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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상드와?…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시작

기자
송동섭 사진 송동섭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1)
우리에게 친숙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지중해의 한 섬에서 비가 오는 날, 몸이 약한 쇼팽은 외출한 그 누구를 기다리며 작곡을 합니다. 그 누구는 바로 조르주 상드. 작가이며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었죠. 쇼팽의 삶 그리고 상드와의 만남과 오랜 동행의 의미를 동시대의 다채로운 사회 모습과 함께 조망해봅니다. <편집자>
 
일반인들에게 좋아하는 고전 음악 작곡가를 꼽으라면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 우리는 두 음악가에 대해서 학교에서나 책을 통해 혹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실제로 즐겨 ‘듣는’ 고전 음악가를 꼽으라면 내 생각에는 쇼팽이 상위에 올라갈 것이다.
 
폴란드 출신으로 20세 안팎에 파리에 진출해서 그곳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낭만파 음악의 대표적 인물, 쇼팽은 소품 위주의 피아노곡을 주로 썼다. 그의 곡들은 대부분 세련되고 감미로우며 도시의 쓸쓸한 감성도 담고 있다. 그리고 특히 그가 그려내는 그 감성은 우리의 정서와 잘 맞아서 한국의 고전 음악 애호가 중 그의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1847년에 아리셰퍼(Ary Scheffer)가 그린 쇼팽 ⓒpublic domain [사진 위키피디아]

1847년에 아리셰퍼(Ary Scheffer)가 그린 쇼팽 ⓒpublic domain [사진 위키피디아]

 
프랑스 농민의 후손인 쇼팽의 가족이 -특히 그의 부친이- 어떻게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폴란드의 유력 귀족들과 지식인들의 사이에서 자리 잡아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나아가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흥미롭다. 반쪽 폴란드인임에도 불구하고 쇼팽이 폴란드의 민족음악가로 존경받고 오늘날까지 그 국민적 존경이 계속되는 것을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여러분은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개최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피아니스트 등용문인 이 콩쿠르를 폴란드는 긍지를 가지고 국가적 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우승했던 이 콩쿠르는 그들의 민족적 영웅, 쇼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쇼팽이 활발한 음악 삶을 살았던 파리에서 그는 유명 음악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사귀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무엇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이나 외양이나 이념까지 모든 것에서 달라도 너무 달랐던, 당대의 스캔들 메이커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대의 스캔들 메이커 조르주 상드. [사진 위키피디아(퍼블릭도메인)]

당대의 스캔들 메이커 조르주 상드. [사진 위키피디아(퍼블릭도메인)]

 
천사 같은 음악가와 자유분방한 이혼녀와의 만남과 동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두 사람의 핏줄의 엇갈림도 운명의 장난처럼 혹은 누군가가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재미있다. 그녀와 함께 생활한 기간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이다. 그동안 그의 삶과 음악은 정점에 있었고 그녀와 헤어졌을 때 그는 급격히 활력을 잃고 쇠퇴해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쇼팽의 시대는 피아노가 거듭된 개량을 바탕으로 악기 중의 악기로 널리 보급되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전 유럽이 근대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가던 시대였으며 그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변방의 약소국가와 민족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각하던 시대였다.
 
문예적으로는 기존의 틀과 속박을 깨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의 물결이 분출하던 시대였다. 이것들은 쇼팽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유럽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이념들이 생겨나서 만나고 부딪쳤던 파리에서, 쇼팽의 동시대에 펼쳐졌던 세상의 모습들은 다채로웠다.
 
쇼팽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그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 시대의 몇 가지 단면들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 여정에 많은 관심과 동행을 기대한다.
 
송동섭 스톤월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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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