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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후 1년 반, 우리는 어디로 가나

책 속으로
빨간 잉크

빨간 잉크

빨간 잉크
이택광 지음

좌파 문화연구자의 한국사회 진단
불행의 원인 개인 탓으로 돌리는
자기계발 이데올로기가 문제

연두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지난해 촛불은 비가역적인 사건이었다. 한 번 바깥으로 불러낸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거인을 다시 알라딘 램프 안으로 집어넣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손에 잡힌 것 같았던 게 어디 처음이었나. 어쨌든 탄핵과 정권 교체 직후 세상에 우리가 못 할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1년 반. 세상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북핵 협상은 교착상태고 우리 삶은 나아진 게 없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경제 경고음은 갈수록 커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이런 시선으로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를 되돌아본 책이다. 트럼프라는 현상, 박근혜 몰락의 의미, 2030 세대의 비트코인 광풍, 페미니즘 물결과 그에 딴지 거는 ‘일베’ 세력의 남성혐오 주장 등 국내외 따끈따끈한 이슈들을 두루 건드렸다. 저자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영국에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전공했다. 대중·고급문화의 칸막이를 허무는 데서 출발해 태생적으로 삐딱할 수밖에 없는 이 분과학문의 전문가답게 진보 혹은 좌파의 칼날을 예리하게 들이댄다. 때문에 입장에 따라 이씨의 세상 해석이 불편할 수 있다. 알랭 바디우,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등 현대 철학자부터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초석을 놓은 17세기 자유주의 사상가들(홉스, 로크)까지 필요에 따라 광범위하게 건드려 200여 쪽 분량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정권 교체를 부른 촛불시위는 되풀이되기 어려운 정치적 실천이었다. 지난 10월 촛불시위 2주년 기념집회 장면. [연합뉴스]

정권 교체를 부른 촛불시위는 되풀이되기 어려운 정치적 실천이었다. 지난 10월 촛불시위 2주년 기념집회 장면. [연합뉴스]

하지만 책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나태를 떨치고 책을 파고들게 만든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얘긴데, 세계 인구의 1%가 전체 부의 46%를, 혹은 인구의 10%가 전체 부의 86%를, 중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밑의 40%가 나머지인 부의 14%를, 아랫도리 50%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익숙하지만 언제 들어도 충격적인 주장이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나는 어디에 속하나. 바디우의 주장을 이씨는 밀고 나간다. 10%가 누리는 86%의 달콤함은 결국 하위 50%의 희생과 연결되는데 그런데도 이들의 저항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든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과 불성실로 치환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다. 지금 나의 궁핍과 곤란함은 나의 모자람 때문도 게으름 때문도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이런 책을 읽는 소득이자 즐거움이다.
 
책 여러 곳에 퍼져 있는 민주주의의 속성, 그 극단적 표출일 촛불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이씨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형식은 언제나 정치적 실천 이후 남겨진 화석 같은 것이라고 본다. 흔히 살아 있는 생물이라 얘기되는 정치는 비재현적이고 그래서 제도로서 얼어붙은 민주주의를 항상 빠져나가서다. 촛불 이후 우리가 느끼는 단절감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촛불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79쪽).
 
이씨는 바디우의 ‘사건의 자리’라는 개념도 촛불 설명에 끌어들인다. 사건의 자리는 진리(truth)가 드러나는 장소인데, 기성 질서를 불신하는 개인들이 집합으로 표출돼서다. 촛불의 개개인은 집합의 형태로 나타날 뿐 낱개로 셈해지지 않는다. 세계는 사건들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사유하는 진리에 충실한 주체들이 출현한다(122쪽).
 
요약해 놓고 보니 요령부득의 문장들이 되고만 느낌인데, 어쩌면 읽는 순간의 상념도 사후적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책 말미에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변화는 없던 데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안 역시 우리 현실 속에 있다. 이게 핵심 발언이다. 변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말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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