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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한반도 해빙 이끈 '아버지 부시'…94세로 별세

아버지 부시를 병문안한 조지 W.부시 전 대통령

아버지 부시를 병문안한 조지 W.부시 전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9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은 제41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부시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부시 일가 대변인인 짐 맥그래스가 대독한 성명에서 “젭과 닐, 마빈, 도로 그리고 나는 우리의 아버지(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가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됐음을 알리게 돼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앞서 그와 73년간 결혼생활을 같이 한 부인 바버라 부시는 지난 4월 17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성명은 “조지 HW 부시는 매우 고귀한 성품을 가졌으며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부시 일가 전체는 그의 삶과 사랑과 그간 아버지를 걱정하고 기도해준 분들의 연민, 그리고 여러 친구와 동료 시민들의 위로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고인은 1924년 6월 12일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8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하여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58회의 전투에 참여해서 무공훈장을 3개 받았다.
 
1944년에는 임무 수행 도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바다에 추락해 표류하다 구출되면서 2차 대전의 영웅 반열에 올랐다.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기도 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제43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로, ‘아버지 부시’로 불렸다.  
 
‘아버지 부시’는 1959년 미국 공화당에 입당, 1966년 텍사스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CIA 국장 등을 지냈다.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레이건 당시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그는 레이건 대통령 재임 8년간 부통령으로 함께 하며 차기의 대망을 키웠다. 결국 그는 198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누르고 당선, 이듬해 제4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아버지 부시’ 재임 시절, 냉전이 종식되고 독일이 통일됐으며 소련이 해체됐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초강대국으로 위상,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확고히 각인시켰다. 
 
그의 재임기는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부시 전 대통령이 있었다.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에서 이뤄진 미·소 정상회담은 '동서 냉전 해체'의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은 ‘동서 협력시대’를 언급하면서 탈(脫)냉전을 선언했다.
 
이듬해 10월 동서독이 통일됐고, 부시 전 대통령은 “냉전 종식은 모든 인류의 승리”라며 “유럽은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미국의 리더십은 이를 가능케 하는 데 중요한 노릇을 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뜰에서 열린 공식 환영 행사 답사를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자 부시 환영

백악관 뜰에서 열린 공식 환영 행사 답사를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자 부시 환영

글로벌 화해 무드는 노태우 정권의 이른바 ‘북방외교’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됐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옛 소련(러시아)과, 1992년 중국과 잇따라 수교했다. 1991년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졌다.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는 한반도 안보지형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소련과의 ‘전략무기 감축 협정’(START)을 극적으로 타결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당시 북한에 핵무기가 없던 상황에서 주한미군 전술핵이 철수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는 논리가 나왔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이는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조지부시 국회연설 [중앙포토]

조지부시 국회연설 [중앙포토]

 
부시 전 대통령은 4년 재임 기간, 두 차례 국회 연설을 진행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첫 방한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이후 남북 대립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취임 직후인 1989년 2월엔 국회에서 “우리는 북한 쪽으로 다리를 놓으려는 노태우 대통령의 평화적인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며 “노 대통령과 긴밀히 협조해 북한을 실질적·평화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로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 후반기인 1992년 1월 국빈 방한 기간에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고 의무를 이행하면 한미 양국의 팀스피릿(Team Spirit) 군사훈련을 중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남북 공동 비핵화 선언을 상기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발전과 한반도 안전을 역설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으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 기류가 급속히 얼어붙기 이전까지 직간접적으로 ‘한반도 데탕트’를 뒷받침한 셈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370 대 168의 압도적 표차로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재선 실패후 1993년 텍사스주로 돌아와 노후를 보냈다.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장남 조지 W 부시를 제43대 대통령으로 키워내는 등 미국적 전통 가치를 존중하는 부시 가문을 케네디가(家) 못지않은 최고의 정치 명문가로 만들었다.
  
이들 두 명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부인인 바버라 여사는 남편과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워낸 ‘국민 할머니’로 미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차남 젭도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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