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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권력의 오만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력도 건방져 보이면 실제로 건방진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일탈은 권력의 자화상이다. 경찰에 지인인 건설업자에 대한 수사 내용을 묻고 주중 근무시간에 접대골프를 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완장을 찬 홍위병의 건방진 갑질과 무엇이 다른가. 조국 민정수석 소관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은 사정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로 팀을 이룬 현대판 암행어사다.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라고 마패를 주었더니 스스로 비리가 된 셈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민정수석실은 권력의 건강한 작동을 위한 코드가 내장된 은밀한 조직인데 만인의 입방아에 오르는 건 불길한 신호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신호탄도 여기서 나왔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만든 공직비서관실 박관천 경정은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폭로했다. 박근혜 권력이 자멸한 폐허 위에 세워진 문재인 정부의 특수권력이 호가호위하는 장면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은 이런 청와대 권력의 생리를 잘 안다. 그는 당시 사정비서관을 통해 특별감찰반을 운영했던 장본인이다. 문 수석은 “특별감찰반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감찰 대상과 업무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못 박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지방선거 직후인 올해 6월 18일에는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역대 정부를 보더라도 2년 차, 3년 차 이렇게 접어들면 도덕성이라는 면에서도 늘 이렇게 사고들이 생기곤 했다. 우리 민정수석실에서 악역도 맡아 주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믿었던 특별감찰반이 사고를 쳐서 전원 교체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한마디로 청와대가 너무 세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다 사고를 친 것이다.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보았다. 이걸 ‘휴브리스(Hubris)’라고 표현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정도의 오만을 뜻하는, 그리스 어원 ‘hybris’에서 나온 용어다. ‘성공의 역설’에 빠진 문재인 정부의 휴브리스가 문제다.
 
이하경칼럼재송

이하경칼럼재송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586 참모그룹은 도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탄핵하고 집권해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민주화·진보정권의 신중함이 기득권 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권 초에 일사천리로 적폐를 청산하려 한다. 이런 열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호처 직원의 시민 폭행,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유력자를 사칭한 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권의 오만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비토당한 후보자들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관으로 임명한다. 대통령은 취임 초인 지난해 7월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부적격자 인사를 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자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감사원·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을 통해 전방위적인 적폐청산을 주도하고 있다. 2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갔고, 전직 대법원장도 사법농단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설 가능성이 있다. 기업인들도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의와 평등은 언제나 옳다. 문제는 이런 추상적 가치가 압도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도전과 혁신의 현실적·구체적 기운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로는 공동체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집권세력이 잠시 호흡을 고르고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이 나라는 보수와 영남이 기득권을 행사하는 주류였다. 다수파인 그들은 유리한 정치지형 아래서 쉽게 집권하고 원활하게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진보 세력은 중도를 끌어들이고, 지역연합을 이루지 못하면 집권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혁성뿐 아니라 관용까지 갖춰야 한다. 그래야 보수·야당·영남·기업인들과 동행하고, 국정운영이 원활해진다. 사활이 걸린 비핵·평화와 경제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루소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세운 볼테르는 “이성은 너그러움을 불러일으키고 불화를 잠재운다”고 했다. 이 정부는 진정 개혁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특별감찰관의 일탈로 상징되는 권력의 오만을 통회(痛悔)하고 관용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하는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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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