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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2013년 골프계를 시끄럽게 한 타이거 우즈의 드롭 실수 장면. [중앙포토]

2013년 골프계를 시끄럽게 한 타이거 우즈의 드롭 실수 장면. [중앙포토]

낡은 건물이 헐리고 고층 아파트가 새로 올라가는 것 같다. 
 
한 달 후면 골프 규칙이 대폭 바뀐다. R&A와 USGA는 “이해하기 쉽고, 현실에 적용하기 쉽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도 알기 쉽게 룰을 현대화했다”고 했다. 경기 속도를 높여 라운드 시간을 줄이고, 방송 중계에 적합하게 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1월부터 적용될 골프 규칙은 새 아파트처럼 장점이 많다. 그러나 큰 변화 앞에서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규칙 이원화 조짐이 보인다. 새 규칙에는 OB가 났을 경우 공이 나간 자리 근처에서 칠 수 있게 했고 홀마다 상한(上限) 타수를 둘 수 있다. 
 
OB 조항은 엘리트 골프에는 적용하지 않고 일반 캐주얼 라운드로 한정했다. 상한 타수 조항을 프로 경기에서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로와 프로 지망 주니어 대회에는 쓰지 않고, 일반 아마추어 골퍼만 쓰면 프로와 아마추어 룰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직 차이는 미미하다. 그러나 KLPGA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분화가 시작됐다는 것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골프규제기관은 공의 탄성을 포함한 장비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다르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PGA 투어 선수 일부는 “프로 골프의 룰은 아마추어의 규칙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마추어 쪽에서는 “너무 어려우니 9홀 당 멀리건 1번 가능 같은 규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1744년 (기록으로 발견된) 첫 골프 규칙 제정 이후 274년이 지났다. 그 동안 골프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다. 앞으로 274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프로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는 뿌리가 같은 두 개의 다른 스포츠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룰 개정은 프로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라는 종의 분화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골프엔 헌법 같은 것이 있다. ‘공은 있는 그대로 친다’와 ‘코스는 있는 그대로 경기한다’는 조항이다. 이 헌법은 작은 공을 매개로 자연 속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골프의 정신이었다.
 
내년 규칙에도 이 조항이 남아있지만 예외가 늘어 그 정신은 약화됐다. 러프 땅에 박힌 공을 꺼낼 수 있고 그린의 스파이크 자국도 보수할 수 있다. 그레이엄 맥도웰은 “발자국 보수를 허용했더니 그 명목으로 그린에서 홀로 들어가는 계곡을 만들더라”고 했다.
 
^규칙 현대화는 단순하고 쉽고 스피드를 높여 골프를 대중화하겠다는 시도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골퍼가 정직하다는 전제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처럼 골프도 인간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대한골프협회의 박노승 경기위원은 “인간이 정직하다는 전제가 맞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구멍이 많다”고 했다. 미국 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PGA 투어 선수 무기명 설문 결과 동료의 속임수를 본 적이 있다는 답이 44%였다.  
 
KPGA 김용준 경기위원은 “패널티 구역에서 나뭇가지를 치울 수 있고, 동료에 얘기하지 않고 공을 들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라이를 개선하거나 공을 치기 좋은 곳으로 옮겨 놓을 개연성이 있다. 규칙을 잘 지키는 신사보다 편법을 쓰는 악당들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새 규칙은 잘못을 저질러도 시청자 제보를 받지 않고, 나중에 중계화면에 오소플레이 등이 드러나도 선수의 의견을 존중한다. TV로 봐선 규칙위반인데 “고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정직이라는 골프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50년 전인 1968년 마스터스에서 스코어카드를 잘 못 써 준우승에 그친 로베르토 디 비센조(왼쪽)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린재킷의 주인공인 골비(오른쪽) 보다 완고한 규칙의 희생자 비센조가 훨씬 더 유명하다. [AP]

50년 전인 1968년 마스터스에서 스코어카드를 잘 못 써 준우승에 그친 로베르토 디 비센조(왼쪽)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린재킷의 주인공인 골비(오른쪽) 보다 완고한 규칙의 희생자 비센조가 훨씬 더 유명하다. [AP]

과거엔 지나치게 완고하고, 지금 봐선 합리적이지 않은 규칙 때문에 피해를 본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그 고리타분한 규칙 때문에 골프의 이야기는 풍부해졌다. 사람들은 1968년 마스터스 우승자가 누구(밥 골비)인지 모르지만 그 해 스코어카드를 잘 못 써 연장전에 가지 못한 로베르토 디 비센조에 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다.  
 
규칙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상식이 등장하고, 시간의 속도에 대한 관념도 바뀐다. 다른 스포츠와의 경쟁, 기술 발전도 규칙을 변하게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아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들도 있다. 
 
런던이나 로마 같은 유럽 도시들은 오래된 건물을 헐고 고층아파트를 짓지 않는다. 물론 불편하지만 오랜 세월 도시가 품어온 사람들의 기억, 켜켜이 쌓인 역사는 오늘 날의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골프는 오래된 건물처럼, 고리타분해서 특별한 스포츠였다. 복잡한 규칙이 단순화된 것을 환영하면서도 골프의 독특한 정취가 사라지는 듯해서 아쉽기도 하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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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