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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솔직한 욕망 그린 20대 감독...꿈은 '여자 윤종빈'

정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밤치기'. 사진 왼쪽이 주연을 겸한 정 감독이다. [사진 무브먼트]

정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밤치기'. 사진 왼쪽이 주연을 겸한 정 감독이다. [사진 무브먼트]

이 로맨스, 훅 들어온다. 이달 초 개봉한 신인 정가영(28) 감독의 영화 ‘밤치기’ 얘기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처음 제작에 나선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종로의 허름한 술집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던 젊은 남녀가 ‘밀당’을 벌인다. 구애의 주체는 영화감독인 가영(정가영 분). 새 영화의 자료조사를 위한 인터뷰란 건 핑계다. 
 
“오빠… 하루에 자위 두 번 해본 적 있어요?”
“아… 시작한 거예요? 근데 어떤 시나리오를 쓰는 거예요? (중략) 두 번 한 적은 있고….”
 
성실한 성격의 진혁(박종환 분)은 가영의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약속대로 인터뷰에 답변을 이어간다. 가영의 예상과 달리 여자 친구가 있는 그는 가영의 추파를 철통 방어하는데, 이런 고지식한 면에 가영은 마음이 더 흔들린다. 
 
여성 감독이 그린 솔직발칙 20대 여성의 욕망
대학가 어느 술집이나 노래방 방문을 벌컥 열면 펼쳐질 것만 같은 날 것의 대화. 마음이 앞서 말과 말이 겹치거나, 술자리 열기에서 잠시 벗어난 순간 밀려오는 공허감에 지리멸렬해지는 순간까지 절묘하게 챙긴 영화의 호흡이 자못 신선하다. 이별조차 ‘뽀샵’ 처리한 듯 막연하게 아름다운 여느 연애물에선 느낄 수 없는 현실감이랄까. 정 감독이 각본‧연출‧주연까지 도맡았다. 젊은 여성 주인공의 욕망을 또래 여성 감독이 직접 그린 작품도 오랜만이다.
영화감독 가영(정가영 분)은 영화 자료 조사를 핑계로 마음에 둔 진혁(박종환 분)을 만난다. [사진 레진엔터테인먼트]

영화감독 가영(정가영 분)은 영화 자료 조사를 핑계로 마음에 둔 진혁(박종환 분)을 만난다. [사진 레진엔터테인먼트]

 
“우리 평소 대화가 그렇게 ‘짜여있지’ 않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우디 앨런, 홍상수 감독님 같은 분들처럼 대화의 맛을 살려 쓸 수 있게 단편 때부터 버릇을 들였어요. 극 중 가영 캐릭터요? 저한테 기반해서 썼죠.” 
 
정 감독의 말이다. 주인공 가영은 단편 ‘혀의 미래’ ‘내가 어때섷ㅎㅎ’ 등에서부터 감독 자신이 연기를 도맡아온 분신 같은 캐릭터(단편들은 그의 유튜브 계정 ‘가영정’에서 볼 수 있다). 황당할 법한 상황도 친구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듯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 관객을 설득시키는 게 정 감독의 장기다. 2년 전 자비를 털어 만든 첫 장편 ‘비치온더비치’에선 이별한 옛 애인에게 자자고 조르는 가영의 하루를 기발하게 펼쳐 주목받았다.  
 
배우 조인성 섭외 성사한 대사의 맛
이런 솔직하고 구성진 시나리오는 의외의 캐스팅도 성사시켰다. 지난해부터 여러 영화제를 섭렵한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에 실제 배우 조인성이 출연한 것. 영화에서 조인성을 섭외하려 애쓰던 영화감독 가영은 친구와 “영화 ‘더 킹’에서 조인성이 연기를 잘했다가 못했다 하더라”며 수다 떨다 덜컥 조인성과 통화를 하게 된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하겠다고 하셨어요. 현장에 오셔서 저랑 통화한 걸 녹음해 영화에 넣었죠. 극 중 대사에 대해서요? 별로 질문 안 하시고 그냥 술 마실 때도 평소 각자 작품 하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했어요. 소탈하고 멋있으셨죠.” 
영화 <밤치기>의 정가영 감독이 2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영화 <밤치기>의 정가영 감독이 2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이번 영화 ‘밤치기’에선 가영보다 상대편 진혁이 더 흥미롭게 그려진다. 가영의 끈덕진 구애에 벌컥 화를 내는 대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튕겨내는 그의 행동은 마지막까지 종잡기 어렵다. 감독은 “처절한 실패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사석에서 안면이 있던 배우 박종환이 진혁을 연기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자 연기상을 차지했다. 
 
“종환 오빠의 매력은 남성미와 인자함과 이상함(웃음)? 술자리에서 가끔 보면 자고 있는데 또 안 자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재밌는 구석이 있었어요. 제가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데, 정색하고 화내는 사람한텐 1도 매력을 못 느끼거든요. 훗, 하면서 받아줄 것 같은 착한 사람이라 더 궁금했죠. 그런 게 대본에 녹아들었고 연기를 재밌게 해주셨죠.” 정 감독은 “애인을 두고 흔들리지 않는 남자는 거의 없다”며 “진혁은 인간 정가영한테도 판타지 같은 인물”이라 덧붙였다. 가영은 진혁과 원했던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한예종 자진 중퇴…'여자 윤종빈' 목표
정가영 감독은 매번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세상과 몸으로 부딪히며 말을 거는 행위고, 그래서 꿈같은 일이라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를 다니다 중퇴한 것도 “등록금 300만원씩 내면서 배울 바엔 그 돈으로 차라리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교정을 박차고 나와 홀로 영화를 찍으며 동네 치킨집 서빙부터 편의점, 마트 시식 코너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그에게 올해는 여러 ‘처음’을 구상한 해다. ‘밤치기’를 처음으로 자비가 아닌 제작사와 함께 만들게 되면서 알바를 그만뒀다. 독립 예산으로 촬영을 마친 차기작 ‘하트’를 끝으론 가영 캐릭터와도, 연기와도 작별한다. 이어 각본‧연출에 전념해 첫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다. “멜로물인데 철저히 상업적으로 쓰고 싶어요.” 그렇게 결심한 건 “독립영화가 좋지만,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조금은 지친 마음에서다. 개봉관이 스무 개 남짓했던 ‘밤치기’는 일주일여 만에 상영관이 열 곳 이하로 줄었다. 개봉 한 달이 채 안 된 지금은 일부 영화관과 더불어 VOD로도 볼 수 있다.
 
“예전엔 독립영화에서 상업으로 넘어가면 ‘돈 벌려고 가네’라고 순진한 소릴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더 많은 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갈증이 나서 이번 주말에 저예산 단편 찍어! 이럴 수도 있지만요(웃음). ‘비스티 보이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윤종빈 감독님이 상업영화계에서 주목받고서도 본인이 원하는 비주류의 소재를 밀어붙여 만드셨잖아요. ‘여자 윤종빈’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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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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