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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똥원도'까지 진화한 UNIST의 똥본위화폐 실험

 
하나의 큰 산봉우리를 넘으니 그만큼 큰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을 부여잡고 올라가니 다시 둥근 봉우리의 정상에 올랐다. 실제 체험이 아닌 ‘그림’ 얘기다. 하얀색 천 위에 갈색의 둥근 얼룩을 만들고 커피 가루, 그리고 금칠을 해 작품을 완성했다. 1447년 안견이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명을 받아 그렸다는 몽유도원도와 색감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작품명은 조금 다르다. 작가의 이름은 전원길, 작품명은 ‘몽유똥원도’다. 작품명처럼 이 그림에 사용된 원료는 바로 예술가가 한 달 동안 배출한 인분과 커피가루 등이다. 제목과 제작 방식이 다소 장난스러운 듯하지만,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한 달간 진행된 UNIST 내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 [사진 UNIST]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한 달간 진행된 UNIST 내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 [사진 UNIST]

 
바이오 에너지로 순환하는 '인분'...새로운 생태 시스템 향해
 
28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교내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에서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열고 11월 한 달 동안 진행된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는 2017년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100억원을 투여해 시작된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Science Walden Project)’의 일환으로, 새로운 생태 시스템과 순환을 위한 융합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무엇이 순환해 어떤 생태 시스템을 완성하는 걸까. 바로 몽유똥원도에도 사용된 인분(人糞)이다.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는 인분을 바이오에너지로 바꾸고 그 가치만큼 화폐처럼 사용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자연주의를 상징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Walden)’에서 의미를 빌려왔다.
 
전원길 작가의 몽유똥원도(위)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아래). 몽유똥원도는 작가가 한 달간 UNIST 내 과일집에서 머물며 배출한 인분과 커피 가루 등으로 만들어 졌다. [사진 UNISTㆍ중앙포토]

전원길 작가의 몽유똥원도(위)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아래). 몽유똥원도는 작가가 한 달간 UNIST 내 과일집에서 머물며 배출한 인분과 커피 가루 등으로 만들어 졌다. [사진 UNISTㆍ중앙포토]

 
“에너지원 되는 인분, 화폐로도”...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 예술로 의미 확장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핵심은 똥본위화폐다. 똥을 화폐처럼 사용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UNIST는 2016년 5월 교내에 일명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이라고 불리는 실험실을 설치하고 이곳에 인분을 분해해 에너지로 만드는 ‘비비(BeeVi) 화장실’을 설치했다. 용변을 보면 변기에서 인분이 분말로 바뀌고 분말은 다시 메탄가스와 바이오 디젤로 변하는 ‘에너지’가 된다. 
 
변기에서 배기장치를 통해 건조된 대변이 미생물 반응조에서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메탄가스는 보일러에서 난방 연료로, 이산화탄소는 미세조류와 만나 기름을 바뀌는 식이다. 100명 인분이면 18명이 온수로 샤워할 수 있을 정도의 연료가 생긴다. 대변 제공인은 그 양만큼 ‘꿀’이라는 사이버 화폐가 지급되는데, 한번 배설 시 ‘10꿀’이 지급된다. 10꿀의 현재 가치는 한화 500원 정도이며, 화폐 가치 상승을 통해 2020년까지 3600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인분으로 가동하는 작업실 ‘과일집’...버려지는 것의 순환
 
UNIST(울산과학기술원) 내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사월당)에서는 인분을 투입해 메탄가스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로 도시농업용 퇴비를 만드는 미생물소화조도 설치돼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내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사월당)에서는 인분을 투입해 메탄가스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로 도시농업용 퇴비를 만드는 미생물소화조도 설치돼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실제로 이번 예술가들이 한 달간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한 과일집 역시 이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원길 작가는 “과일집에서 11월 한 달간 먹고 자며 배출한 모든 것들을 태우고 갈아, 물감으로 재탄생시켰다”며 “똥이 버려지지 않고 순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일상 속에서 버려지고 지워지는 것들의 의미들을 쌓아 올려 그 가치를 되살리려는 시도라는 게 전 작가의 설명이다. 환경ㆍ경제적 의미의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가 사람들과 공감하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조재원(54)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인분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막고 이를 화폐나 에너지로 사용함으로써 인분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며 “세계 최초로 제시된 똥본위화폐는 환경 순환 경제의 원동력은 물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이언스 월든만의 새로운 도시계획 디자인을 제시해 똥ㆍ에너지ㆍ삶이 순환하는 환경 경제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며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을 예술을 통해 감소시키는 등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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