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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 그림자 속 이탈사업자 속출…제로페이 시작부터 삐걱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수수료 0’ 제로페이 안착할 수 있을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한 식당에서 제로페이 홍보를 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 사업은 다음달 중순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의 한 식당에서 제로페이 홍보를 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 사업은 다음달 중순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다. [연합뉴스]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간편결제 시스템 ‘제로페이’ 사업이 곧 시작된다. 금융결제원의 제로페이 플랫폼 개발 작업이 마무리되는대로 다음달 중순 서울시에서 시범 서비스를 개시한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매장에 비치된 QR코드를 찍으면 소비자 계좌에서 점주 계좌로 곧바로 돈이 이체되는 결제 방식이기 때문에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맹점 매출액 규모에 따라 0~0.5%의 결제 수수료만 물면 된다. 18개 금융회사와 10개의 간편결제 사업자들이 참여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시범 사업을 앞두고 진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막판 참여 보류를 선언하는 업체가 나오는가 하면 관치 논란도 거세다. 제로페이는 안착할 수 있을까.
  
제로페이 결제는 어떻게 하는지부터 궁금했다. QR코드를 이용한 간편결제 시스템은 카카오페이가 대표적이다. 제로페이도 같은 방식이다. ‘카카오페이 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서울 중림동의 한 카페를 찾았다. 음료를 주문한 뒤 카카오톡 앱을 열어 ‘결제’ 코너를 누르자 QR코드 스캔 창이 열렸다. 카운터에 있는 QR코드를 인식시키자 결제 금액 입력 화면이 나왔다. 액수를 입력하자 카카오톡으로 확인 메시지가 왔다. 미리 설정해 둔 기자의 은행 계좌에서 가게 주인 계좌로 이체가 완료된 것이다. 이 메시지를 주인에게 보여주면 결제 과정은 끝난다. 카드나 현금만 쓰던 50대 ‘아저씨’가 생전 처음 해 본 간편결제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드를 건네주면 주인이 알아서 결제해주는 과정보다 번거로운 건 사실이었다. 대수롭잖은 것 같지만, 이 번거로움이 제로페이 정착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결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기자가 체험한 것처럼 손님이 직접 매장에 비치된 QR코드를 스캔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보듯 손님 스마트폰에 뜬 QR코드를 종업원 등이 리더기로 읽는 방식이다. 전자는 판매자가 QR코드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MPM(Merchant Presented Mode)이라 하고, 후자는 소비자(Customer)가 보여준다고 해서 CPM이라 한다. 카카오페이는 MPM에 대해선 결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CPM에 대해선 수수료를 받는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CPM 방식은 밴(VAN·결제대행업체가 깔아놓은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제로페이

제로페이

MPM보다는 CPM이 간편하다. 카드 제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카운터나 주인 스마트폰에 뜬 QR코드를 읽어 들이는 방식(MPM)이다. 매장에 별도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서 감탄했다는 지불 방식이다. 인쇄된 QR코드 판을 걸어놓고 ‘영업’하는 중국 노점상이나 거지도 이 방식을 쓴다. 하지만 신용카드 이용에 익숙한 우리나라 소비자, 특히 구매력 높은 중장년 층은 번거롭게 느낄 수 있다.
 
불편도 불편이지만, 신용카드 사용이 주는 편익도 무시할 수 없다. 제로페이는 신용카드 같은 신용 공여(외상)나 할부 기능이 없다. 제로페이 사용 유인책으로 소득공제율 40% 혜택이 논의되고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15%,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 공제율 30%와 비교하면 매력적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과세 대상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는 점, 간편 결제 이용금액이 대체로 소액일 가능성 크다는 점은 이 매력을 상쇄한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획기적이 유인책이 더 나오지 않는다면 제로페이가 신용카드를 대체할 만한 결제 수단이 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22일 신촌과 명동 일대 상가를 돌며 가맹점 가입을 권유하는 홍보활동을 펼쳤다. 제로페이는 박 시장의 6월 지방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난달 민간추진단을 구성하고 단장에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사무국장을 위촉했다. 이 단장은 “제로페이가 핀테크 산업 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편결제 스타트업 기업의 가장 큰 애로가 오프라인 가맹점 확보인데, 제로페이가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도 이체 수수료 경감이라는 부담은 지겠지만, 지불 결제 사업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 단장의 설명이다. 특히 카드사로 돌아가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이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 단장은 “카드 사용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QR 결제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플라스틱 카드를 갖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거나 촌스럽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官) 주도에 따른 홍역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정한 사업 방향이나 가이드라인에 반발한 결제 사업자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시범사업 참여를 막판까지 고민하다 포기했다. 지금까지 공들여 구축해놓은 12만개의 오프라인 가맹점을 통째로 제로페이에 참여하는 경쟁업체와 공유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시범사업 파트너로 서명까지 한 비바리퍼플리카도 사업 참여 보류를 선언했다. 이 회사의 직불결제 서비스 ‘토스’는 미리 충전해놓은 ‘토스 머니’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를 제로페이에서 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발을 뺐다.
 
제로페이가 민간 기업과 경쟁하는 양상도 보인다. 비씨카드와 신한카드, 롯데카드는 밴(VAN)을 이용하지 않는 공동 전산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되면 밴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이고, 신용카드의 편리성도 누릴 수 있게 된다. 비씨카드는 제로페이 참여를 검토하다 “서울시의 계좌 이체 방식이 우리 구상과 다르다”며 포기했다.
 
‘제로’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건당 50~500원의 이체 수수료를 포기해야 하는 은행들도 썩 내켜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마저 “은행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구조로는 영속성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아예 “사기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정부와 서울시의 드라이브에 참여업체들이 소극적으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면서 민간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관제 페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제로페이를 통해 결제 사업 시장에 대해 인위적으로 가격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최저임금 급격 인상의 부작용을 민간 기업의 부담으로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수수료 인하→카드 부가 서비스 및 혜택 축소→제로페이 확산이라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수수료 인하 압박을 받는 카드업계는 대규모 구조 조정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제로페이가 ‘관제’의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핀테크 산업의 길라잡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시장의 시선은 아직 기대보다는 의구심에 가까운 듯하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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