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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기업도 경기 최악이라는데···딴소리 하는 정부

평일 저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산의 자갈치시장.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일 저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산의 자갈치시장.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과 가계가 느끼는 체감경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만큼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 정부만은 “경기가 나쁜 게 아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오는 12월 BSI(기업경기실사지수)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88.7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적인 촛불시위 등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 2월(87.7) 이후 22개월 만의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경기 호전을 기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BSI가 이렇게 좋지 않게 나온 데엔 한국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의 경기 전망치가 82.1로 3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경연은 설명했다. 제조업 중에선 자동차와 조선 등을 포함한 중화학 공업의 전망치(79.2)가 매우 좋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 대통령 탄핵 정국 때 경기가 엉망이었는데 지금이 그때 수준으로 나빠진 것 같다”며 “이런 불경기가 고착화할까 두렵다”고 말했다.
 
기업 경기가 이러니 가계가 느끼는 경기가 좋을 리 없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CCSI(소비자심리지수)는 96.0이다. 이는 지난해 2월(93.9)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비자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CCSI가 100보다 작으면 소비심리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평균적인 경기 상황보다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CCSI를 구성하는 6개의 개별 지수를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경기판단(62)과 향후경기전망(72)은 10월보다 각각 5포인트 하락했다. 우리 경제가 예전보다 안 좋아졌고, 앞으로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경기가 가라앉으면 수입과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 가계수입전망(97)이 2포인트, 소비지출전망(108)은 3포인트 떨어진 게 이를 방증한다. 현재생활형편(90)과 생활형편전망(90)도 1포인트씩 내려갔다. 특히 생활형편전망은 2011년 3월(90) 이후 7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가격전망CSI(101)는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난 9월(128) 고점을 찍은 뒤 두 달 연속 급락한 것이다. 9·13 부동산 대책 등 정부 대출규제 정책에 따른 주택매매거래 둔화, 시중금리 상승, 지방 집값 하락세 지속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취업과 고용에 대한 기대감도 줄줄이 떨어졌다. 이달 임금수준전망CSI(118)와 취업기회전망CSI(75)는 각각 3포인트, 4포인트 내려갔다.
 
국내 경제기관들과 더불어 해외의 경제기관들까지 한국 경제가 침체하고 있다는 점을 잇따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올해 9월 한국의 CLI(경기선행지수)는 99.1로 전월(99.3)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이 수치는 OECD 평균(99.50)보다 낮은 수준이며, 미국(99.85)이나 G7(선진 7개국·99.72), 유럽연합(99.59) 등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의 CLI는 지난 5월 100 밑으로 내려간 이후 4개월 연속 하락했다. CLI가 100을 밑돌고 하락 추세라면 경기 수축 국면으로 평가된다.
 
또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등은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건 경기 침체기 신호로 통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만은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1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경제) 위기냐 아니냐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일 “내년에도 상당 부분 힘들 수 있겠지만 지금의 경기 상황이 경기 침체나 위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만 빼고 거의 모든 주체와 기관들이 한국의 경제 상황을 좋지 않게 본다는 사실이 이번에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특히 제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제조업 위기는 2019년에 심화할 전망”이라며 “제조업의 성장동력 제고를 위한 과감한 규제개혁과 기업 중심의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탄핵 정국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만성적이고 구조적이며 지속적인 경기 침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는 이제야말로 ‘임금을 올리면 고용은 줄어든다’는 등의 기본적인 경제 원칙들에 순응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
흔히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기업·가계 등 경제 주체의 심리 변화가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월드컵·올림픽 등 장기간의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 소비가 늘어나고, ‘세월호 참사’ 등 악재가 터졌을 때 경기가 침체되는 것은 바로 심리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들이다. 경제 주체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BSI·CSI와 같은 심리지표는 물가상승률, 실업률 등 전통적인 경제지표가 포착하기 어려운 경제 주체의 심리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다. 해당 월에 파악한 지수를 즉시 공표하기 때문에 동행지표로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청와대나 정부가 BSI와 CSI 추이를 면밀히 살피는 것도 그때그때의 경제 심리를 파악해 맞춤형 경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김민중·정용환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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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