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김정은,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도 경제 발전 셈법은 달라

북·중 동상이몽
지난 5월 1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박태성 북한 총리는 중국의 경제 건설과 개혁개방을 배워 북한 국가 전략에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많은 북한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그 분야도 당면한 경제·금융 부분은 물론이고 사회 거버넌스와 치안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혁개방을 전담할 기구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도 변혁의 시기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현재 북한의 비핵화 속도와 폭으로는 개혁개방의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했는가에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도발과 대화의 양면전술을 구사해 온 북핵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핵보유국 지위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핵을 버릴 경우 체제 위기가 가중되는 핵 포기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핵 보유 딜레마 빠진 북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른 한편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하지는 않았지만, 그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김정은 시대는 선대의 유훈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탄복할만한’ 성과를 조기에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휴대폰 보유 대수가 580만 대, 장마당이 470여 개에 달하는 자생적 시장을 거슬러 가기 어렵다고 본다. 즉 북한이 핵을 보유해도 체제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핵 보유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중국도 우여곡절을 거쳐 만든 한반도 비핵화 궤도를 유지하면서 북한 체제를 진화시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북·중 관계를 북·미 관계보다 빨리 발전시키고 북·중간 산업 연관 효과를 높여 향후 대북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북한도 국제 제재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고 체제 전환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익숙한 뒤뜰인 중국에 먼저 눈을 돌렸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핵 도미노의 화근을 뽑아 역내 리더십을 확보하고 미·중 관계를 관리하고자 했던 중국은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전격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자 양국 관계도 재정상화의 길로 빠르게 접어들었다. 여기에는 나진과 선봉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진출로를 확보해 동아시아 세력 균형을 만들고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동북 지역의 균형 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중국의 절박한 상황도 한몫했다.
 
중국 랴오닝(遼寧) 성 정부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종합 시범구 건설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한반도 신경제 지도와 접맥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2년 이후 한동안 열리지 않았던 북·중 정상회담이 석 달 사이 세 번이나 개최된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합치했기 때문이었다.
 
 
시진핑, 북한에 세 가지 불변 약속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두 번째 만난 이후 달라진 것 같다.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아가 올해 6월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을 마친 후 시진핑 주석은 북한에 ‘세 가지 불변’을 약속했다. 즉 “북한과 중국의 협력은 국제와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북·중 관계의 공고한 발전을 위한 당과 정부의 노력, 조선 인민에 대한 중국 인민의 우호적 정의(情誼),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변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념적 연대를 넘어 북한이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경우 중국판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북한 정권이 출범한 이후 크고 작은 노선과 정책 갈등이 지속해서 있었고, 특히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북한이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리면서 북·중 양국 관계의 앙금은 깊이 남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이 북한에 가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수 있으나, 그 기억마저 잊을 수는 없다”는 어느 북한 학자의 속내는 이러한 북한 지도부 심경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실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은 중국은 주머니를 두 개 차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하셨다. 내 생각은 다르다. 중국이 찬 주머니는 두 개가 아니라 열 개는 된다. 통일되더라도 주한미군은 유지해야 한다는 김 대통령 말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2005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서도 “중국은 한국과 북한 사이에서 항상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중국, 가장 경계할 나라 될 수 있어”
 
이러한 선대의 중국에 대한 인식을 학습한 김정은 위원장도 “중국은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운 국가이지만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3월 17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보낸 취임 축전에도 과거 20년 동안 줄곧 등장했던 ‘피로 맺어진’, ‘전통적’, ‘친선협력’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뺐다. 심지어 남한 특사단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이 연이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 그리고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밝힌 것도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향후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대중국 의존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 모델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본뜻이 밝혀진 바는 없지만, 아마 베트남 공산당이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면서 해외 원조와 해외직접투자를 결합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마자 미·중 수교가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을 추구한 지 9년 만에 미국과 수교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던 약소국의 운명도 참고했을 것이다. 다만 잘 사는 중국과 한국을 이웃에 두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베트남 모델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의 다양한 경험을 취사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할수록 체제가 취약해지는 ‘성공의 역설’을 방지할 수만 있다면 모든 정책을 실험하면서 정당성의 기반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 적들에게 포위돼 있다는 의식 강해
 
이런 점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보는 몇 가지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결심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고,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것만으로 현재의 대북 제재를 변경시키기도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첫걸음을 걷기 시작했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크게 낮춘 것은 그것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어렵게 만든 비핵화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여건과 구조를 만들고 항상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북한 지도부의 의식과 불안 심리를 줄여줄 필요도 있다. 또 북한의 대중국 의존을 줄이고 남북 경제협력의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일대일로 정책을 본격적으로 동북으로 연계할 것이다. 경제 협력도 중앙정부가 중심이 된 대북 투자를 적극적으로 준비할 준비를 마쳤다. 남북한은 한국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소재 산업의 협력, 농업 부분의 생산성 향상을 통한 공업 부분으로의 노동력 이전, 연구개발 분야 등에서 협력 범위가 넓고 상호 보완성도 강하다.
 
 
‘북한 신사유람단’의 한국 시찰 필요
 
그러나 북한이 ‘지금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금융·투자·기업·통계 등 새롭게 열린 시장경제에 필요한 지식과 인력과 운영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가는 길이 막힐수록 중국을 통해 세계를 보는 창을 바꿔주는 것이다. 현대판 ‘북한 신사유람단’을 유치해 한국적 경험을 교류하고 남북 경제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것은 대북 제재가 지속하는 기간에도 가능한 일이며, 북한의 뜻과 의지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북한의 발전에 대한 욕망도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전통적 단계를 압축하거나 건너뛰고자 할 것이다. 올해 3월 중국을 처음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덩샤오핑(鄧小平)의 길을 좀 더 일찍 걸었어야 했다”고 고백하면서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을 둘러본 데 이어 농업과학원을 찾아 인공지능과 친환경으로 무장한 스마트 팜을 목격했다.
 
역설적이지만 토지와 자원 배분을 독점한 북한의 정치체제는 스마트 시티를 기획하고 자율 주행차와 원격의료의 실험장으로서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북한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중국이 이끄는 제5세대 통신망(5G), 인공지능, 빅 데이터를 결합한 중국 표준을  그대로 채용할 경우 대중국 의존을 높인다는 새로운 고민에 빠질 것이다. 철도와 도로 연결 못지않게 남북 관계의 소프트 인프라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깊이 생각할 때가 되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