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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진·정태수·유혁기 … 인터폴 1192명 ‘적색수배’ 중

지난 8월 초 경찰청 외사국 인터폴계 소속 실무책임자인 전재홍 경정과 경기남부청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 등 수사관 10여 명이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로 급파됐다. 사이비 종교 의혹을 받는 ‘은혜로 교회 사건’과 관련된 주요 피의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은혜로 교회를 이끄는 신옥주 목사와 그의 동생 등 교인 4명은 특수폭행과 감금 혐의 등으로 이미 7월 국내에서 긴급 체포돼 구속된 바 있다. 하지만 신 목사의 아들 김정용(다니엘 김)씨 등 교회의 핵심 인물들은 피지에서 400여 명의 신도와 함께 생활 중이었다. 신도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 ‘낙토(樂土)’인 피지로 가야 한다”는 신 목사의 주장을 믿고 2014년부터 재산을 모두 처분해 피지로 떠났다. 그곳에서 신도들은 하루 3~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며 집단농장과 건축현장, 식당 등에서 무임금으로 강도 높은 노동 착취를 당했다. 반면에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한 이들은 신 목사 측 충성파 신도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현지서 우리는 을, 해당국 법·절차 따라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피지에 도착한 전 경정 등 한국 수사팀은 현지 경찰과 합동 체포작전을 펼쳐 적색수배가 내려진 신 목사의 아들 김씨와 그의 측근 등 6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하지만 체포 다음 날 피지 당국은 이들을 모두 풀어줬다. 이를 두고 피지 정치권과 현지 언론, CNN 등 외신에선 “교회와 피지 정부 고위 인사들 사이에 긴밀한 유착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전 경정은 “현지에서 우리는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며 “해당 국가의 법, 절차, 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신 목사 아들 김씨 등 피의자들의 한국 송환을 위해 한국 경찰 당국은 피지 정부 측과 협의를 계속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하거나 한국인이 외국에서 범죄 행각을 벌이는 사례가 매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폴을 통한 국제 공조 수사의 중요성도 더 강조되는 분위기다. 또 얼마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낸 김종양 인터폴 선임부총재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터폴 수장에 당선돼 인터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특히 최근 유명 래퍼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연루된 사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인터폴 적색수배’가 한때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 상위권에 오르기까지 했다. 충북 제천에서 사업하던 마이크로닷의 부모 A씨 부부가 잠적한 것은 1998년 5월. 이들은 친척, 동네 이웃, 동창들로부터 거액을 빌린 뒤 갑자기 사라졌다. 경찰에 공식 접수된 피해액은 5억원이지만 실제로는 2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닷이 “사실이 아니다”며 법적 대응을 언급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사과문을 남기고 방송에서 하차했다. A씨 부부는 뉴질랜드 국적을 취득해 오클랜드에서 한식당을 운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3년 전 마이크로닷이 국내 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한국을 찾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수배자 신분이었지만 뉴질랜드 여권으로 공항 검색대를 무사통과했다. 지난 20년 동안 법망을 피해 오던 A씨 부부는 경찰의 재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경찰은 최근 이들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해외도피 사범이 모두 인터폴 수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적색수배는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와 폭력조직 중간보스 이상의 조폭범, 5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사 관서에서 특별히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중요 사범 등을 대상으로 한다. 적색수배자의 사진, 지문 등 관련 정보는 194개 회원국의 사법당국이 공유한다. 적색을 포함해 수배 등급은 모두 여덟 가지로 나뉜다. 청색은 요주의 인물 정보, 녹색은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는 방범 정보, 황색은 실종자 신원 확인, 흑색은 변사체 정보, 오렌지색은 무기 등의 위험, 보라색은 은신처 정보, 유엔 안보리 특별수배는 유엔 제재 인물에게 내려진다.
 
적색수배가 내려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사건 수사관서가 소속 지방경찰청에 인터폴 수배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지방청은 이를 검토해 경찰청에 보낸다. 경찰청 외사국 인터폴계는 이를 프랑스 리옹에 있는 인터폴 사무총국(본부)으로 전달하고 사무총국은 대략 1주일간의 심사를 거쳐 최종 수배 여부를 결정한다.
 
2조5000억원의 다단계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사망 추정), 돈스코이호 투자 사기사건의 핵심 인물인 유승진 전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 등이 이런 절차를 거쳐 적색수배자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현재 적색수배 심사가 진행 중이다.
 
 
적색수배 정보, 194개 인터폴 회원국 공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수사기관이 요청한 적색수배자(11월 말 기준)는 1192명이다. 연령별로는 30대가 406명으로 가장 많다. 전 경정은 “적색수배자 중 사기 혐의자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인터폴 홈페이지에 한국 수사기관이 요청한 수배자 명단이 공개됐다. 하지만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자수를 했는데도 개인정보가 공개돼 모멸감을 느꼈다”는 한 수배자의 진정을 받아 수배자 정보 공개 제도를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2014년부터 피의자 인권보호 조치의 목적으로 수배자 명단이 사라졌다.
 
적색수배자 중 미검거자가 1000명을 훌쩍 넘어섰지만 국내 전담 인력은 11명이다. 외사 사건에 익숙하고 영어·중국어·베트남어·스리랑카어 등에 능통한 이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늘어나는 해외도피 사범 때문에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강 의원은 “지난 5년간 국외도피 사범은 그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국내 전담 인력을 더 늘리고, 해외도피 사범의 신속 검거와 원활한 송환을 위해 국제공조시스템을 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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