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론] 남북 철도 연결, 장밋빛 청사진 경계해야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리셋 코리아 교통물류분과장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리셋 코리아 교통물류분과장

우여곡절(迂餘曲折)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전에 따르면 ‘뒤얽혀 복잡하여진 사정’이라는 의미이다. 지난 주말, 이리 굽고 저리 굽은 매우 복잡한 사정 끝에 남북 철도 공동 조사가 마침내 개시됐다.
 
남북 정상은 꽃피는 봄날에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연결과 현대화를 합의했으나,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문턱에서야 공동 조사라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 8월 22일 출발해야 했던 공동 조사였지만, 주한 유엔군사령부의 군사분계선 통행 불허 조치로 인해 3개월이라는 시간을 협의와 조정으로 허비해야 했다. 남북 철도 공동 조사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유엔의 제재 면제 조치도 한시적 혹은 일회성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조사가 끝난 후 개최 예정인 착공식이 또 다른 면제 조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의 앞날이 꽃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북한으로 떠나는 조사단 차량을 보면서 희망과 불안, 절망과 기대가 교차한다. 희망적인 것은 북한의 대응 자세가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문 문구에서는 북한의 의지가 차고 넘친다.
 
북한에서 철도는 매우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김일성은 철도가 운행되는 것이 인체에 혈액이 순환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북한 철도법은 철도를 ‘나라의 동맥’이며 ‘투쟁을 통하여 쟁취한 혁명의 고귀한 전취물’로 규정한다. 북한의 수많은 법 가운데 ‘혁명의 전취물’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대상은 토지와 철도뿐이다. 이러한 위상을 갖는 철도가 북한에서 ‘불편·불비·민망’의 대상, 동맥경화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은 국가적 부끄러움일 수 있다. 남북 공동으로 ‘편리하게 잘 정비된 자랑거리’의 철도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자존심보다 실리를 앞세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불안한 대목은 거의 변하지 않은 북한의 접근 방식이다. 남북이 공동 조사해야 할 북한 내 구간 연장은 대략 철도 1200㎞, 도로 260㎞이다. 철도의 경우, 남한 철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이런 엄청난 조사 물량을 16일 만에 끝내자고 하는 북측의 속내는 이해할 수 없다. 빠르고 안전하며 경쟁력 있는 철도 건설을 위해 북측이 추가 정밀 조사를 요구해야 하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시론 12/03

시론 12/03

2001년에 러시아와 북한이 공동으로 실시한 두만강-나진-흥남-고원-평강 간 781㎞ 철도 조사 사업은 3개월 정도 소요됐다. 또 2003년 두만강역~나진항 간 54㎞ 조사가 37일간 진행됐다. 북한이 이번 조사 기간을 16일로 잡은 것은 적어도 사업 동반자로서의 태도로는 적합하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좀처럼 걷히지 않는 비핵화 논의의 먹구름과 철도 사업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 선행동 조치를 요구하는 북·미간 지루한 샅바 싸움을 보는 건 절망감을 더하게 한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 역시 주의해야 한다. 과거 ‘경의선은 철도가 아니라 경제’라 했던 슬로건은 초라한 남북 화물열차 운행 실적으로 생명력을 잃게 됐다.  
 
2007년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남측 도라산과 북측 판문역 간을 운행한 화물열차는 총 448회였다. 화물 수송은 17회, 화물량은 컨테이너 76개에 그쳐 경제성 창출에 실패했다. 비전이 아닌 선전이 되고 만 것이다.
 
북한 철도 연계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크다. 대륙 육상 운송의 주체라는 위상을 확보한다는 점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우리나라는 29개 회원국을 가진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원국이 된다. 북한·중국·러시아도 회원국이다. 동유럽의 루마니아나 알바니아에서 중남미 쿠바에 이르기까지 기차표 한 장, 운송장 한 장으로 국제 철도를 통한 여객·화물 운송이 가능하게 됐다.
 
기대 만큼 남북 철도 공동 조사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현대화라는 개념·목표·방법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또 분단 이후 독자적으로 구축된 전력, 통신, 신호, 차량시스템 등을 표준화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 건설 비용의 조달 문제, 투자 우선순위, 남·북의 역할 분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주변 환경 변화와 사업의 경제성, 상호성, 수용 가능성, 국제성 원칙이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다.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는 많은 숙제를 갖고 북쪽으로 떠났다. 며칠 후 그 열차가 불안과 절망을 멀리 내다 버리고 희망과 기대라는 많은 선물을 싣고 나타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리셋 코리아 교통물류분과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