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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필사적 각자도생의 끝은 어디인가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고교 교무부장이 시험 문제를 빼돌려 쌍둥이 두 딸을 전교 1등으로 만들었다.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아직 확정적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자식을 위해 욕심과 양심을 맞바꿨다고 믿고 있다. 그 학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교사 자녀뿐 아니라 유력 인사들의 자녀도 ‘내신 도둑질’ 덕을 봤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도 많다.
 
조만간 국회에서 ‘고용 세습’에 대한 국정조사가 벌어진다. 공기업에서 직원 자녀·친인척 ‘끼워 넣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들이 드러난 데 따른 일이다. 공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노동조합은 사기업에 고용 세습을 요구해왔고, 실제로 이뤄진다. 누군가가 태생적 환경 덕분에 좋은 일자리를 얻을 때 그렇지 못한 다른 누군가는 채용 시장에서 들러리를 섰다가 취업절벽 앞으로 더 밀려난다.
 
주민들이 합심해 아파트값을 올리고선 그보다 싼값에 집을 내놓은 이웃에게 욕한다. 매물을 거둬들이라고 집단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아파트 옆에 장애인 학교가, 젊은이들이 조금 싼 월세로 살 수 있는 ‘청년 주택’이 들어서려 하면 어김없이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붙는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특별히 더 사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부터 그랬을 리도 없다. 불법도 불사하는 이런 이기주의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기 대학 간판,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정규직은 ‘N포’ 대열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아파트값은 주인의 노후, 나아가 자녀의 미래를 좌우한다. 학벌·일자리·부동산을 둘러싼 필사적 각자도생의 바닥에 있는 현실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전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에 대해 ‘집단 자살’이라는 표현을 썼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교육·고용·주거에 대한 불안이 ‘불임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이제 이 나라에서 상식에 속한다. 근로 의욕을 가지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도, 딱히 잘못한 것 없어도 구원의 손길조차 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이 각자도생을 부추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은 9층으로 돼 있다. 맨 위층 ‘림보’(가장자리라는 뜻)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이 있다. ‘하느님을 올바로 대하지 않음’이 죄명이다. 예수 출현 이전에 태어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현자,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어린아이들도 그곳에 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의 입구에 그렇게 쓰여있다. ‘지옥 투어’ 가이드 역할을 맡은 베르길리우스는 “희망이 없는 열망 속에 살고 있는 거야”라고 설명한다. 이 최상층 지옥에 있는 이들은 악행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아래층 지옥인과 달리 이렇다 할 본인 잘못이 없는데도 끝없는 절망의 세계에서 산다. 취업절벽으로 내몰린 청년, 실패한 자영업자, 고시원에 갇힌 ‘경제 난민’처럼.
 
나도, 내 자식도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드는 집단 자살의 사회를 무엇이 구원할 것인가. 일자리와 복지가 해결책이라고 지식인, 정치인이 말해왔다. 대통령도 그랬다. 그런데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체감적 복지 수준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노인에 10만원, 아동에 15만원 식으로 세금을 흩뿌려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타개한, 참고적 위인이 있다.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전 스웨덴 재무부 장관이다. 1932년부터 17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유럽에 혁명적 사회주의와 파시즘이 물결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스웨덴은 최상위권 선진국이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그저 그런 유럽국 중 하나였다. 그가 장관이 됐을 때 실업률이 20%를 넘었다. 그는 32년 총선을 앞두고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글을 내놨다. 꼭 필요한데도 민간이 나서지 않는 분야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고, 사회보장을 확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좌파 정치인들의 요구와 달리 민간 기업에 칼을 들이대지 않았다. 자신이 소속한 사회민주당과 뿌리가 같은 노조와도 거리를 뒀다. 출산수당 등의 제도로 출산율 추락을 막았다. 당시로선 획기적 해법이었다. 무려 80년 전의 일이다. 그는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사회민주주의 경제의 이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외쳤다. 스웨덴은 성장과 복지, 두 바퀴로 달렸다.
 
지금 한국에는 비그포르스처럼 창의적이고 용감한 국가 운영자가 없다. 교조적 정책을 고집하며 억지 통계를 내놓는 이들만 있다. 입시와 주거 문제 해결은 계속 미뤄지기만 한다. ‘함께 잘사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체면·양심·도덕에 질끈 눈 감는 필사적 투쟁의 서글픈 현실은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결국 모두가 무한 루프 위를 걷는 것처럼 다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선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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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