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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60대 단골은 발길을 끊었다

초연결사회 고령화 그늘
경기도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60대 여성이 무인 주문·결제기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는 데 5분 이상 걸렸다. 이에스더 기자

경기도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60대 여성이 무인 주문·결제기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는 데 5분 이상 걸렸다. 이에스더 기자

김수광(72·부산시 사하구)씨는 20년 넘게 서울에 살다 은퇴한 뒤 부산으로 낙향했다. 김씨는 요즘에도 옛 직장 동료, 친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찾는다. 부산역에서 KTX만 타면 금세 도착하지만 김씨에겐 고행길이다. 기차표를 미리 구입하기 힘들어서다. 그는 서울 가기 며칠 전 집에서 버스로 왕복 1시간 거리인 부산역에 나가 기차표를 산다. 젊은 사람은 코레일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으로 5분이면 간단하게 예약하지만 김씨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있긴 하지만 앱이 뭔지 잘 모른다. 연락이 뜸한 객지의 아들(45)에게 매번 부탁하기도 어렵다. 아들이 모바일 앱으로 예매해서 ‘선물하기’ 기능으로 표를 보내준 적이 있는데 제대로 실행하는 법을 몰라 기차를 놓친 적이 있다. 김씨는 “뭘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매다 아들과 역 직원이 통화하는 사이에 기차를 놓쳤다”며 “그후로는 번거로워도 꼭 며칠 전에 미리 역에 가서 사둔다”고 말했다. 김씨는 “늙으면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데…”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디지털 소외 현상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PC 등 IT기기를 활용하면 5분이면 되는 일을 김씨 같은 노인 세대는 1시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역에 가서 표를 사면 역 방향이나 문가 자리만 남을 때가 적지 않다. 명절엔 삽시간에 온라인 예매가 끝나 기차를 탈 수도 없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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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IT기기·인터넷 사용 능력)수준은 국민 평균의 58.3%에 불과하다. 젊은층에게는 디지털 환경이 ‘공기’처럼 느껴지지만 익숙하지 않은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의 각종 서비스가 IT기법을 도입한다. 공공기관도 고속으로 ‘재래식 접근법’을 없애고 있다. 10년 넘게 테니스 동호회 활동을 해온 장모(69·서울 서초구)씨는 얼마 전 동호회 활동을 그만뒀다. 테니스장 등 서울시 체육시설은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장씨를 비롯한 노인에겐 문턱이 돼버렸다. 자녀 도움도 한두 번이다. 장씨는 “40~50대 젊은 사람들이 전세낸 듯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며 “여기저기 부탁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기차표뿐 아니라 시민(구민)회관 등의 운동 프로그램, 자연휴양림, 문화재 관람 예약 등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도 스마트폰 앱이나 웹 위주로 정보를 제공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4.3%다. 2025년엔 20%로 뛴다. 특히 70, 80대 이상 초고령 노인이 빠른 속도로 는다. 이들의 디지털 소외는 점점 심해질 게 뻔하다. 세대 간의 디지털 격차도 더 벌어진다.
 
“무인 주문기 무서워 단골 카페 발길 끊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배우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제 배우더라도 디지털 기기나 소프트웨어의 글씨 크기·소리·반응 속도 등이 노인들의 신체와 맞지 않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원년 팬인 이모(60)씨는 지난달 한화-넥센 준플레이오프 1차전 때 암표를 사서 경기를 관람했다. 원래 가격의 3배가 넘었다. 온라인 사이트 예매일을 기다렸다가 예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됐다. 이씨는 “나름대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익숙해서 예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젊은 친구들도 못하는 거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기 당일 현장에서 티켓을 팔 거라 생각해 몇 시간 전에 갔는데, 아예 현장 판매분이 없었다. KBO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은 전량 온라인 예매만 진행하고 당일 취소나 남은 표가 있을 경우에만 현장 판매한다. 이번 준플레이오프는 네 경기 모두 예매로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암표를 사면 안 되는 건 아는데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경기장에 줄을 서서 살 수 있다면 몇 시간이라도 그리할 텐데 한 장도 팔지 않는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최근 식당이나 카페 등에 무인 주문·계산기(키오스크)가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이현숙(63·경기도 안양시)씨는 “좋아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무인 주문기가 들어온 뒤로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문을 시도했다가) 잠시 메뉴를 고민하는 새 첫 화면으로 돌아가고, 뭘 잘못 눌러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이 눈치를 줘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름대로 IT기기 사용에 익숙하다는 어르신들도 온라인 뉴스를 보고 카카오톡·네이버 밴드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은행 거래라든가, 예약서비스 같은 건 쓸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디지털 소외 현상을 겪는 노인들은 ‘사회가 나를 무시한다’는 불만을 가지는데, 이런 것이 쌓이면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도 창구를 없애고 모바일 앱으로 대신한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씨티은행 서교동점에 들어갔더니 창구가 없고 대형 패널로 막혀 있었다. 패널에 ‘현금·통장·종이가 없는 디지털 점포입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노인 세대 내에서도 노인끼리만 사는 1인 가구, 부부 가구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며 “이런 격차가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질 수 있어 노인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가 노인이 되면 디지털 소외 문제가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라며 “현재 노인에게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고, 기차표 예약 등 공공서비스에 ‘노인 쿼터(할당제)’를 두고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김태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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