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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미국 금리는 오르고 국내 경기는 식고

금리 인상·동결 놓고 찬반 논란 거세 … 이주열 총재, 올 마지막 금통위에서 ‘인상 버튼’ 누르나
 
한국 경제가 금리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의 잇단 금리 인상 영향으로 자본 유출을 우려한 한국도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고용이 줄고 내수가 쪼그라드는 등 경기 하강 시그널만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할 게 뻔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금리”라고 입을 모은다. 집값 불안 문제가 불거진 부동산시장이나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급락을 경험한 주식시장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가 앞으로 금리 향방에 따라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그동안 저성장·저물가에 대응해 확대해온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11월 30일, 무려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1.25%→1.5%)한 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점진적인 완화 정도의 조정’을 강조했다. ‘완화 축소’ 깜빡이가 켜지자 시장에서는 올해 한두 차례 추가 인상을 점쳤다. 하지만 10월까지 7차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마다 매번 현상유지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 서울 집값이 폭등하자, 한은의 책임론까지 부각됐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설 때 한은이 발맞춰 금리를 인하했는데, 이후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유동성 과잉으로 부동산시장의 불안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미국, 올해 총 4번 금리 올릴 듯
지금은 미국의 잇단 금리 인상으로 한국은행이 금리 동결을 고집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2015년 12월부터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온 미국은 9월 26일 1.75~2%였던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로써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0.5~0.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 자본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키울 만큼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한·미 금리 격차가 100bp(1bp=0.01%포인트)일 때 주식시장에서만 외국인 자금이 월평균 2조7000억원씩 이탈했다. 현재 한·미 금리 폭은 75bp다. 국내 증시는 이미 2월에 쇼크를 한 번 경험했다. 10월에도 다시 그 공포가 재현됐다. 미국의 12월 추가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어 한·미 간 금리 격차가 100bp 이상으로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 금리는 2017년 11월 이후 11개월째 1.5%를 이어오고 있다.
 
집값 불안이나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으려면 금리를 올리면 된다. 멕시코(연초 7.25%→현재 8.00%)·인도네시아(4.25→6.00)·필리핀(3.00→4.75)·스리랑카(8.50→9.00) 등이 이 같은 문제로 올해 금리를 잇따라 인상했다. 간단한 문제지만, 그러기엔 또 국내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투자 부진이 심화하면서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0.6%로, 한은이 10월 하향 조정한 경제성장률 전망치(2.7%)를 달성하기도 빠듯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 상승하며 지난해 9월 이후 13개월 만에 2%대에 올라섰다.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 목표인 2%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변동성이 심한 식료품·석유류 제외 지수)은 전년 동월 대비 0.9%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근원 상승률이 0%대를 나타낸 건 2000년 2월 이후 18년 8개월 만인데,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졌다는 의미로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내수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 사정은 더 암울하다. 10월 취업자가 2709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6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폭은 올해 7월 5000명을 기록한 이후 4개월째 10만 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까지 올리면 경제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금리를 올리면 시중은행의 예금·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통상적으로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만일에 대비해 투자·소비를 줄이면서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이 둔화하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이스평가정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리가 0.25% 오르면 대출이자도 못 버는 한계기업 수가 2017년 말(6533곳)보다 564곳 늘어난다.
 
금리가 1% 오르면 노동자 74만3287명이 구조조정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특히 가계대출이 1500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어서 금리 인상이 불러올 파장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올해 초부터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왔던 한국은행이 여전히 금리 인상에 주춤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도 금리 인상 여부 고민
같은 이유로 유럽 역시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 피터 프렛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금리 인상 시그널은 시기상조”라며 “유로 지역의 대규모 통화 부양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CB는 앞선 10월 25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현행 0%로 유지했다.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를 역시 각각 현행 -0.40%와 0.25%로 동결한 바 있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유로 지역의 제조업 경기 회복이 더디고 내수 개선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ECB가 내년에도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의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9% 오르고 있지만, ECB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상하면 인상한 대로, 동결하면 동결한 대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여러 번 금리를 올릴 기회를 놓친 한은이 11월 30일 열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외국인 자본 유출을 더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상 버튼’을 누를까.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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