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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서로 옥죄는 ‘물귀신 문화’ 다시 확산?

성장 정체로 자리 줄면서 보신 성향 강해져...폐쇄적 농촌공동체적 잔재 영향이란 분석도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김 과장과 이 과장은 같은 회사를 다니는 입사 동기다. 두 사람은 최근 사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얼마 전 결혼한 김 과장은 배우자 집안이 생각 이상으로 알부자여서 회사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본인도 크게 부정하지 않다 보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는 선망 어린 눈길이 가득하다. 이 과장은 자신이 진행한 신제품 프로젝트 성공 과정을 책으로 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팔리는 데다 벌써 몇몇 케이블TV에 ‘전문가’로 출연했다. 덕분에 모두가 알아보는 스타가 됐다.
 
모두들 “한 턱 쏘라”는 성화에 요즘 두 사람은 정신이 없다. 김 과장이야 월급이 없어도 되는 상황이니 별 일이 없겠지만 이 과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책 인세는 몇 개월 후에나 나오고, TV 출연료는 고작 몇 만원인데 다들 한 턱을 요구하니 월급을 다 털어야 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일, 그랬다가는 ‘혼자 잘 난 체 하는 덜 된 인간’으로 찍힐 것이다. 소소하게 쏠 수도 없다. 돈은 돈대로 쓰고 ‘쫌생이’가 될 것이다. 죽는 소리를 해보지만 사람들은 행복한 비명이라며 열심히 먹어주고 마셔주는 통에 ‘한 턱’은 늘 ‘큰 턱’이 되고 만다.
 
“성과 가로챘다” 비난의 시선
그런데 얼마 전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김 과장에게 향하는 부러움과 자신에게 향하는 부러움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다. 김 과장에게는 그야말로 순수한 부러움을 표하는데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친한 후배 하나가 퇴근길에 쓱 지나치면서 “요즘 이런저런 말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다같이 일했는데 마치 자기가 다 한 것 마냥 책을 냈다’는 말들이 공공연히 흘러 다닌다는 것이다. 팀원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사실 회사 측에서 회사 PR이 될 것 같으니 써보라고 해서 한 것인데 그런 내용은 쏙 빠진 채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사내에서는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는 데다 월급까지 털어가며 한 턱을 쏘고 있지 않은가. 정작 밖에서는 그를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데 안에서는 왠지 찬밥 신세인 것 같아 서운했는데 이제는 억울하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을까? 친하게 지내는 학교 선배를 만나 하소연을 했다. 그 선배는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가 몇 년 전 미국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도 그래요?” 그가 그렇게 물었을 때 선배는 “사실 여기 와서 놀란 게 몇 가지 있는데, 여기도 물론 뒷말이 있기는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적더라”고 했다.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가 정말 달라.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말은 적은데 뒷담화가 얼마나 많은지 나도 그런 거 숱하게 겪었어. 여기는 반대야. 할 말이 있으면 공식적으로 하고 뒷말 하면 찍혀.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회식 때 회사 얘기를 하는 게 당연한, 회식은 회의의 연장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당장 눈초리들이 이상해지고, ‘왜 회의할 때 하지 여기서 하느냐’고 해. 완전히 다르더라고.” “여기 문화에 적응하느라고 고생한 게 또 하나 있는데, 외국인들은 자기 PR을 정말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이 하고 잘 해. ‘아니 어떻게 저런 얘기를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하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야. 내 눈으로 보면서도 감탄스러울 정도라니까. 나는 그게 안 되거든. 아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인들이 비슷해. 다행히 상사를 잘 만나서 ‘당신 생각은 뭐냐?’고 매일 다그치는 통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지. 전에 있던 회사에서 그러면 자기 주장만 한다고 못된 놈 취급을 받았는데 말이야.”
 
‘이 참에 회사를 옮겨볼까?’ 선배의 말을 들은 이 과장은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얼마 전 회사에서 본 일 때문에 더 그렇다. 한 부장이 협력업체로부터 거나한 불법 접대를 요구한 걸 안 다른 부장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접대를 받은 부장은 3개월 감봉 처분을 받은 반면 용감하게 문제를 제기한 부장은 지방 공장으로 좌천됐다. 회사 측의 정확한 해명도 없었다. 발령을 받은 해당 부장도 황당해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괜한 문제를 일으켜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 죄라고 했다. ‘이런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해?’ 요즘 그의 머릿속에서 점차 커져가는 생각이다.
 
어느 회사에서나 뭘 좀 해보려는 이들은 이 과장 같은 경험을 한다. 수많은 말이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는 통에 맥이 탁 풀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도대체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밑도 끝도 없는 한숨을 만들고, 좌절감이 가슴에 쌓인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뚝 떨어진다. 외국계 회사가 그렇지 않다니 우리나라만의 특성일까, 아니면 이 과장의 회사가 망해가는 전조를 보이는 걸까?
 
예상치 않은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래 전인 1960년대 조지 포스터라는 문화인류학자가 멕시코 중부에 있는 한 농촌공동체로 들어가 관찰 연구를 했다. 친춘찬(tzintzuntzan)이라는 이름의 농촌 마을 사람들을 연구 관찰하던 그는 몇 가지 묘한 패턴을 발견했다. 우선, 외부자로 보는 마을과 실제로 생활을 해 본 마을은 많이 달랐다. 외부 사람이 보기에 그 마을은 여느 마을이 그렇듯 평화롭고 다들 서로 친했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그런 경쟁 심리는 끊이지 않는 소문·험담·비방이라는 형태로 마을 곳곳을 흘러 다녔다. 대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곳에서 튀는 행동은 입방아에 오르는 지름길이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눈길에 신경을 썼다. 지극히 공동체주의적인 것처럼 보였던 마을은 관찰을 하면 할수록 자기중심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상한 건 이렇게 자기중심주의적인데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 받기를 꺼렸다. 누군가 농사를 잘한다고 칭찬하면 자랑스러워 하는 대신 몸을 사렸다. 칭찬 받을 이유가 없다거나 “대충 했는데 잘 됐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밖으로는 겸손이었지만 가능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자신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두드러지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우리’보다 뒤쳐지거나 이탈하는 것도 싫어했지만 뛰어난 것도 용인하지 않으려 했다. 한마디로 현재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 그러니까 두드러지거나 앞으로 나서는 걸 꺼렸다. 당연히 리더 역할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튀면 주저앉히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함께 살아가되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묶어 억제하고 견제하고 있었다. 변화보다 안정,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했다.
 
멕시코 농촌마을 친춘찬의 특이점
문화인류학자인 조지 포스터가 1960년대 멕시코 중부의 농촌공동체인 친춘찬(tzintzuntzan) 마을을 연구·관찰한 결과 지극히 공동체주의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중심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다.

문화인류학자인 조지 포스터가 1960년대 멕시코 중부의 농촌공동체인 친춘찬(tzintzuntzan) 마을을 연구·관찰한 결과 지극히 공동체주의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중심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다.

왜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을까? 모든 것의 출발점은 한정된 땅이었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은 정해져 있어, 분할되거나 이전되기는 해도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변화는 좋은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의 땅이 늘어난다는 건 다른 누군가의 땅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고, 누군가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 내려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많을수록 공동체는 분열되기 쉽다.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부지런히 정보를 교환하고 ‘공적(公敵)’을 추출해 그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활동하는 데 제약을 받을 것이고 마을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는 한다. 여기에 누군가가 사심을 슬쩍 끼워 넣으면 정보 교환은 성토가 되고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순기능이 더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일상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 1순위는 처신이었다. 남들의 입방아에 올라 질시를 받지 않으려면 능력이 있어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눈에 띄게 되면 겸손해야 하고, 무엇보다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서지 않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서면 어떨까? 반가운 일이 아니니 이런저런 말들을 섞고 보태 끌어내린다. 내 능력을 드러내지 않듯 남이 잘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친하지만 의심과 상호불신이 깔려있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이러니 어떤 일로 커다란 이익을 얻거나 부자가 되거나 우월한 지위를 얻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자신이 공동체에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이익이나 재산을 가능한 많이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제스처가 필요하다. 그냥 줄 수 없으니 떠들썩한 잔치나 의례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성대하게 자신의 재산을 줄일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마을 축제나 결혼, 장례식이 열릴 때에도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쓴다. 경제적 부에 의한 계급 격차가 등장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재분배 메커니즘이고, 폐쇄적인 농촌 공동체에 맞는 평준화 시스템이다.
 
공동체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공동체 밖에서 벌면 된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간 게 아니기 때문에 이상한 눈길을 받지 않는다. 물론 이때에도 자신의 부가 밖에서 온 것이라는 걸 널리 알리는 건 필수다. 이 모든 건 ‘좋은 것은 양이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 다시 말해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는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가 그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 깊숙하게 박혀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조지 포스터가 연구 관찰한 이 멕시코 마을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떤 관련성도 없는 곳인데, 묘하게 앞에서 말한 이 과장 회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 사실은 우리나라 회사 문화는 물론 농촌 문화와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혹시 이 마을이 한국과 어떤 유전적 관계가 있는 걸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그보다는 폐쇄적 농촌공동체라는 사회구조에서 생겨나는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역시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농촌공동체에서 살아왔기에 이런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지만 상대방 칭찬도 하지 않는 게 그렇고, 남의 능력이나 공을 흔쾌하게 인정하지 않는 문화도 그렇다. 이런 문화는, 자기 PR도 잘하지만 상대방의 능력도 쿨하게 인정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잘못하면 남 끌어내리는 건 잘하지만, 추켜 세우지는 못하는 ‘물귀신 문화’가 되기도 한다. 밖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식적으로는 말이 없지만 뒤에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은 것도 닮았다. 재산이나 지위를 얻으면 의무적으로 ‘한 턱 쏘아야 하고, 크게 쏠수록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같다. 내부가 아니라 밖에서 가져온 재산에 질시를 보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 과장보다 김 과장이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다. 흥부전에서 흥부가 누군가의 땅을 가져와 부자가 된 게 아니라 제비가 가져다준 씨앗에서 나온 보물로 부자가 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지만 남 칭찬도 하지 않아
원래 이런 생활방식이 나쁜 건 아니었다. 농촌공동체 환경에서는 순기능적이었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한 최선의 생존전략이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은 협력 수준이 낮다는 게 단점이다. 작은 협력은 잘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대규모 협력은 그렇지 않다. 왜 대규모 협력이 잘 안 될까? 기본적으로 ‘좋은 것은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과 상대에 대한 불신, 변화에 대한 불안이 바탕에 깔려 있어 공동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선뜻 나서지 않게 한다. 조지 포스터의 말을 빌자면 “삶에 ‘좋은 것’이 제한되어 있고, 더 많아지지 않으며, (흥부가 그런 것처럼 그 ‘좋은 것’을) 행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면, 새로운 사업을 다같이 추진한다고 뭘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곳에서의 ‘협조는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위한다기보다는 상호간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 머무르게 된다.
 
모든 현상이 여기서 시작되니 이 단단한 생각을 깨뜨려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데 방법이 없을까? 포스터는 ‘좋은 것’이 제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든 기회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고 한다. 오랜 시간 공고하게 편향되어 있는 인식의 틀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서야 하는데 문화라는 시스템이 발목을 잡는다. 능력 있는 사람이 나서지 못하도록 한다.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는 꼴이다.
 
능력보다 공동체 중시하는 도덕성에 무게
무엇보다 이런 사회구조는 도덕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능력보다 도덕을 우선한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도덕적인 사람이 더 인정 받는다. 여기서 도덕적이란 공동체를 우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공동체에서는 어떤 사건으로 질서가 흐트러지고 어지러워지면 원인이 관계 없이 질서를 깬 사람을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장 회사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장이 좌천 당한 이유다.
 
요즘 이런 ‘옛날 옛적 성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한정된 땅에서 살아가던 예전 농촌과 같은 상황이 되어가는 까닭일 것이다. ‘현대판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거나 줄어들다 보니 몸에 밴 좋지 않은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물귀신 문화’가 다 같이 못 사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서광원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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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