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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미쳐 일본어도 팠다…유튜브 신 '대도서관' 나동현

[나도유튜버]대도서관편, 고졸 백수에서 연매출 17억 스타로
 
‘유튜브의 신(神)’. 
 최근 jtbc 랜선라이프 등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도서관’ 나동현(40)씨의 별명이다. 이는 얼마 전 그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지난해 그가 유튜브 등을 통해 올린 매출은 17억 원, 지상파와 종편 방송까지 본격 진출한 올해는 전년보다 훨씬 많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야말로 1인 크레에이터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그도 과거엔 게임과 비디오에만 빠져 살았던 ‘고졸 백수’였다. 그는 어떻게 ‘유튜브의 신’이 됐을까. ‘나도 유튜버’가 그의 인생 스토리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나도 유튜버
자신의 끼와 재능으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 크리에이터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인터뷰 무삭제 원본과 이들이 전하는 유튜버 꿀팁, 기자의 체험기 등은 아래 유튜브 채널에서 즐기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jL3tV3md-2A
 ①오락에 빠진 소년
  어릴 적 그는 꿈이 없었다. 그저 노는 게 좋았다. 그중 게임이 가장 재밌었다. “오락실 다닌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다고 하면 안 돼요. 한 달 용돈을 꼬박 모아 ‘파이널 판타지’ 같은 롤플레잉게임(RPG)을 사곤 했어요. 한글판으로 안 나온 것들은 직접 일본어를 공부해 가며 게임을 했죠.” 나씨는 친구들 사이에선 ‘전략통’으로 불렸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가장 먼저 ‘만렙(최종 레벨)’을 찍고 공략집을 만들어 반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대도서관의 게임방송에 등장해 유명해진 단추. 보통 3시간씩 진행되는 생방송에서 대도서관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단추가 카메라 앞을 지킨다. 왕준열 기자

대도서관의 게임방송에 등장해 유명해진 단추. 보통 3시간씩 진행되는 생방송에서 대도서관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단추가 카메라 앞을 지킨다. 왕준열 기자

 중고교 시절 나씨에겐 공부보다 게임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1996년 겨울 대학입시가 코앞에 다가왔다. “입시를 얼마 안 남겨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잠시 방황도 했죠. 그러면서 대학에서 가서 뭘 하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결국 나씨는 원서 접수까지 하러갔다가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렸다. 고교 졸업 후에도 그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한 가지 꿈이 있다면 라디오 PD가 되는 것이었는데 고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놀았습니다. 알바나 하면서요.”
 
 하지만 이 때 나씨의 경험은 오늘날 그가 재치 있는 입담과 폭넓은 상식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됐다. 무슨 뜻일까. “매일 같이 비디오를 빌려 봤어요. 당시 오래된 작품이 300원 정도 했는데, 한 편을 보고 또 보고 어떤 날은 서너 편 씩 봤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게임도 매일 같이 했고요.”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 점원에서 명감독이 된 것처럼 이 시절 나씨가 접했던 영화와 게임은 오늘날 그가 만드는 콘텐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도 유튜버' 첫회로 기자와 인터뷰 중인 대도서관. 왕준열 기자

'나도 유튜버' 첫회로 기자와 인터뷰 중인 대도서관. 왕준열 기자

 ②고졸 출신 대기업 사원
그에게 제일 먼저 기회가 찾아온 것은 e러닝 회사에서였다. 온라인 콘텐트를 유통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알바로 시작했어요. 그 곳에서 뭔가 새로운 걸 기획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야근도 자처하고 회의에도 열심히 쫓아 다녔죠. 그러다가 한 두 번씩 제 의견을 말할 기회가 생기고 나중에 사업에 반영되기도 했어요.”  
 
 어릴 적 게임에 그랬듯 한 번 꽂히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였다. 그의 역량을 눈여겨 본 부사장이 그에게 정직원을 제안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전부 대졸 사원뿐이었는데, 고졸도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회사에선 그에게 미디어 제작 업무를 맡겼다. e러닝 사업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동영상 촬영과 편집에 들어가는 외주 비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할 줄 모르지만, 한 달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그 후에 세미나도 다니고 독학을 하면서 동영상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러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업계 2위였던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메가스터디가 1위였고 2위가 이투스였습니다. 왠지 1등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았고 도전을 해야 하는 2등 입장에선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죠.” 그는 지원서 첫 줄에 ‘고졸인데 지원해서 죄송하다’고 썼다. 그 대신 그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입사하면 회사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설명했다. “내용이 맞고 틀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지, 열정과 패기가 있는지가 중요했죠.”
 
 결국 그는 이투스로 이직했다. 얼마 후 이 회사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됐다. 나씨는 졸지에 대기업 사원이 됐다. “당시 SK는 싸이월드로 가장 잘 나가는 IT기업이었어요. 그 안에서 사업이 뭔지 배웠죠. 열심히 일했고 최고등급 평가를 2번 받았습니다.”  
 
 나씨는 사내에서 신규사업을 연구하는 모임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점차 자기 사업의 꿈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막상 제 사업을 하려고 보니 고졸 출신에게 투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은 내가 ‘1인 브랜드’가 돼야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면 학력도 인맥도 필요치 않으니까요.”
대도서관은 자신의 아파트 방 하나를 스튜디오로 꾸몄다. 왕준열 기자

대도서관은 자신의 아파트 방 하나를 스튜디오로 꾸몄다. 왕준열 기자

 ③크리에이터의 원칙 ‘매너’와 ‘기획’
 2010년 그가 처음 1인 방송을 시작했을 때 인기를 끌던 콘텐트는 대부 선정적인 내용이었고 욕설과 막말은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매너 있고 바른 말만 쓰자고. “유튜버가 욕하면 청취자들도 그런 사람들만 모입니다. 나중엔 더 자극적이고 센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게 해선 오래 못 갑니다. 또 온라인 방송엔 청소년들도 많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그렇다 보니 처음엔 그의 방송을 욕하는 이들도 많았다. 생방송 중 괜히 시비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한 두 번은 맞서 싸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조용히 강퇴시키면 그만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몇 년 쌓이다 보니 지금 제 팬들은 모두 매너 있고 예의바른 분들입니다.”
 
 8년간 꾸준히 방송을 하면서 그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현재 대도서관 채널의 구독자는 187만 명. 그의 콘텐트 경쟁력은 웬만한 방송 프로그램 못지않다. 오히려 지상파는 안 봐도 그의 방송은 골라본다는 사람도 많다. 그는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중요한 건 아이디어예요. 다만 그것이 세상에 없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아닙니다. 트렌드를 쫓아가되 그 안에 나만의 관점과 생각을 넣는 거예요. 이걸 기획이라고 부릅니다.”
대도서관의 책상엔 3개이 모니터와 마이크, 조명 등이 구비돼 있다. 왕준열 기자

대도서관의 책상엔 3개이 모니터와 마이크, 조명 등이 구비돼 있다. 왕준열 기자

 그러려면 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남들보다 게임을 잘 하고, 좀 더 맛깔나게 설명하는 게 저의 능력입니다. 옛날 같으면 하등 쓸모없는 일이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꽤 괜찮은 재주로 인정받게 됐죠. 열정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세상에 쓸모없는 능력은 없습니다.”
 
 대도서관을 비롯한 많은 유튜버들의 성공 사례가 잇따르면서 최근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아졌다. 이들에게 그는 무슨 이야길 해주고 싶을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저처럼 대학을 안 가도 괜찮냐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답합니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든요. 촬영하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 또 함께 기획하는 사람이 있어야 훨씬 좋은 콘텐트를 만들 수 있어요. 대학은 이런 시스템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스템’의 가치를 강조했다. “시스템은 날 도와주는 사람들을 뜻해요. ‘내가 잘 났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오래 못 갑니다. 매출이 올라갈수록 시스템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요. 그러려면 ‘협업’이 필수입니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일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능력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죠.”
대도서관의 아내인 '윰댕'도 토그 생방송을 진행하는 인기 유튜버다. 왕준열 기자

대도서관의 아내인 '윰댕'도 토그 생방송을 진행하는 인기 유튜버다. 왕준열 기자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코난 오브라이언 같은 시사토크쇼 MC가 되는 게 꿈입니다. 다만 기존 방송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시사와 문화 등 각종 이슈를 다루는 토크쇼를 구현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하루 3시간씩 생방송을 꾸준히 하는 이유 역시 ‘진행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거예요.”  
 
 인터뷰 끝에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성실함’이었다. “첫 회사를 다닐 때 알바에서 정직원이 된 것도 성실함 때문이었어요. 유튜브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콘텐트가 좋아도 1년은 꾸준히 업로드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식당은 많아도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백종원씨의 말처럼 유튜브도 똑같아요. 제대로 하려면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요.”
 
윤석만·홍상지·조소희 기자 sam@joongang.co.kr 

https://youtu.be/jL3tV3md-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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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