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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기술만 도입 땐 ‘양무운동’처럼 실패한다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김태유 서울대 교수 
“우리 사회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이 100여 년 전 중국이 실패한 ‘양무운동(洋務運動)’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학에 경제학과 역사학을 접목한 독보적 연구를 통해 산업혁명의 역사를 파헤친 김태유(67) 서울대 교수(산업공학)가 한국 사회의 4차 산업혁명 ‘열풍’을 보는 시각이다.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지만, 산업혁명의 본질에 대한 오해 내지 몰이해가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산업혁명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으키는 것’이란 말로 요약된다. 시장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통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4차 산업혁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산업혁명과 패권의 이동을 탐구한 『패권의 비밀』을 출간한 데 이어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에 갖는 의미와 성공 조건을 설파하는 대중서를 집필 중인 김 교수를 26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제도까지 혁신한 메이지유신은 성공
 
김태유 교수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진 않는다“면서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그것들을 엮어서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김태유 교수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진 않는다“면서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그것들을 엮어서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처음 사용했다. 김 교수도 그때부터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나.
“그 전에는 개인적으로 지식산업혁명이란 말을 사용했다.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바꾼 것이 산업혁명이다. 산업사회를 지식사회로 바꾸는 것이 지식산업혁명이고, 지식산업혁명의 후반부가 슈밥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다. 개인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에 동의하진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 나도 그 말을 쓰고 있다.”
 
그러면 김 교수는 산업혁명의 시대 구분을 어떻게 하고 있나.
“농업사회가 성숙한 산업사회로 바뀌는 데 약 200년이 걸렸다. 산업혁명의 전반부가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이고, 후반부가 20세기 전후에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이다. 산업사회가 지식산업혁명을 통해 완전한 지식기반사회로 바뀌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식산업혁명의 전반부가 1960년대 말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이고, 그 후반부가 바로 지금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과 김 교수가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사이에는 강조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다고 보나.
“그분들 중에 산업혁명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분이 없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분들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내 얘기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구체적 기술 하나하나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진 않는다는 것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그것들을 전부 엮어서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으키는 것이라는 그 지론 말인가.
“그렇다. 중국은 일본보다 서구 문물을 먼저 접했다. 하지만 중국은 서양의 기술만 들여온 반면 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함께 제도도 들여왔다. 그 차이가 양무운동의 실패와 ‘메이지(明治) 유신’의 성공으로 나타났다.”
 
메이지 유신은 제도적 혁신이 뒷받침됐기에 성공했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아편전쟁에서 굴욕적 참패를 당하고 중국은 엄청난 반성을 했다. 서양 사람들에게 패한 것은 좋은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고, 그건 기술이 없었던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기술을 도입하자 해서 시작한 것이 양무운동이다. 유학생을 보내고, 서양식 공장도 지었다. 하지만 양무운동은 ‘중체서용(中體西用)’, 즉 중국의 본체는 그대로 두고 기술만 바꾸겠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술만 갖고 4차 산업혁명에 접근하면 결실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다. 기술적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는 분들의 귀중한 노력과 내가 주장하는 제도 혁신 노력이 합쳐져야 성공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혁신이 필요한가.
“우리는 산업화에 뒤처져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면서 엄청난 치욕과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식산업혁명이란 제2의 문명사적 ‘대분기(大分岐·great divergence)’를 맞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두 가지 행운을 만났다.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이고, 또 하나는 북극항로 개통이다. 또다시 역사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반드시 편승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새로운 항로의 개통과 맞물려 일어났다. 기후변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북극항로는 4차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신항로가 될 것이다. 그 항로가 대한해협을 지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행운이다. 다시 없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부 혁신, 사회 혁신, 대외 혁신 등 세 가지 제도적 혁신이다.”
 
정부 혁신부터 설명해달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를 확 바꿔야 한다. 정책과 제도는 결국 정부 규제의 문제다. 산업 자체가 몇 개 안 되던 산업혁명 초기에는 정부의 명시적 규제가 가능했다. 1차 산업혁명은 석탄·기계·직물 혁명이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화학·철강 혁명이었다. 즉 몇 가지 기간산업만 보고 따라가면 되는 ‘북극성의 시대’였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수없이 많은 산업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은하수의 시대’다. 수많은 규제를 전부 다 찾아내 일일이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전문가들로 확 바꿔 규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것이다. 과잉 규제나 과소 규제가 아닌 적정 규제는 공무원들을 민간을 능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문가로 만들 때만 가능하다.”
 
 
AI·빅데이터·IoT 구슬처럼 꿰어야 보배
 
공무원을 바꾸는 게 하루아침에 가능하겠나.
“공무원을 부처가 아닌 직무에 소속시키면 가능하다. 그래야 진짜 프로급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에너지 전문가라면 산업부, 환경부 등 어느 부처에 가도 에너지 분야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 조기축구회에서는 누구나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지만, 프로 축구에서는 팀을 옮겨도 공격수는 공격만 한다.”
 
그래도 1~2년 갖고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6개월이면 완전한 준비를 끝낼 수 있고, 1년 내 시행에 들어가 3년 내 효과가 나올 거로 본다.”
 
사회 혁신과 대외 혁신은?
“지금 각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4차 산업혁명이 저절로 일어날 거로 보는 것은 엄청난 오해이며 착각이다.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의사보다는 바이오와 ICT 쪽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회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북극항로가 열린다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대외 혁신이 필요하다.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필수적이다.”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 투약이 잘못됐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럼 그때 어떻게 해야 했나.
“모든 걸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여 위기를 단기적으로 극복하긴 했지만,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지식산업혁명 쪽으로 방향을 확 틀었어야 한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내건 슬로건 중 하나가 ‘산업화엔 늦었지만, 정보화엔앞서가자’ 아니었나.
“나름대로 노력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장기성장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중국의 양무운동처럼 기술적 정보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지식 산업혁명 꿈꾸던 김태유 “무사가 쓸 명검 만드는 게 나의 임무”
“평생을 준비해온 운동선수가 큰 게임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김태유 교수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발탁됐을 때 심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과학기술 중심 사회’라는 대통령 공약에 맞춰 한국의 지식산업혁명을 주도할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돌이켜 보면 내가 참 철이 없었다. 정책도 잘 모르면서 조급한 마음에 의욕만 앞섰다.” 그는 과학기술부 장관의 부총리 승격, 연구·개발 및 성장동력 관련 예산의 과기부 일원화, 이공계 박사 특채 및 정부 부처 전진배치 등 4차 산업혁명을 위한 3대 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해 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 각 부처의 거센 반발과 저항에 부딪혔다. 인신공격성 음해도 끊이지 않았다.
 
“자의 반 타의 반 청와대를 나온 후 상심이 너무 컸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그는 조선 최고의 천재, 율곡 이이의 한마디에 번쩍 정신을 차린다. 조선 초기 개혁가 정암 조광조에 대해 율곡은 『석담일기』에서 “정암은 학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세상을 바꾸려고 하다 실패했다”고 매섭게 평가했다.
 
패권의 비밀

패권의 비밀

그때부터 그는 세상과 접촉을 끊고,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관한 자신의 경제이론을 완성하는 데 매진한다. 거의 10년간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오전 7시 반에 연구실에 나와 밤늦게까지 강의와 공부, 집필에 몰두했다. 그래서 나온 첫 작품이 『경제성장론(Economic Growth)』(2013년). 가속적인 경제성장의 열쇠를 다룬 이론서다. 이어 서구 상업혁명과 산업혁명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경제성장 이론을 검증한 『패권의 비밀(The Secrets of Hegemony)』(2016년)이 나왔다. 둘 다 미국의 세계적 학술 전문 출판사인 스프링거에서 영문판으로 출간했다. 『패권의 비밀』 한글판(사진)은 지난해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 나왔다.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보통 5년이면 서고를 떠난다고 하는데, 100년 이상 서고를 지킬 책을 쓴다는 각오로 책을 썼다.” ‘고전’을 남기겠다는 집념의 소산 중 하나인 『패권의 비밀』은 서울대 출판문화원 사상 가장 잘 팔리는 책이 됐다. 현재까지 6쇄를 찍었다.
 
“세상에는 세상을 평정하는 무사가 있고, 무사가 휘두르는 명검(名劍)을 만드는 도공(刀工)이 있다. 나이도 있으니 이제는 도공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정책을 잘 활용해 세상을 평정할 훌륭한 무사가 나온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공직을 맡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김 교수는 1974년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학으로 석사(웨스트버지니아대)와 박사(콜로라도스쿨오브마인)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모교에서 정년을 맞아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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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