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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서원은 살아있다 … 포은·화담·율곡 자취 오롯이

개성·평양·황해도 서원 답사기
퇴계 이황(李滉)과 율곡 이이(李珥) 둘 다 한국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들이다. 퇴계는 경상도 안동에 도산(陶山)서당이라는 자그마한 집을 지어서 제자를 가르쳤고, 율곡은 황해도 석담에 은병정사(隱屛精舍)라는 단아한 집을 지어 제자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의 사후, 제자들은 스승이 지은 건물을 중심으로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퇴계와 율곡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포함하는 도산서원, 소현(紹賢)서원이 지어졌다. 이것은 조선시대 중반 16세기의 이야기이다.

베를린자유대 서원연구팀 방북
세계유산 등재된 개성 숭양서원
정몽주 충절, 서경덕의 학문 기려

유학자 손보혁 배향한 용곡서원
기와·돌담까지 옛것 그대로 간직

황해도 석담계곡의 소현서원선
율곡 선생 강독 소리 들리는 듯

 
안동의 도산서원은 지금도 유명한 유적지다. 반면 은병정사와 소현서원은 낯설다. 이들이 위치한 황해도 벽성군 석담이 북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율곡이 노래한 고산구곡가의 무대인 석담계곡에 자리한 소현서원은 한국인들에게는 잊혀진 문화유산이 되었다.
 
지난 9월 말 독일 베를린자유대 서원연구팀은 벽성군 소현서원과 개성의 숭양(崧陽)서원 그리고 평양 근교 용악산에 있는 용곡(龍谷)서원을 답사했다. 숭양서원은 이미 2013년 개성의 역사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소현서원과 용곡서원도 숭양서원처럼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베를린자유대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와 서원연구 등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긴밀한 교류협력을 하고 있다.
 
 
소현서원 가는 길 벤츠와 소달구지 나란히
 
정몽주와 서경덕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개성에 세워진 숭양서원은 2013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정몽주와 서경덕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개성에 세워진 숭양서원은 2013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숭양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숭양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우리 연구팀은 가장 먼저 개성의 숭양서원을 방문했다. 숭양서원은 비교적 많은 사진자료가 알려진 곳이다. 정몽주(鄭夢周)의 집터에 지어진 이 서원 여기저기에 정몽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정몽주가 출근하기 위해 말을 탈 때 디뎠다고 하는 돌받침대와 퇴근길 말에서 내릴 때 디뎠다고 하는 돌이 서원 문 앞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정몽주와 서경덕(徐敬德)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이 서원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비석이 있다.
 
평양 용곡서원은 유학자 손보혁 한 사람만을 배향한 작은 서원이다. 여러 사람의 관리인들이 서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가능하면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용곡서원은 기와에서부터 돌담까지 모두 옛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유학자 손보혁을 배향한 용곡서원은 평양 근교 용악산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서원들처럼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유학자 손보혁을 배향한 용곡서원은 평양 근교 용악산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서원들처럼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유학자 손보혁을 배향한 용곡서원은 평양 근교 용악산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서원들처럼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유학자 손보혁을 배향한 용곡서원은 평양 근교 용악산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서원들처럼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용곡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용곡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용곡서원에 홀로 배향된 손보혁의 위패를 촬영하기 위해 들어 간 사당은 경외감을 줄 정도로 정갈한 모습이었다. 이 서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전통문화 체험의 하나로 붓글씨를 쓰고 인증도장을 받아간다고 한다. 서원 정문 위에 만들어진 누각에 있는 작은 책상 위에 실제로  먹과 벼루, 화선지가 놓여 있었다. 다음 날 소현서원을 가는 길에 안내원에게 우리가 용곡서원을 다녀왔다고 하니까 붓글씨를 써 보았냐고 묻는다.
 
황해도 벽성군 석담 계곡에 있는 소현서원에는 율곡 이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황해도 벽성군 석담 계곡에 있는 소현서원에는 율곡 이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소현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북한 소현서원. [사진 베를린자유대]

평양에서 황해도 벽성군 소현서원까지는 140㎞ 정도 된다. 사리원과 신천, 재령을 거쳐 가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만 한다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소현서원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몇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다는 우리의 이야기에 안내원은 웃었다. 서원 하나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법석을 떠느냐고.
 
평양서 황해도 벽성군 소현서원으로 가는 길에 벤츠 자동차와 소 달구지가 교차하는 묘한 장면을 만났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평양서 황해도 벽성군 소현서원으로 가는 길에 벤츠 자동차와 소 달구지가 교차하는 묘한 장면을 만났다. [사진 베를린자유대]

소현서원까지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시골길이었다. 농부가 수확한 작물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그런 길이다. 햇빛에 반사된 흙길은 황금빛을 뿜어냈다. 길옆의 논과 밭에는 벼가 익어가고, 수확한 옥수수가 쌓여 있었다. 어느 지점에선가 짐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와  벤츠 승용차가 마치 전통과 현대를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 앞에 나란히 나타났다.
 
석담리 이정표를 지나서 한참 가니 율곡선생이 고산구곡가를 노래한 석담계곡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리 건너에 소현서원이 눈에 보였다. 시계를 1570년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단아한 자태를 보여 주었다. 돌다리를 대신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한 소현서원에 들어서자 율곡 선생이 은병정사의 대청에 앉아서 강독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일성종합대와 공동 연구 양해각서 교환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은병정사는 퇴계가 지은 도산서당과 달리 크고 우아하다.  성리학자로 안빈낙도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국가 경영을 고민하던 학자 정치가로서 율곡의 면모를 보여 준다.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건물의 단청은 신사임당이 그린 식물 그림을 연상시킨다.
 
소현서원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북쪽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하는  3개의 서원을 모두 방문했고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된 것에 기뻐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소현서원에도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현판 외에 조선의 서원에서 있어야 할 백록동규나 서원규약이 걸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료들이 서원이 소장했던 서원지 외에 다른 책, 책판들과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어느 곳에 소장되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도 앞으로 해야 할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일성종합대의 역사학과 교수들과의 공동작업이 중요할 것이다. 양 대학이 교류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한 것은 바로 이런 공동작업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북쪽의 학자들과 함께 의미 있는 작업을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역사문화학부 한국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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