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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노동정책의 성패, 속도전보다 균형 감각에 달렸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전 통계청장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전 통계청장

여·야·정 합의로 시작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가 무산되는 분위기다. 지난주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민주노총이 위원회에 참여도 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가 마치 민주노총 때문에 연기하는 것으로 보여 걱정을 더 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노조 친화적 정책을 많이 제시하고 매우 신속하게 집행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원래 정책 의도에 반하여 고용과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부정적인 영향을 보완하는 정책이 향후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다. 그러려면 노동계의 양보를 받아야 하는데 이미 필요로 하는 대부분을 쟁취한 노동계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정책에 동의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 출범 이후 대표적인 노동정책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의 시행이다. 그 외에 특례 업종의 축소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만들기,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 개편 시도 등도 언급돼야 할 정책이다. 모두 우리나라의 발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근로자를 위한다는 가치판단의 영역에서는 ‘우월하고 착한’ 정책들이다. 그러나 그 성과를 판단하는 실증적인 영역에서는 낙제점을 향해 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따라 취업 중인 근로자들의 경우 임금소득 증가가 이뤄졌지만,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측면들이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취약계층 근로자와 실직자 취업은 더 어렵게 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사업소득 감소로 소득분배까지 악화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본질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자 하는 정책도 방향은 맞다. 그러나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만들 수 없다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무책임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일부 정규직의 과도한 고용 보호 수준을 적정화시켜야 수많은 비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시론 11/28

시론 11/28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 확대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사 간 득실의 균형을 잡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후속 조치로 이어진 시간당 최저임금 계산 시 주휴 근로시간을 포함하는 행정해석은 지나치게 과감해 보인다. 최저임금 수준이 적정화된 상황이라면 주휴수당의 존재 자체가 의문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현행 대법원 판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해석을 관련 법 조항 개정도 없이 정부 차원에서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백미는 단연 근로시간 정책이다. 주말을 제외한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이 아닌 52시간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또한 법정 근로시간 적용대상의 예외인 특례업종을 26개 업종, 약 400만 명에서 5개 업종, 약 100만 명 정도로 축소한 것도 획기적인 성과다.
 
그러나 이 또한 탄력적 근로의 확대 병행과 속도 조절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2004년 ‘주 5일제’와 2018년의 ‘주 52시간제’의 시행 과정을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노사의 논의과정과 입법예고 기간, 기업 규모별 단계적 시행의 기간과 시행 전 혼란을 예방할 수 있는 상세한 가이드라인의 제공 측면에서 그러하다. 주 52시간제의 시행은 주 5일제에 비해 대략 2배 이상의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속도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는 ‘위반 사업주 6개월 처벌 유예’를 시행하고 있다. 옳은 판단이었다.
 
또한 주 52시간의 확정 시 탄력적 근로의 확대를 동시에 도입하지 않은 것은 국제적 기준과 비교해 볼 때 지나치게 노동계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속도전을 통해 노동계에 많은 선물을 주었으면 일자리 창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기업의 인력운영 어려움도 헤아려야 했다.
 
노동계는 현행 3개월 단위인 탄력적 근로제가 6개월 이상으로 확대되면 상당한 임금손실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탄력적 근로의 확대 시 임금보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이미 근로기준법 51조에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연장근로나 소정 근로의 배분 방법에 따라 아예 임금의 손실이 없을 수도 있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생산성이 향상되면 임금은 오를  수도 있다.
 
이미 도입하기로 한 탄력적 근로의 확대가 또다시 일부 집단의 잘못된 이해관계에 막혀 좌초하거나 지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실수를 또 반복해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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