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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멈췄다, 초연결사회 공포

24일 오전 11시쯤 발생한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는 경찰·병원·금융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의 작동을 중지시켰다. 전국 50여 개 KT 통신 지사 중 고작 한 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수많은 이들의 삶을 멈춰 세운 것이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사고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초연결 사회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경고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통신구 150m 중 79m 불탔다' 경찰과 소방, KT, 한국전력 등 4개 기관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감식 결과 지하 1층 통신구 150m 중 약 79m가 화재로 소실됐 다“며 26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참여하는 2차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통신구 150m 중 79m 불탔다' 경찰과 소방, KT, 한국전력 등 4개 기관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감식 결과 지하 1층 통신구 150m 중 약 79m가 화재로 소실됐 다“며 26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참여하는 2차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25일 새벽 KT 아현지사 화재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이라는 초현대적 도시에서 이번 사고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이번 사고는 울리히 벡이 경고한 ‘위험사회’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벡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86년 집필한 자신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인류가 풍요로워질수록 위험 요소도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위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닌 근대성이 내재한 재난과 사고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번 시스템으로 가장 먼저 허점이 드러난 곳은 치안 시스템이다. 
 
KT 아현지사 건물 화재는 발생 10시간 만에 진압됐지만 사고 이튿날인 25일에도 여전히 인근 지역 경찰 경비전화와 일반전화, 112 통신 시스템이 일부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의 관할 통신사업자는 KT인데, 경찰청처럼 타사 통신망(SK텔레콤)을 예비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24일 112 신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자 마포서·용산서·서대문서는 직원들을 서울지방경찰청 상황실로 파견해 관할 구역에 들어온 신고를 각 경찰서에 무전 통신으로 직접 전달해야 했다. 경찰관들이 사용하는 업무용 스마트폰도 이날 오후까지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KT가 운영하는 민간 보안서비스 ‘텔레캅’도 먹통이 되면서 이 업체의 방범 장치를 이용하는 인근 지역 업체들도 범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해 KT 통신망을 쓰는 병원·약국들도 진료·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의사·간호사들 간 무선 원내 전화기(콜폰)를 쓰지 못하게 되면서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병원 관계자는 “외래 진료가 없는 주말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평일에 복구가 안 된다면 진료와 수술 시스템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는 경찰·병원 등 사회의 근본적인 인프라가 정보기술(IT)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시스템이 무너졌는데도 시민이 따를 수 있는 매뉴얼이나 대안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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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4차 산업혁명이라며 사회 각 분야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IT를 도입하는 ‘지능정보사회’만 주장했지 초연결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서울 교통정보센터를 통한 버스 정류장의 안내시스템과 전자동 방식의 지하철역 사물함도 화재가 발생한 인근 지역에서 작동이 아예 멈췄다.  
 
경찰 전화 복구 안 돼 무전통신 이용 … “기간통신망 응급복구 체계 갖춰야” 
 
카드 결제 시스템을 갖춘 주차장은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중구·마포구 일부 주차장에서는 운전자들이 주차장에 갇히기도 했다. 신용 카드 단말기와 포스(POS·판매정보관리시스템)를 쓰는 대부분의 상점과 자영업자들은 주말 영업에 차질을 빚고 현금이 없는 시민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 통신 장애를 겪는 가맹점을 위해 BC카드는 ARS 승인을 위한 전담 상담원을 투입했다.
 
KT 아현지사 화재 발생 이틀 전인 22일 오전에는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며 AWS를 도입한 여러 기업과 소비자들이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기업들의 주요 IT 인프라라는 점만 강조됐지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여파는 더욱 컸다.
 
사흘간 두 차례 발생한 통신망·클라우드 장애는 ICT를 기반으로 사람·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초연결사회가 단번에 무너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일 통신망·서비스에만 의존하고 있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안을 정부도 기업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지사에서 전날 화재로 인해 발생한 통신 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KT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지사에서 전날 화재로 인해 발생한 통신 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서이종 교수는 “IT 인프라가 사회 시스템 위에 놓이는 초연결사회는 기술적 위험이 사회 시스템을 덮칠 수 있을 만큼 비대해졌다는 것을 뜻한다”며 “정보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범사회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속한 사건·사고 진압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예상치 못한 위험·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을 함께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광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전기·통신 등 사회 기본 인프라가 거대화될수록 단일 기업·정부가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며 “이번 사고처럼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분절화하고 모듈화해 문제가 된 부분만 빨리 복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KT에 따르면 25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인터넷 회선은 97%, 무선은 63% 복구됐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화재 전 상황으로 복구하려면 일주일가량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KT는 “화재로 인해 피해를 본 유선·무선 가입고객을 대상으로 1개월 요금을 감면할 것”이라며 “다만 매출 감소 등의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에 대한 보상은 별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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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