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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시선] 민주노총 제 몫 찾아주기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저는 친노동이지만 친경영, 친기업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에서 경영계를 향해 한 말이다.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언제든지 업어드리겠다는 발언도 이때 나왔다. 노동계에는 더 적극적으로 구애의 메시지를 전했다. “노동계는 지난 두 정부에서 아주 철저하게 배제되고 소외됐다. 문재인 정부는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노동계를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접할 것이다.” 대통령의 첫 번째 업무 지시로 구성된 일자리위원회에서 노사 양측을 격려한 말인데, 1년 반이 지난 지금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이 ‘친노동’인 건 알겠는데, 어째서 ‘친경영, 친기업’을 자처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의 친노동 행보는 기업이나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며 과속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대기업 발표가 잇따랐지만 대통령이 기업인 업어줬다는 미담은 듣지 못했다. 경영계는 납작 엎드려있고, 노동계는 기세등등하다. 외려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민중공동행동은 문재인 정부를 ‘친재벌·반노동’으로 규탄하며 이번 주말 국회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 중이다.
 
지금 정부가 어째서 ‘친재벌·반노동’이라는 건지 하도 궁금해서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가봤다. 재벌체제 청산은 안 하고 은산분리·규제프리존·원격의료 등 재벌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를 해줬으며, 최저임금 인상은 산입범위 확대로, 근로시간 단축은 탄력근로제 적용기간 확대로 무력화하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국민의 눈높이와 따로 노는 이런 잣대에 공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민주노총이 비난한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은 혁신성장을 위해, 또한 조직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최하층 노동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완책이었다. 민주노총의 색안경을 쓰고 보면,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나도 ‘친재벌·반노동’ 딱지를 피할 수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나 원격 의료 도입이 필요하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합리적으로 보완하자는 글을 계속 써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유성기업 노무 담당 임원을 감금하고 참혹하게 폭행한 사건으로 민주노총이 도마 위에 올랐다. 법치를 무시하는 이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근본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됐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전체를 과잉대표하지 않도록 제 몫을 찾아주자는 것이다. 노조가입률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의 노동자는 노조의 우산에서 벗어나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많이 늘었다지만 아직 80만 명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 임금노동자(2027만 명)의 4%다. 임금노동자와 함께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까지 포함한 전체 취업자 수(2709만 명)에 비하면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낮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점에서 그들의 몫을 이해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자동차·조선·철강 업종이 많은 금속노조와 코레일·전교조가 핵심이어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경사노위에는 비정규직·여성·청년 대표도 참여하는 만큼 조직된 대형 사업장의 목소리라고 배제할 이유는 없다.
 
경사노위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은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일자리위원회는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인수위 역할을 맡아 5년간의 정책 로드맵을 만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한국노총과 함께 근로자 대표로서 발언하고 결정한다. 최저임금이 조직력 강한 대기업 노조에 유리하게 급격히 인상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민간위원을 전문가로 바꾸려는 보건복지부 계획에 제자리 없어진다고 민주노총은 대놓고 반대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에서 노동계를 국정 파트너로 대하겠다며 “노동과 직접 관련 있는 정부위원회는 물론이고 노동과 직접 관련 없어도 간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필요한 정부위원회에 양대 노총 대표를 위원으로 모시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공언한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민주노총 자리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제까지 성공한 모든 사회운동은 다수자 운동이었다.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소수자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자신을 제외한 세상 대다수에 ‘친재벌 반노동’ 딱지를 붙이고 선명성 경쟁을 하는 민주노총이 노동자 전체와 국민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마땅히 누려야 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조직 이기주의에 얽매여 노동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지금의 민주노총이 국정 파트너로 대접받고 각종 위원회에서 발언하는 것은 더 이상 지켜보기 힘들다. 우리 모두의 미래까지 민주노총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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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