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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사법부의 정치화, 그 끝은 공멸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요즘 보면 사법부가 국회 뺨치게 정치를 잘한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23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나와서 한 말이다.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련된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표결 내용은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였다.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며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한창 수사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판사들이 탄핵 촉구 결의안을 냈으니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법관대표회의 이후 “분명한 근거 없이 동료 탄핵을 결의한 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차분하게 토론하고 의결했다. 이런 주장은 위험하고 모욕적”이라는 대응까지 나왔다. 이는 오늘날 법원 역시 당파적 분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부에선 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을 거론하며 2900여명의 판사 전체가 전자투표를 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대표회의도 모자라 전체투표까지 한다면 그 과정에서 분열과 반목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시민들은 자신과 성향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판사의 양심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선수가 심판을 믿지 못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를 쫓아내려 하면 그 게임은 지속할 수 없다. 박지원 의원은 사개특위에서 “국회는 여야가 싸워가며 국민 뜻을 따라가면 되지만, 사법부는 여론만 좇아서는 안 된다. 사법부가 개혁하기도 전에 붕괴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역사적으로 내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 세력을 불러들이면, 정적을 제거해도 결국 외부 세력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다. 판사 탄핵도 자칫하면 정치권이 법원에 합법적으로 개입하는 빌미를 준다.
 
판사 탄핵은 헌법에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탄핵이 이뤄진 적은 없다. 법원 내부에서 판사 탄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다. 반대 의견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성급하게 결의해야 할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의 법원 수사와 법관대표회의의 탄핵 추진은 일반 판사들에겐 대세를 따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며 “이런 것도 새로운 형태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위협받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를 진단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좋은 헌법 시스템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고 본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의 자제력이라는 두 가지 규범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를 ‘가드레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당파적 양극화 속에서 이런 가드레일이 침식되고 극단주의의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권력은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 다수당이 모호한 명분으로 주요 판결을 앞둔 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를 의결한다면 사법부는 마비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잘못을 단죄하고 고치는 것에도 특별한 방법을 쓰기보다는 통상적인 절차를 따라가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은 현재 5당 체제지만 다음 총선과 대선 과정에 당파적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대중과 결합한 극단주의가 세력을 확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빠지는 경제 상황은 이런 세력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합법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집권 세력이나 다수파는 특단의 조치에 의존해선 안 된다. 한 번 선례를 만들면 두 번째부터는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힘이 있어도 자제할 줄 아는 것이 종국적으론 우리 모두를 지킬 수 있다.
 
김원배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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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