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마누라 앞에선 "무조건 예스" 했던 남편의 전략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64)
유명 스님의 유튜브를 보던 중, 어머니께 농사를 그만 지으시라고 했더니 서운해하신다는 질문에 스님은 어머님의 전화를 노래 듣듯 들어드리면 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남편이 떠올랐다. [사진 pixabay]

유명 스님의 유튜브를 보던 중, 어머니께 농사를 그만 지으시라고 했더니 서운해하신다는 질문에 스님은 어머님의 전화를 노래 듣듯 들어드리면 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남편이 떠올랐다. [사진 pixabay]

 
유명 스님의 유튜브를 보는데 어느 질문자가 말했다.
 
“연세 드신 어머님이 농사를 짓는데 주말마다 내려가서 도우려니 저도 나이가 있어서 힘들고 피곤하고 해서 농사를 그만 지으시라고 하니 서운해하십니다. 살아있는데 안 움직이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데 당신 하고 싶은 일 하시는데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거들러 오라고 강요하세요?”

“아니요. 말은 안 해도 전화하면 이래서 저래서 힘들어 죽겠다고 노래하십니다.”

“그건 어머님의 십팔번이니 그냥 노래로 들어주면 되고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왜 가서 일해요? 본인이 가서 일해 놓고는 아무 말도 안 한 어머님께 뒤집어씌우는 심보네요. 설령 어머님이 거들어 달라고 전화가 오면 ‘네~’ 하고 대답하고 안 가면 됩니다.

이래저래 잔소리하며 못하게 하기보단 ‘네’라고 대답하고 안 가면 그게 더 나아요. 그리고 당일엔 전화해서 ‘에고,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네요. 죄송해요’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님 입장에서 당신이 일을 반은 도운 게 되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남편이 살아있다면 그 스님이 형님 하자고 했겠다며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만화책의 임꺽정을 닮았다. 우락부락 험한 인상에 누가 보면 엄청 부인을 힘들게 하는 거로 보이지만 부인의 말엔 언제나 ‘예스맨’이었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무조건 달려갈 거야’란 노래도 있지만 내가 어떤 어려운 일을 부탁하거나 시켜도 “예~ 마님” 이러고 대답했는데 단 한 번도 내 부탁을 마무리해 놓은 적이 없다.
 
연탄보일러를 쓸 때의 일이다. 연탄불 가는 건 내가 당번이라 외출 중에 갈아야 할 시간이 되어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말했다.
 
“보일러실에 가서 연탄 좀 갈아놔요.”
“어떻게 하는데?”
“연탄 한장을 불에 올려놓으라고요.”
 
남편에게 연탄 가는 것을 부탁하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연탄불은 다 꺼지고 연탄 한장이 뚜껑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 후에도 부탁해 놓고 돌아오면 그대로였다. 정말 융통성이 없는 사람인지 일부러 연극을 한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중앙포토]

남편에게 연탄 가는 것을 부탁하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연탄불은 다 꺼지고 연탄 한장이 뚜껑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 후에도 부탁해 놓고 돌아오면 그대로였다. 정말 융통성이 없는 사람인지 일부러 연극을 한 것인지 아직도 궁금하다. [중앙포토]

 
집에 와보니 연탄불은 다 꺼지고 연탄 한장이 뚜껑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직도 궁금하다. 남자는 정말로 융통성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일부러 다음부터 그런 일 못 시키게 연극을 한 것인지가….
 
그 후 집을 나갈 때 부탁해 놓으면 돌아와도 그대로여서 내 속이 뒤집혔지만 “부인이 지켜보는 데서 해야 두 번 일이 안 되니까 당신 오면 하려고 했지. 흐흐” 이러면 지켜보는 건 그쪽이고 일은 내가 시작해서 내가 끝내곤 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여자의 마음속엔 모성 본능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까, 덩치 큰 남편도 가끔은 말 안 듣는 큰아들로 변해 보여서 “예스”라고 대답하는 순간 무언가 쾌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 유치한 기분이 늘 숨어 있어서 승리욕을 불러냈다.
 
어느 날 이웃집 지인이 오셔서 마당에서 대화하는 소리에 기절할 뻔했다. 늘 내가 덩치 큰 남편을 조종(?)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 꼴이었다.
 
“형님은 참 신기해요. 그렇게 형수가 시킨 일 아무것도 안 하셔도 안 죽고 아직 살아 계시니. 하하하. 어제도 형수가 일 시켜놓고 나가시더구먼 한 개도 안 하시니 나만 초조해서 형님 살아있는가 걱정돼서 올라와 봤어요. 하하.”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여자의 말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예스만 하면 돼. 어떤 일이든 여자 마음에 들게 하는 건 신도 못해. 그러니 대답만 잘해도 살아남는 거야. 부인이 지켜보는 데서 깔짝거리다 보면 제 손이 제 딸이라고 자기가 다해. 내가 건드려 봐야 어차피 마음에 안 들어. 본인이 다 하고 나는 시키는 일만 도와주며 서 있기만 해도 내가 다한 거가 되는 거야.

그거 왜 책에도 쓰여 있잖아.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오묘한 종이라서 아직도 연구 중이라고. 누군가가 그러더구먼. 여자의 마음은 한마디로 ‘이지저지(이래도 지X, 저래도 지X)’라고. 명대로 살고 싶으면 대답이나 잘해. 뭘 따져? 따지지 말어. 무조건 예스야~ 하하.”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