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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백두칭송’에 탄식한 태영호 “北서 일주일만 살아봐라”

민주투사 자처했던 그들…북한 인권엔 ‘침묵의 카르텔’
 
북한 인권 실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라 안팎으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유엔총회 인권 담당인 제3위원회는 이달 중순 대북 인권결의안을 콘센서스(전원 동의)로 채택해 내달 총회로 넘겼다. 국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측에 김정은 체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범 수용소 즉각 해체’ 등을 요구하는 인권 단체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한 인권 이슈에 유독 침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와대와 정부, 친여 성향이나 관변 단체 등에 포진한 소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다. 한때 민주화와 인권 수호의 투사를 자처했던 이들이 유독 북한 인권 앞에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뭘까.
 
요즘 매주 화요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선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릴레이 모임이 열린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약칭 한변)을 이끄는 김태훈 변호사가 2014년 10월 시작한 화요집회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한 어제 행사가 77번째 모임이다. 앞서 정치범 수용소 해체, 북한 억류 국민 석방, 국군포로 송환을 촉구하는 주간 모임이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2016년 3월 여야 합의로 북한 인권법이 공포되고, 같은 해 9월 시행에 들어가면서 잘 될 것이란 기대감에 집회를 접었는데,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 재개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북한 인권 개선 등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김정은 서울 답방이나 제재 해제 같은 사안에만 몰입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인권법 제7조는 ‘북한 인권 증진에 관한 중요 사항에 관하여는 인권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만 3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도 정부는 북측에 이 문제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산림 지원이나 스포츠·예술단 교류 같은 문제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다. 북한에 억류된 6명의 우리 국민도 기약 없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3년 북한 당국에 불법 체포된 김정욱 선교사는 5년이 넘었다. 대북 인권단체들은 김 선교사 등 억류자 석방과 정치범 수용소 해체, 국군포로 생사 확인과 송환, 강제 북송 탈북민 처벌 중지, 전시 및 전후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송환, 이산가족 자유왕래를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해 줄 것을 촉구해 왔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건 오히려 국제사회와 관련 기구다. 그 중심축은 유엔 대북 인권결의라 할 수 있다. 지난 15일 소위를 통과한 결의안은 2005년 첫 채택 이후 14년째다. 결의안에 담긴 내용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북한에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현재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중대 인권침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인도주의에 반(反)하는 범죄행위에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선별적 제재 등 2014년 북한 인권조사위(COI) 결론과 권고사항을 검토해 책임 규명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가장 책임있는 자’라는 표현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비판 대상에 오르자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대북 인권결의 채택 현장에서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인권 유린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일부 탈북자들에 의해 조작된 거짓 주장”이라고 말했다.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이 외세와 작당해 동족의 잔등에 칼을 박는 짓을 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북한 인권과 관련 국제사회가 이른바 ‘최고존엄’인 김정은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 평양 지도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근 공개된 1978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나눈 대화록은 인권 문제와 관련한 교훈을 던진다. 한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제기한 카터에게 박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위협 등 한국적 특수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긴급조치 9호를 그대로 두겠다는 게 당신 답변인가’라는 카터의 압박에 결국 “무기한 유지할 의도는 없다. 당신의 충고를 듣고 그런 방향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게 남북관계를 해치고 북한을 자극하는 일이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탈북 인사나 북한 민주화 단체를 지원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자금 유입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원조기금(NED)’ 등이 반북 활동을 부추기는 불순한 자금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민주화·인권 운동을 펼치며 ‘타는 목마름’을 호소하던 우리 인사나 관련 기구에 이 돈은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대북정책을 총괄했던 한 원로 인사는 “우리 진보세력의 특성은 너무 자기들 편하게 인권을 생각한다는 점”이라며 “독재와 싸우겠다면서도 그 극단이라 할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고 지적했다.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노동당 비서는 한국 망명 후 북한 전문가들과의 대화에서 ‘자유 대한민국에 온 뒤 가장 좋다고 느껴지는 건 무엇인가’라고 묻자 “토요학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소위 ‘생활총화’로 불리는 자아비판 모임은 주로 토요일 기관이나 직장 단위로 이뤄진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정일·김정은을 제외하고는 고위층도 예외 없이 참석해야 하는 자리라고 황 전 비서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주기적인 상호비판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억압하고 인간을 위축되게 만든다는 게 황장엽 전 비서의 지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생생한 증언은 국민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불과 1년 전까지 한반도를 전쟁공포로 몰아갔던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위협도 망각된 지 오래다. 그 자리엔 남북 정상회담 열기와 북한 예술단의 공연 음악, 스포츠 단일팀 붐이 자리했다. 무비판적인 대북 관련 말과 행보가 이어지더니 아예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세력까지 등장했다. ‘백두칭송’ 운운하는 이들 주장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북한에 가서 일주일 정도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거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선봉에 섰던 인사들이 북한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김태훈 변호사에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근본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겁니다. 인권 대변인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최악 상태인 북한 인권에 일언반구 없는 상황에 자괴감을 느낍니다. 몰라서가 아니지요. 알면서도 외면하는 겁니다. 훗날 북한에서도 독재체제가 사라지고 민주화의 봄이 찾아온다면 북한 주민들은 이렇게 따져 물을 겁니다. ‘우리가 그처럼 고통받을 때 당신들은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말이지요.”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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