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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교착된 북·미 핵협상 시즌2, 길어지면 대북 강경론 커질 것

북핵 협상을 둘러싼 미국 내부 분위기
한반도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오나. 미국과 북한의 핵 협상 시즌2의 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달 말 북한에 고위급 회담을 희망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 상태가 지속하면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이 재가동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 재무부는 지난 7일 북한의 해외자산 6300만 달러를 동결했고, 미 법무부는 북한과 금융 거래를 도운 싱가포르 등의 기업에 대해 자산 몰수소송을 제기했다. 북한엔 충격이다. 최근 미국 외교안보 인사들을 두루 만난 세종연구소 이성현 통일전략실장의 보고서와 인터뷰를 토대로 북핵에 대한 미국 내 분위기를 살펴본다.
  
이성현 실장에 따르면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제의한 폭파된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검증을 ‘셀프 비핵화’ 조치로 보고 있다. 그는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를 중요한 비핵화 결정으로 보는 미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검증에 대해 미국이 상응한 대가를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라고 했다. 북한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 퍼져있다. 그래서 미국 관가와 전문가들 사이엔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회의감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지난 6일 중간선거를 통해 미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협상에 냉소적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 내년 3월 초쯤 시작하는 키리졸브(KR·미군의 한반도 증원훈련) 한·미 연합연습과 이어지는 독수리연습(FE·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이 있어서다. 이 훈련에 미 예비군들이 동원되는 스케줄을 고려하면 내년 초까지는 북한 비핵화 협상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연합연습은 시작되고, 북한에선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미국도 북한에 비판적으로 바뀌고, 교착상태는 더 오래간다. 북핵 협상의 교착상태가 지속하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화염과 분노’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으로 가지 않으려면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1월에는 열려야 하는데 이미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이 실장은 “북한이 지난 1년간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협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로썬 미국이 바라는 북한 비핵화 조치는 포괄적이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프로그램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핵물질 생산능력, 탄도미사일과 그 생산능력의 포기에 미국은 단호한 입장이다. 이를 위한 초기의 의미심장한(significant) 조치로 핵무기와 시설, 핵물질·탄도미사일 등의 재고와 위치, 핵프로그램 등에 관한 전체 리스트 제출을 미국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생각은 다르다. 북한은 핵리스트 제출 뒤 협상이 깨질 경우 북 핵·미사일 기지에 대한 미국의 공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로의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조야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실질적으로 확인하자는 입장이 다수다. 또한 이런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가 있어야 경제제재 해제와 미국의 정치적 양보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위기다.
 
북·미 사이에 한 치 양보 없는 상태에서 비핵화 방법론을 바꿔보자는 의견이 소수지만 미국 진보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내 다수인 보수진영은 전통적인 비핵화 방식인 ‘핵신고→검증→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선 협상 결렬 때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군사옵션으로 회귀할 것을 우려해 보다 현실적인 비핵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긴장 완화→다수의 소규모 협상→완전한 비핵화’다.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 등에 따르면 ‘다수의 소규모 협상’이란 북한 핵시설은 ‘폐기→폐기 검증’을, 핵무기에 대해선 ‘(현지)폐기→(해외)이관’ 등의 사이클을 몇 차례 반복하는 방식이다. 북핵 일부를 시범적으로 폐기해본 뒤 성과가 나면 반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처럼 방대한 규모의 핵프로그램을 한 번에 폐기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의 인식 차이도 심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가 미래에 발생할 일로 보는데, 한국 정부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간극 속에서 김정은이 아무런 비용도 치르지 않고 연합훈련을 중단시키는 등 한·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보는 미 전문가들도 있다. 더구나 연합훈련 중단이 한·미 공동방위태세와 동맹의 약화로 악순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달 말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대북제재 완화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할 게 아니라, 한·미동맹을 강조해야 한다”고 이성현 실장은 조언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천하지 않아 입지가 곤란해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디테일로 들어갔다가는 냉소만 돌아올 것이란 얘기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바라보는 한·미 시각도 전혀 다르다. 미 정부·정보기관·의회·퇴직 관료·전문가 대다수가 북한의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요구를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라 ‘덫’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핵보유국을 합법화하고 ▶한·미동맹을 분열하며 ▶심지어 북한 주도의 통일을 촉발할 수 있고 ▶북한 도발 때 미군의 한국 지원을 법적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종료하고, 주한미군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라는 미국 내의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종전선언은 ▶핵 협상에서 북한에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고 ▶북한 내에서 ‘대미 승리’라는 김정은의 선전에 활용되고 ▶주한미군 철수의 논리를 제공하는 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미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특히 미군 내에선 한국이 북한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판단도 존재한다. 종전선언 속에는 주한미군을 내보내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있다고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에게 종전선언을 주문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김정은이 능수능란한 협상가라면 그가 (비핵화의) 의미심장한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라는 게 최근 미국 분위기를 반영한 이 실장의 지적이다. 김정은은 국제관계의 마지막 수단엔 ‘힘의 논리’가 앞선다는 점을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부도 중국과 일본이 1세기 만에 복원해 팽창하는 ‘한반도 대전환’ 상황을 고려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속한 북핵 해결이 우선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소모적인 논쟁으로 우물쭈물하다가 나라가 큰 위기에 빠지면 누가 책임질 건가.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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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