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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허수경 시인의 미발표작 '진주라는 곳' 시 공개

허수경 시인이 생전에 지인인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에게 준 자작시 '진주라는 곳'. 여 대표는 허 시인에게 시를 받아 표구를 해 보관해 왔다. [사진 진주문고]

허수경 시인이 생전에 지인인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에게 준 자작시 '진주라는 곳'. 여 대표는 허 시인에게 시를 받아 표구를 해 보관해 왔다. [사진 진주문고]

 지난달 3일 독일에서 투병 중 타계한 경남 진주 출신 허수경(54) 시인의 미발표 시가 공개됐다. 이 시는 진주를 대표하는 지역 서점인 진주문고 여태훈(56) 대표가 지난 2008년 전후 허 시인에게 편지로 받았다. 여 대표는 허 시인으로부터 받은 이 시를 한 서예가에게 부탁해 글을 쓴 뒤 표구해 2010년부터 서점 내에 한동안 걸어 놓았다가 이후 비공개로 소장하고 있었다. 
 
시의 제목은 ‘진주라는 곳’이다. 
 
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과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대학을 다니고
아버지를 여윈 곳
 
진주라는 곳
거리에 여자아이들이 몰려 다니며 깔깔거리는 곳
거리에 사내아이들이 몰려 다니며 딱지를 놓던 곳
갈증을 풀 길 없는 청년들은 작은 술집에 앉아 
먼 세계의 빛을 이야기 하던 곳
 
작은 강이 흐르고 
강 옆에는 대숲이 있고
늙어가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대숲 아래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곳
 
뒤돌아보면 긴 긴 장강같은 지나간 시간이 있고
다시 뒤돌아보면 장강을 이루던 시간이
신화 자체가 되는 곳
 
눈물 많은 시인이 있던 곳
빛 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 안에 작은 서점 하나 사람을 모으는 집을 짓는 곳
 
대륙 두 개를 넘어 독일에서 나는 그곳을 생각한다
어스름한 빛 하나 작은 집을 내 마음에 짓는다
오 진주라는 곳 
허수경 시인 추모모임 포스터. [사진 진주문고]

허수경 시인 추모모임 포스터. [사진 진주문고]

 
허 시인은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허 시인으로부터 시를 받은 여태훈 대표는 허 시인이 『실천문학』으로 등단하기 1년 전인 1986년부터 진주 경상대 인근에서 서점을 운영해왔다. 이후 여 대표는 지역의 한 공연에서 허 시인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허 시인도 진주문고에 책을 사러 자주 드나들며 여 대표와 친분이 쌓였다. 2008년쯤 허 시인이 진주에 내려와 지인들과 술자리를 할 때 부탁해 이 시를 받았다고 한다. 여 대표는 “그 자리에서 서점에 걸어놓을 시 한 편을 부탁했는데 허 시인이 ‘그럴게요 형’이라고 말한 뒤 저도 잊고 있었다”며 “이후 독일에서 편지로 시를 보내와 그동안 소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7시 진주시 평거동 진주문고 본점 2층 문화관 여서재에서 허 시인의 추모 모임이 열린다. 진주문고가 주최하고 경상대 출판부와 지역쓰담(지역을 기록하는 모임)이 주관한다. 이 자리는 허 시인의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과 독자들이 모여 시인의 작품을 낭독하고, 허 시인과 얽힌 사연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진주라는 곳’ 미발표 시도 이날 전시된다. 
진주문고 한 켠에 전시된 허 시인의 작품들. [사진 진주문고]

진주문고 한 켠에 전시된 허 시인의 작품들. [사진 진주문고]

 
허 시인은 1988년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발표했다. 이어 1992년 두 번째 시집『혼자 가는 먼 집』을 내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독일에서 고대동방고고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학자가 아니라 작가의 삶을 이어갔다. 2001년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5년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2011년『빌어먹을, 차가운 내 심장』, 2016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 과거와 현재 그것을 관통하는 농후한 상처와 그리움에 대한 고고학적 시선을 담은 시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시집 외에도 산문집과 장편 소설 등 다양한 서적을 출판했다. 위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여름에는 산문집『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개정판을 냈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책 표지. [사진 진주문고]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책 표지. [사진 진주문고]

 
추모모임을 주도한 진주문고 등은 이날 모임에서 판매할 시집의 수익금과 모금액은 모두 허수경 시인 추모기금으로 만들어 앞으로 허 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에 쓴다. 
 
진주=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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