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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경비원 말곤…영국 대영박물관에 영국의 물건은 없다

“우리는 육체만 있을 뿐이다. 영국인이 우리의 영혼을 갖고 있다.”
지난달 20일, 대영박물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물 환수를 눈물로 호소한 이스터섬의 타리타 알라르콘 라푸 지사.[AFP=연합뉴스]

지난달 20일, 대영박물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물 환수를 눈물로 호소한 이스터섬의 타리타 알라르콘 라푸 지사.[AFP=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영국 대영박물관 앞에서 전통 복장 차림을 한 여성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호아 하카나나이아’라는 모아이 석상을 돌려달라며 눈물로 호소한 겁니다. 그는 칠레령 이스터섬에서 온 타리타 알라르콘 라푸 지사였는데요. “후손들이 석상을 만지고, 그에게서 배울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모아이 석상 ‘호아 하카나나이아’.[AFP=연합뉴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모아이 석상 ‘호아 하카나나이아’.[AFP=연합뉴스]

이스터섬에는 6~15세기경 현무암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모아이 석상 900여개가 남아있습니다. 라푸 지사가 반환을 요구한 호아 하카나나이아는 모아이 석상의 전형으로 꼽히는데요. 1868년 영국이 제국주의 시절 약탈해 간 이래 150년째 타향살이 중입니다.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밑도 끝도 없이 ‘껌을 달라(give me gum-gum)’고 외치는 다소 기괴한 돌덩이처럼 묘사된 게 바로 모아이 석상인데요. 원주민들은 조상의 모습을 형상화한 개개의 모아이 석상을 수호신으로 여겨 숭배합니다. 호아 하카나나이아는 부족 간 전쟁을 끝내고 섬 전체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믿어지지요. 모아이 석상의 평균 높이는 3m를 약간 넘는 정도인데 이스터섬에선 이보다 높은 건물은 짓지 않습니다. 
지난해 자치권을 얻어 본격적인 유물 되찾기에 나선 이스터섬의 영향으로 해묵은 문화재 반환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의 많은 유물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으로 약탈되거나 밀반출됐지요. 전 세계 유물 약 900만점을 소장한 세계 3대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은 늘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영국 것은 건물과 수위밖에 없다”는 혹평이 따라붙을 정도이지요.  
 
문화재를 찾으려는 각국의 ‘유물 독립전쟁’은 눈물겹습니다. 대영박물관의 인기 스타 ‘엘긴 마블’을 돌려받기 위한 그리스의 노력도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상단 외벽을 장식하던 엘긴 마블은 19세기 초 그리스를 지배하던 지금의 터키, 오스만투르크에 파견된 영국 대사에 의해 반출됐습니다. 엘긴 가문의 백작인 토마스 브루스는 당시 유행에 따라 스코틀랜드에 그리스의 건축과 조각을 모티프로 한 대저택을 짓고 있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신전의 벽면과 기둥 등의 조각품을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간 겁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그리스의 ‘엘긴 마블’. [사진 포브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그리스의 ‘엘긴 마블’. [사진 포브스]

당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그를 ‘반달(vandal)’이라고 비난했지요. 문화나 종교, 예술에 대한 무지로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뜻으로 엘긴의 이름에서 따온 ‘엘기니즘’도 있지요.
 
이후 자금난을 겪게 된 그가 파산 직전 영국 정부에 이를 팔면서 엘긴 마블은 현재의 대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리스는 줄곧 이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영국은 꿈쩍 않고 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가져간 것이라면서요.
조지 클루니와 인권변호사 부인 아말 클루니. [사진 CNN]

조지 클루니와 인권변호사 부인 아말 클루니. [사진 CNN]

영국 내부에서조차 그리스에 엘긴 마블을 돌려주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자 영국의 유명 인권변호사인 아말 클루니는 그리스 편에서 자문역할을 했지요. 이 문제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며 2015년 150페이지에 달하는 소송전략보고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리스가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며 거절했습니다.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베닌 브론즈’도 대영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습니다. 로제타 스톤은 프랑스 원정대가 발견했는데 영국군 수중으로 넘어갔죠. 이집트 박물관에는 영국 쪽에서 같은 크기로 만들어 보낸 ‘짝퉁’ 로제타 스톤이 있다니 웃기고도 슬픈 일이지요. 그나마도 베닌 브론즈는 120년 만에 잠시나마 고향을 찾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최근 영국이 2021년 나이지리아에서 개장하는 왕립박물관에 이를 대여해주겠다고 밝힌 덕이지요. 영구 반환이 아닌 만큼 여전히 논란은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베냉 브론즈’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사진 CNN]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베냉 브론즈’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사진 CNN]

영국은 그간 문화재 관리 명목 등을 내세워 반환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돌려주면 우리만큼 잘 보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수준 높은 관리와 전시를 통해 세계 더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입니다. 
 
한 나라의 보물을 넘어선 세계인의 유산으로 바라봐야 한다고도 강조하지요. 리처드 램버트 대영박물관 이사회 의장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대영박물관은 ‘세계를 위한 세계의 박물관’”이라며 “문화간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전하기 위해 특별히 설립됐고, 이 역할을 해내려면 ‘글로벌 컬렉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처드 램버트 대영박물관 이사회 의장. [EPA=연합뉴스]

리처드 램버트 대영박물관 이사회 의장. [EPA=연합뉴스]

“유물은 그 나라의 문화적 맥락에서 전시될 필요가 있다. 영국인이 세계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환상”( 패트릭 가타라 케냐 정치평론가)이라는 반론도 있지요.   
 
이런 가운데 프랑스가 유럽 최초로 제국주의 시절 탈취한 유물을 본국으로 되돌리기 위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모국이 원할 경우 프랑스 유산법을 개정해 영구 반환하라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나오면서인데요.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대학을 찾아 유물 환수를 약속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대학을 찾아 유물 환수를 약속했다.[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에는 아프리카 유물이 최소 9만점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서아프리카를 순방하면서 “아프리카 유산 상당수가 프랑스에 있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며 문화재 반환을 선언했지요. 이후 두 명의 학자에게 직접 보고서 제작을 의뢰했고 결과물이 나오자 즉각 1892년 아프리카 베닌에서 가져온 문화재 26점을 우선 돌려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반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국 박물관에서의 보관과 큐레이션 등을 위한 인프라 지원까지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요지부동하던 이전 정권과 달리 전향적으로 나서는 마크롱의 행보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거나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CNN은 “유럽 전역의 박물관에 압박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독일에서도 최근 40개 단체가 정부 차원에서 독일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소장품을 조사하고 목록을 작성토록 촉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에 서명했지요. CNN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개인 수집가들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영국인 마크 워커는 군인이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두 점의 베닌 브론즈를 자발적으로 반환해 화제를 모았지요. 
영국인 마크 워커(오른쪽)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베닌 브론즈 두 점을 베닌 측에 돌려주는 모습.[사진 BBC]

영국인 마크 워커(오른쪽)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베닌 브론즈 두 점을 베닌 측에 돌려주는 모습.[사진 BBC]

문화재 환수는 우리나라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총 17만점가량이 해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4월 파리에서 국제회의를 열어 문화재 반환 원칙을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결정이 향후 전세를 바꿔 각국의 문화재 환수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외를 떠도는 우리 문화재를 품에 안길지 관심이 쏠립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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