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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숫자로 읽는 경제]북한이 외자 유치?…'갈라파고스식 회계'부터 고쳐야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린 가운데 단장을 마친 사무소가 활기를 띠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9월 1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린 가운데 단장을 마친 사무소가 활기를 띠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IMF 가입 의사 있다는 북한, '회계 투명성' 갖춰야 가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미국 외교협회 초청 강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등 국제 금융기구에 가입할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의 인프라를 지원하는 국제적인 펀드 같은 것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개방 경제로 나아가는 데 남한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 인권운동가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지난달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국제 자본 투자를 받으려면 인권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장에서 노동자 인권 탄압이 만연한 나라에 국제 자본 투자가 이뤄지긴 어렵다는 것이지요. 핵 폐기 역시 외자 유치의 필수 조건일 겁니다.
 
케네스 로스 휴먼라이츠워치(HRW)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성폭력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케네스 로스 휴먼라이츠워치(HRW)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성폭력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북한의 '회계 투명성' 입니다. 외국인 자본이 북한 기업에 투자하려면 믿을 수 있는 회계장부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은 회계장부를 통해 어떤 자산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금융 자본은 회계장부를 읽고 투자 의사를 결정합니다. 영어를 알아야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듯이 회계 기준을 맞춰야 경제인들도 서로 소통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 회계는 계획당국 통제 목적…국제 사회서 인정 못 받아 
불행히도 북한은 국제 사회에선 전혀 쓸모가 없는, 자국만의 회계 기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장 경제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선 경제인끼리의 원활한 소통과 교역을 목적으로 회계장부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운용하는 나라이다 보니 생산물을 중앙집중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회계 제도를 운용합니다. 생산물 가격을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결정하니, 자산 가치를 기록할 때, 반영할 수 있는 시장가격(공정가치)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일률적으로 매긴 가격을 바탕으로 작성된 회계장부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골목 대장이 만든 동네 축구 룰을 월드컵 대회에서 인정하긴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요.
 
이재일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운용하는 국가가 경제를 개방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체제이 회계제도 도입이 전제돼야 한다"며 "동유럽 국가 등이 회계제도 개혁을 단행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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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베트남처럼…북한서도 IFRS 도입 언급하는 학자 있어 
북한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싹트고는 있습니다. 강철수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경제연구'란 학술지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회계결산서를 작성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국제회계기준 도입의 필요성을 조심스레 언급합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베트남처럼 자본시장 개방으로 고속 성장을 이루려면 국제회계기준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미 2006년 국제회계기준에 기반을 둔 자체 회계기준을 제정했고 베트남도 2020년 국제회계기준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나라는 모두 북한처럼 옛 소련식 회계제도를 도입했던 나라들입니다.
 
북한의 '갈라파고스식' 회계 정책은 남한에 의해 서서히 개방되기도 했습니다. 남북 경협으로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북한도 이곳에서 돈을 버는 남한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걷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겁니다. 세금을 걷자고 북한식 회계기준을 남한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이 지구에만 적용되는 '개성공업지구 회계규정'을 만들게 됐습니다. 남측 회계기준이 북측에 전파된 첫 사례입니다. 이런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회계학자와 공인회계사들이 지난 7월 남북회계협력위원회를 출범한 것도 남한이 북한의 회계 제도를 이해하고,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입니다.
 
투명한 회계, '백두혈통' 위협할 수도…북한, IFRS 도입 미지수 
그러나 북한이 남한의 희망대로 적극적으로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나설 지는 미지수입니다. 역사적으로 회계는 권력을 가진 자에겐 '양날의 칼'이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재산을 통제하기 위해 회계를 활용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재산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민중 봉기가 일어난 사례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절대 왕정의 회계장부가 공개되면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지요. 당시 루이 16세는 총 국가 수입 2억6400만 리브르 중 무주택 빈민층에겐 고작 90만 리브르를 쓰고 나머지는 군사비와 궁정·왕실에 사용한 사실이 재무장관 네케르의 왕실 회계장부 공개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문 대통령 말처럼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면, 국제 기준에 따른 '회계 투명성'을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북한의 민주주의도 개선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백두혈통'이 독점한 권력을 나눠줘야 하는 상황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힘은 '국부의 분배권'에서 나오는 것이고, 회계는 그런 분배가 합리적인 것인지 계속 질문하게 될 테니까요.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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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