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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요즘 이 책]사랑밖에 난 몰라, 게이 소설가 김봉곤

 
작가의 요즘 이 책 - 게이 소설가 김봉곤

 
지금 한국문학은 모종의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어떤 평론가의 진단처럼 페미니즘과 퀴어가 요즘 국내 문학을 설명하는 두 키워드로 주목받는다. 게이 소설가 김봉곤은 그 선두에 있는 작가다. 물론 성소수자 문제를 소설 소재와 주제로 삼는 퀴어문학의 선두에 서 있다는 말이다. 김봉곤은 어떻길래, 또 그의 소설은 어떤 내용이길래 그런 꼬리표를 달게 됐나. '작가의 요즘 이 책(작책)'에서 김봉곤을 만났다. 올해 다섯 번째 작책이다.  
 
작책은 동영상 인터뷰다. 요리하는 소설가 천운영씨가 함께 진행한다. 천운영은 최근까지 서울 연남동에서 스페인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운영했다. '2018 작책'은 인터파크도서와 공동기획했다.
 
문학 작품에서 동성애가 거론된 역사는 서기 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전이다. 적어도 기자의 식견으로는 그렇다. 숱한 문학과 예술 작품의 영감의 원천 노릇을 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정답이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런 아내를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막심했던 나머지 위험을 무릎 쓰고 지하세계를 찾아가지만 아내를 구할 뻔한 거의 마지막 순간 의심과 호기심이라는 인간적 허약함을 극복하지 못해 수포로 돌아간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그다음.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오르페우스는 그 맹세대로 불타는 욕망에 사로잡힌 여성들의 공세를 잘 이겨냈다고 한다. 그다음이 반전이다. 오비디우스는 오르페우스가 여성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사춘기의 젊은 남자들을 꽃봉오리 따듯 취하는 방법을 주변에 널리 알렸다고 썼다. 동성애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성 간의 정념과 관계없다는, 따라서 지조(志操) 같은 윤리적 규율에서 면제되는 대상이라는 걸까. 아니면 동성애는 이성애와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인간 속성이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우화일까. 
 
사설(辭說 )이 길어졌다. 2000년 전에 오비디우스가 있었다면 21세기 한국에는 김봉곤이 있다. 퀴어문학을 거론할 때, 그렇게 말을 해도 될 것 같다. 김봉곤은 커밍아웃한 첫 게이 소설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6월 출간된 그의 난생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가 작책 인터뷰 시점인 10월 하순, 8000부를 찍는 요즘 출판시장의 '중박(?)'을 기록한 성과는 커밍아웃한 첫, 이라는 새로움을 선점한 효과도 분명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김봉곤 이전에 퀴어문학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석제의 단편 '믜리도 괴리도 업시', 윤이형의 단편 '루카'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혹은 아련하게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퀴어 감수성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인터넷 사이트 무지개책갈피(www.rainbowbookmark.com)의 존재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문학 다양성을 옹호하고 성 소수자를 응원하기 위해 관련 작품을 소개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리뷰들을 공유한다는 취지 아래 이 사이트에서 구축하는 퀴어문학 리스트는 그야말로 방대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여기서도 김봉곤, 저기서도 김봉곤, 퀴어문학은 김봉곤이다. 단순히 퀴어문학이라는 현대문학의 새로운 점령지를 선점한 효과인 걸까. 
 
현대예술이 추구하는 새로움은 어쩌면 차이의 게임이다. 같은 젠더 감수성을 공유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박상영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와 비교하면 김봉곤과 박상영의 다름이 분명해진다. 노골적인 동성애 소설인 건 같지만 박상영의 몇 작품은,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일이 초래하는 불가피한 찌질함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는 느낌이다. 김봉곤은 어쩌면 사랑의 과정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름, 스피드』에 실린 6편 중 '밝은 방' 정도가 예외다. 오죽하면 평론가 권희철이 이런 평을 했다. 
 "그는 사랑의 글쓰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까 사랑에  미친 사람처럼,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제어 불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얘기다. 
 밋밋한 기사 구성이라고 해도 할 수 없는데, 김봉곤 소설의 또 다른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전적 함량이 꽤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나름 유명해지면서 몇몇 인터뷰에서 익히 밝힌 내용인데, 등단작인 'Auto'를 두고 거의 자신의 얘기라고 했다. 소설집의 나머지 작품들에도 작품의 화자가 김봉곤이겠거니 여기게 하는 요소들이 꼭 나온다. 소설을 실화로 여기고 읽을 때, 혹은 소설을 교묘하게 실화로 착각하게 만드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읽을 때의 긴장감, 흥미진진함이 김봉곤 소설에는 있다. 자연스럽게 김봉곤 소설은 첫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가 들려주는 게이들의 성과 사랑, 혹은 게이 커뮤니티의 적나라한 생태계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생소한 그 세계를 엿보는 관음의 재미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김봉곤은 왜 자기 얘기를 공공연하게 쓰는 걸까. 독자를 모으기 위한 폭로나 노출의 형식이라고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보다는 실존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나 자신은 그래서 언제나 고민거리다. 남과 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이 심한 개인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훨씬 강렬할 수밖에 없다. 김봉곤 소설의 자전적 형식은 그래서 나온다. 소설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런 생각에 들어맞는다. 
 "나의 글쓰기만큼 내밀한 사랑을 당신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나의 사랑만큼 내밀한 글쓰기를 당신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고, 시작되고, 어느 순간 이어져 있음을 기뻐하다 다시 끊어졌다, 이으려 하고, 우리는 이어질까? 이어지게 될까? 당신과 나는 이어지게 될까? 당신과 내가 이어져 있음을, 이어져 있었음을, 그 환희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하고 글을 쓴다. 그를 쓴다. 사랑하고 있음을, 이야기가 된다는 내밀한 확신에서 오는 희열을 나는 버리지 못하고, 그 어리석음, 단절을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나는, 모든 것을 잇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여 글을 쓴다." ('Auto' 중에서)
 진부한 표현이지만 김봉곤은 자신을 태워 글을 쓴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뜨거움의 세계 어디쯤에 우리는 있는 걸까. 김봉곤은 반드시 동성애가 아닌, 안타까운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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