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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계약,유언장 소송…가족끼리 왜 이럴까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2) 
제리 하비 박사가 조직의 맹점을 짚어낸, 유명한 ‘애벌린 패러독스’에 착안한 계기는 가족 간의 일이었다. 이처럼 가족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생각해보면 교육이 이뤄지는 곳도 가정이며, 대인관계나 사회적 룰도 상당 부분 가족과의 관계에서 익히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가족끼리 왜 이래』 박민제 지음, 동아시아

『가족끼리 왜 이래』 박민제 지음, 동아시아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흥미진진한 가족 관련 도서를 만났다. 아, 그런데 조금은 씁쓸한 내용이다. 혈연 해체를 다룬 책이니 말이다. 법조기자 출신인 지은이가 법원 판결문을 수집, 분석해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가족 위기를 드러낸 『가족끼리 왜 이래』(박민제 지음, 동아시아)가 그것이다.
 
최근 10년 사이 법원에서 선고된 가족 간 소송 909건의 판결문을 바탕으로 했으니 얼핏 재미없고 딱딱하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아니다. 유류분, 부양료, 간통, 사실혼, 상속 등을 주제로 한 통계를 보여주긴 하지만 소개되는 사례를 보면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란 감탄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판결의 함의와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니 꽤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혼전 계약이란 결혼 전에 각자 일군 재산에 대한 권리관계와 혹시 이혼하게 되었을 때의 재산 분할 비율 등을 미리 명문화한 계약이다. [중앙포토]

혼전 계약이란 결혼 전에 각자 일군 재산에 대한 권리관계와 혹시 이혼하게 되었을 때의 재산 분할 비율 등을 미리 명문화한 계약이다. [중앙포토]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한 것이 발각되면 1,000만 엔, 성행위까지 하면 2,000만 엔을 추가로 지급하고, 부부관계는 월 5회를 기본으로 하되 그 이상은 1회당 50만 엔을 준다.”
 
화폐 단위에서 짐작이 가겠지만 이건 일본의 인기 여배우가 유명 작가와 결혼하면서 맺은 계약의 일부다. 이는 ‘황혼 재혼’으로 빚어지는 재산 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혼전 계약을 이야기하다가 나오는 사례다. 혼전 계약이란 결혼 전에 각자 일군 재산에 대한 권리관계와 혹시 이혼하게 되었을 때의 재산 분할 비율 등을 미리 명문화한 계약이란다.
 
일본 사례는 기가 막히지만 우리나라에도 혼전 계약 제도는 있고 계약 중엔 혀를 찰 만한 내용도 있단다. 우선 지은이는 민법 제829조 부부재산의 약정과 그 변경을 소개하며 이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될 때 도입되었음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조항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결혼할 사이에 재산처분 이야기를 꺼리는 사회 분위기 탓에 2001년에야 인천에서 첫 계약이 등기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이렇게 실제 활용이 늦어진 데에는 드라마 등에서 악독한 부자 시어머니가 가난한 집 딸을 며느리로 맞으면서 재산 포기를 약속하게 하는 장면의 영향도 있다는 제법 그럴듯한 설명도 곁들인다. 이렇게 혼전 계약을 해두면 느닷없이 치매 아버지와 결혼했다며 전 재산을 가로채려는 ‘새엄마’와 친자식 간의 갈등 등 가족 간 재산분쟁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단다.
 
“500만 원을 초과하는 채무를 질 경우 상대방의 서면 동의를 얻어야 한다”든가 “…이유 없이 3일 이상 외박할 때…배우자 동의 없는 보증을 서 가정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을 때는 이혼 시 자산에 대한 지분권을 상실한다”고 이혼 사유와 벌칙조항을 담은 국내 혼전 계약서 내용을 귀띔한다.
 
지은이가 소개한 유효한 유언장 쓰기 실전 가이드를 보면 유언장을 작성할 때 작성 연월일이나 주소가 빠지면 효력이 없으며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타인이 대필하거나 컴퓨터 등을 이용해 출력한 자필 유언장은 무효라고 설명한다. [사진 pixabay]

지은이가 소개한 유효한 유언장 쓰기 실전 가이드를 보면 유언장을 작성할 때 작성 연월일이나 주소가 빠지면 효력이 없으며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타인이 대필하거나 컴퓨터 등을 이용해 출력한 자필 유언장은 무효라고 설명한다. [사진 pixabay]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상 혼전 계약이 전부, 확정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이혼 후 재산분할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식의 내용은 쓰나 마나라는 사실도 일러주니 눈여겨볼 대목이 곳곳에 있다.
 
가족 간 소송을 막는 데 유효한 유언장을 작성하는 방식을 소개하는 대목도 그렇다. 작성 연월일이나 주소가 빠져도 효력이 없으며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타인이 대필하거나 컴퓨터 등을 이용해 출력한 자필 유언장은 무효라며 지은이의 유언장 쓰기 실전 가이드를 제시한다.
 
책은 크게 유류분 소송, 부양료 소송 등을 다룬 ‘혈연 해체’와, 간통과 사실혼 문제를 파헤친 ‘부부의 해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데 아마도 편집자의 솜씨겠지만 일기만 해도 솔깃한 제목이 수두룩하다.
 
‘39년 전 물려받은 재산도 안심 못 한다’(유류분), ‘날 학대한 아버지도 부양해야 하나요’(부양료), ‘부정행위 고위험군은 결혼 6~10년 차, 아이 둘 둔 부부’(간통), ‘선녀와 나무꾼도 헤어지려면 돈이 든다’(사실혼) 등이 그런 예다.
 
어쩌면 판결이란 돋보기를 통해 보는 우리 시대 자화상 혹은 미시사라 할 책은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하다. 적어도 실린 사례들을 읽다 보면 ‘나는 그나마 행복하구나’란 소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자칭 ‘판결문 마니아’라는 지은이의 다음 책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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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