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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一榮俱榮 一損俱損<일영구영 일손구손>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이 있다. 삼(麻)밭의 쑥(蓬)이란 뜻으로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칠 때 쓰인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고 구부러진다. 그런데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크다 보면 쑥 또한 바로 자란다고 한다. 좋은 벗을 사귀면 그 또한 선인(善人)이 되는 경우라 하겠다.
 
이와 유사한 성어로 송무백열(松茂柏悅)을 들 수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선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이다. 서한(西漢) 시기 문인 육기(陸機)의 ‘탄서부(嘆逝賦)’에 그 말이 나온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芝草)가 불에 타면 혜초(蕙草)가 탄식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嘆)’.
 
결국 ‘송무백열’과 ‘지분혜탄(芝焚蕙嘆)’의 성어엔 벗의 행불행(幸不幸)을 함께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올해 미국과 힘겨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미국을 설득하는 논리로 이와 유사한 성어를 내세워 우리의 관심을 끈다. 얼마 전 아주대가 개최한 한·중 학술회의에는 중국의 미국 전문가 왕판(王帆) 중국외교학원 부원장이 참가했다.
 
그는 미·중 관계를 ‘일영구영(一榮俱榮) 일손구손(一損俱損)’의 관계로 풀이했다. 어느 하나가 잘되면 모두가 잘되고 어느 하나가 망하면 모두가 망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출처는 『홍루몽(紅樓夢)』이다. ‘네 개의 집안이 서로 혼맥으로 연결돼 있어 한쪽이 망하면 다 망하고 한쪽이 흥하면 다 흥한다(四家皆連絡有親 一損皆損 一榮皆榮)’는 대목에서 나왔다.
 
왕판의 ‘일영구영’ 운운은 결국 미·중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미국이 쇠락하는 과정 속에서 중국은 이익을 취할 수 없으며, 미국 또한 중국이 쇠락하게 되면 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중국이 부상하는 것보다 쇠락하는 걸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새겨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은 현재 중국과의 관계를 제로섬(zero-sum) 게임의 차원에서 보는 측면이 강하다. 왕판이 말하는 ‘일영구영 일손구손’의 말보다는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있을 수 없다(一山不容二虎)’는 말이 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맞붙었을 때 장제스가 “저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다”고 하자 마오쩌둥은 “태양이 두 개면 어떠냐. 인민들에게 선택하게 하라”며 맞섰다. 그로부터 7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미·중 두 태양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과연 누구를 택할까. 
 
유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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