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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법보다 주먹 쓴 금융위원장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금융위원장이 뭐하는 자리인지 찾아봤다. 금융위원회법 제1장 제1조는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하는 게 목적이라고 되어 있다. 어디에도 신용카드 회사의 팔을 꺾어 정부의 정책 실패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를 도와주라는 구절은 없다. 신용카드업 관련해서 금융위원장이 보호할 대상은 금융 수요자 곧 ‘카드회사와 카드 회원’이라고 법이 못 박아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최종구 위원장은 신용카드사 압박에 앞장섰다. 대통령이 “영세 자영업자 수수료 감면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다음날 바로 8개 카드사 대표를 소집했다. 그래놓고 연 5억원 초과는 물론 500억원 가맹점도 수수료를 낮추도록 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은 금융위가 결정할 수 있는 우대수수료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영세한 가맹점’(18조 3항)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때 영세 가맹점은 연간 매출 5억원 이하다. 당장 업계에선 “연 30억 매출도 영세 사업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최종구는 금융위의 권한 밖 일을 한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법과 시행령, 감독 규정을 (이번 대책에 맞춰) 고치면 된다”고 말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최 위원장은 평소 사석에서 “카드 사용으로 이득을 보는 건 소비자인데 왜 그 비용을 영세 가맹점이 부담해야 하나”고 말해 왔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따르는 게 장관의 임무”라고도 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특별 지시를 듣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카드업계는 “사업을 접으라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하기야 최 위원장만 탓할 일도 아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는 권력의 단골 선심성 메뉴가 된 지 오래다. 2007년 2~3.6%였던 수수료율은 아홉 차례에 걸쳐 2016년 0.8(영세가맹점)~1.3%(중소가맹점)까지 낮아졌다. 결과는 익히 아는 바다. 카드회사들은 콜센터를 아웃소싱하고 사람을 잘랐다. 고객 혜택을 줄이고 고금리 대출을 늘렸다. 결과를 단순화하면 수수료 인하→80만 가맹점주 연 214만~505만원 혜택→카드사 수수료 최대 1조4000억원 감소→고객 혜택 최대 1조4000억원 감소가 될 것이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돈은 소비자가 내는 꼴이다.
 
이번 조치로 카드사는 순이익(연 1조2000억원)보다 더 많은 수수료 감소(1조4000억원)를 감당해야 한다. 업계 상황은 최악이다. 카드업 자체가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 롯데그룹이 롯데카드 매각을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생존이 급한 카드사들은 카드론 같은 ‘딴짓’에 내몰릴 것이다. 본업 대신 고리대금업에 열중하면 자칫 제2의 카드 사태가 날 수도 있다. 2003년 ‘길거리 모집’을 불사한 과당 경쟁 끝에 LG카드가 파산했다. 그해 LG카드가 낸 5조6000억원의 적자는 한국 기업 사상 최대였다. 금융 당국이 업계의 위험을 줄여주기는커녕 되레 부추겨서야 되겠나.
 
게다가 금융위원회법 제2조는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격을 건드리는 것이야말로 자율성을 가장 크게 해치는 일이다. 오죽하면 ‘관치의 화신’으로 불렸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6년 전 여전법 개정 당시 “신용카드 회사는 공기업이 아니다.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끝까지 반대했겠나. 업계에서 “차라리 신용카드사를 모두 공기업화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권력이 가격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유례가 깊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가격 통제는 모르핀과 같다. 잠시 고통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빈곤을 막을 수도, 사라지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도 없다. 물론 자영업의 몰락을 막을 수도 없다. 금융위원장이 딱히 몰라서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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