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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병역·기숙사·학비 3종혜택에 … 과학원 1기생 모집 인재 549명 몰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간 1973년 가을 부원장에서 물러나 평교수가 된 나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 코넬대 프랭클린 롱 교수의 초청을 받아들여 이 대학이 신설한 과학기술사회(STS) 연구소에서 초빙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는 한국과학원의 첫 연구소인 ‘과학기술사회 연구소’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 
1975년 8월 한국과학원 제1회 학위수여식. [사진 카이스트]

1975년 8월 한국과학원 제1회 학위수여식. [사진 카이스트]

미국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73년 가을까지 학교 설립 작업이 거의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72년 9월 신입생 모집 요강을 확정했으며 73년 1월 첫 입학시험을 치르고 석사과정 신입생을 선발했다. 549명의 지원자가 몰려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유학을 가는 대신 한국에 남아 과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겠다는 과학기술 인재가 그만큼 몰린 셈이다. ‘두뇌 유출 방지’라는 설립 목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과학원 학생들에게 정부는 병역 혜택을 줬으며, 학교는 무료 기숙사를 제공하고 학비를 면제한 것은 물론 월 2~3만원의 장학금까지 지급했다. 당시 과학원 조교수 월급이 10만원 정도였으니 학생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미래 인재 양성에 그만큼 공들여 투자한 셈이다. 
그해 3월 5일 기계공학, 산업공학, 수학 및 물리학, 재료공학, 전기 및 전자공학, 화학 및 화학공학의 6개 학과에서 총 106명이 입학했다. 부원장으로 있는 동안 첫 입학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92명이 75년 8월 20일 첫 석사로 배출됐다. 
과학원 첫 박사를 배출한 1978년 후기학위수여식.[사진 카이스트]

과학원 첫 박사를 배출한 1978년 후기학위수여식.[사진 카이스트]

석사 과정 학생들의 졸업에 맞춰 75년 첫 박사과정 학생을 뽑아 그해 9월 12일 입학식을 치렀다. 78년 첫 박사가 배출된 데 이어 2015년 2월 1만 번째 박사가 나왔다. 그야말로 뽕나무 숲이 변해 바다가 된 것처럼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뤘다.  

이렇게 배출된 연구자들은 오늘날 정부 출연 연구소는 물론 민간 연구기관의 핵심 두뇌이자 주축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300개가 넘는 대학에서 2000명이 넘는 출신 교수들이 오늘도 미래의 이공계 인재를 지도하고 있다. 카이스트가 없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얼마 전 “카이스트가 없었더라면 삼성전자의 오늘날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해당 기업의 임원으로부터 듣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설립 목적인 산업발전·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평가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2015년의 글로벌리더스 포럼. 전 세계 26개 대학 총장이 모여 고등 교육의 미랴를 논의하는 자리다. 카이스트는 한국에선 유일하게 회원이다. [사진 한국과학창의재단]

2015년의 글로벌리더스 포럼. 전 세계 26개 대학 총장이 모여 고등 교육의 미랴를 논의하는 자리다. 카이스트는 한국에선 유일하게 회원이다. [사진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기술 두뇌를 해외에 뺏기지 않으려고 세운 카이스트가 이젠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2014년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 대표를 초청해 고등교육(대학 이상의 교육)의 미래를 논의하는 ‘글로벌 대학리더 포럼(GULF)’이 카이스트를 회원으로 초청한 것이 그 증거다. 세계경제포럼(WEF) 산하 조직인 GULF는 국내 대학 가운데 카이스트를 유일하게 초청했다. 카이스트는 내 일생의 보람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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