈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진영에선 ‘좌파대통령’이라고, 진보진영에선 ‘신자유주의자’라고 공격받았다. 전선이 보수-진보 진영에 걸쳐 동시에 형성되면서 보수-진보언론 막론하고 비판을 했다. 여당은 지지율이 떨어져 있던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을 위로하기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배석했던 이창동-문성근-박재동-황지우 씨 등을 보자 “나는 당신들이 다 떠난 줄 알았는데...”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그는 외로운 처지였다.
 
“다섯번째는 권력기관입니다.” 그가 ‘권력기관’을 꼽은 건 오랜 성찰의 결과였다. 한국 대통령들은 실제로 ‘맹수’를 애완견으로 잘못 알았다.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은 집권중엔 유효한 통치수단이었으나, 시대가 바뀌면 전 주인을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제까진 이 모든 고개를 넘어선 대통령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은 다섯고개를 넘기위해 무던히 싸웠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특히 진영논리에 맞서 스스로를 ‘좌파신자유주의’로 규정한 건 압권이었다. “이론적 틀안에 자꾸 현실을 집어넣으려고 하지 말고, 좌파이론이든 우파이론이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써먹자”고 했다.
 
당시 경제성장률을 신장에 비유해 남긴 말은 지금 생각해도 그럴 듯 하다. “성장(률)이라는 것이 중학교 때 10센티 크고, 고등학교에선 7센티 컸다고, 대학교 간 후에도 1년에 7센티씩 클 것으로 기대하면 안되고요. 대학교 가면 1~2센티 크다가 안크는건데, 그냥 복지 잘해야 성장한다…”
 
성장을 위한 혁신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혁신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죽느냐 사느냐 선택만 있지, 이대로는 없다! 현상유지는 없다!”  
 
그의 방식은 이렇게 늘 정면돌파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아무리 같은 산맥에서 나온 봉우리라 해도 모습이 똑같을 순 없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스타일은 물론 처한 상황도 다르다. 일단 문 대통령은 ‘정치자본’이 두둑하다.
 
가장 큰 게 지지율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취임초)60%가 되자 잠이 안오더라. 풍선껴안고 자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빠졌다고 해도 48%(리얼미터, 11월29일 발표)다. 다음날 갤럽 발표는 53%였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끄는 강력한 야당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야당은 구심이 없다.
 
여러 사정은 문 대통령이 유리해보이는데도 솔직히 불안해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외부 정치환경뿐 아니라 정권내부(여당권력·권력기관)를 고개로 지목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이라서다.
 
여당엔 이재명 폭탄이 째깍거린다. 뭘 어쩌자고 집안싸움(경선)을 밖(검찰)으로 끌고 나갔을까.
 
권력기관은 어떤가. 청와대 일부 비서관·행정관이 음주운전, 음주폭행 사고를 일으킨게 엊그제다. 이와중에 ‘특별감찰반’이란 무서운 명함을 가진 사람들이 경찰수사에 사실상 외압을 행사하려하고, 단합을 도모한다면서 평일에 단체골프를 쳤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바깥에선 친노조정부라는데 민주노총은 주말에 문재인정부 규탄시위를 열었다. 2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넘어야할 고개를 하나 더 보탠다면 요즘같아선 ‘노조’다.
 
이런 상황에서 선한 명분과 차가운 현실을 잘 섞어내는 정치력, 개혁에 대한 시간과 저항을 줄일 치밀한 전략을 정부는 보여주지 못했다. 불안의 근본요인이다.
 
최저임금만 보자. 자영업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올렸다가 비명소리를 듣고 나서 뒤늦게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에 나섰다. 선-후가 뒤바뀐 정책 속에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소득주도성장 기조는 코너로 몰렸다. 이런 일이 더는 없어야한다. 불 조절을 잘못해, 꼬챙이는 태우고, 정작 고기는 설익는 일이.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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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