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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국가주의를 걷어내야 경제가 산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세상 물정 몰랐던 대학생 시절 선뜻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려고 재정지출을 늘리지만 그로 인해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것이 현실 경제의 메커니즘이란 것이었다. 정부는 재정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걷거나 차입(국채 발행)을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민간의 소비·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구축효과는 한정된 자원을 민간이 쓰느냐 정부가 쓰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그런데 돈을 쓰는 효율성은 정부가 민간을 이길 수 없다. 구축효과는 왜 가급적이면 정부가 나서지 말고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독려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꼭 구축효과가 아니라도 정부가 의욕만 갖고 전면에 나섰다가 경제를 망친 사례는 부지기수다. 박근혜 정부 때 부동산 띄우기를 통한 경기 부양도 그중 하나다. 시장은 정부의 무모한 정책에 꼭 복수한다. 도를 넘은 부동산 부양책은 결국 15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와 누구도 손쓰기 어려운 자산 양극화란 괴물이 되어 한국 경제를 덮쳤다.
 
의욕과 정책의 엇박자는 현 정부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최저임금 인상 과속 질주는 서민과 저소득층의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자 폐업 속출이란 재앙으로 나타났다. 빈부 격차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이 11년 만에 최악의 상태가 된 것은 결국 취약계층이 몸담고 있던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형편에 대한 치밀한 고려와 준비 없이 시작한 소득주도 성장이 악몽이 됐다는 사실은 정부만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여러 부작용은 아무리 선의가 넘친다 해도 정부가 직접 나서 국민 소득을 불려주는 데 한계가 있음을 입증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시장과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국가주의라고 본다면 현 정부에서 쏟아지는 여러 정책들이 그런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나눈다는 협력이익공유제가 한 사례다. 정부는 이 제도가 선진국에서 보편화돼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등에선 대기업과 협력사가 자율적인 계약으로 시행할 뿐 우리처럼 법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주무부처인 중소기업벤처부 관료들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도입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자율로 한다는 것과 법으로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더구나 다수의 재벌과 대기업이 ‘적폐’로 몰리는 서슬 퍼런 분위기에서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고개를 흔들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슬그머니 11년 전 노무현 정부 때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공개되는 분양가 정보 수를 택지공급가격, 토목비, 건축비 등 12개 항목에서 세분화해 62개로 늘리는 주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규정은 내년 1월 중 시행된다. 분양원가 공개의 아파트값 안정 효과는 논란거리다. 현 정부와 시민단체 주장대로 아파트값 안정에 기여할지, 건설업체들의 경고대로 아파트 공급 감소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원가에 일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의 외부 개입에 사업 의욕이 꺾인다는 건설업계의 강변을 마냥 무시하긴 어렵다.
 
난항을 겪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는 국가 개입의 아류다. 개입 주체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집권여당의 후원을 받는 지방정부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임금은 절반이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겠다는 애초 상생 취지는 변질됐다. 임금 수준은 올라가고 단체협약 조항은 노조 주장이 대폭 반영되면서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불황 국면이 뚜렷해진 한국 경제엔 비명이 넘쳐난다. 정부가 재정이라도 풀어 그 고통을 줄이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정 중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재정 의존도는 심각해지고 있다. 2017년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0.8%포인트로 성장률(3.1%)의 4분의 1이 넘는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정부 지출이 더 늘어난 올해는 정부 기여도가 더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올 들어 9월까지 월평균 신규 일자리 10만382개 중 6만2501개가 공공부문에서 생겨났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에 470조원 규모의 초팽창 예산을 편성했다. 투자와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예산안 곳곳에 깃들어있다. 그러나 과도한 재정 지출은 결국 민간을 위축시킨다. 민간의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활력 회복은 요원하다.
 
국가주의적 정책 양산을 비판하면 집권 세력은 시장의 실패를 그냥 두고 보란 말이냐고 되받아친다. 맞는 말이다.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이 그 정도를 벗어나면 언젠가는 재앙이 돼서 돌아온다. 동서고금에 그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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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