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살아있는’ 어린이과학관 꿈 부풀었는데, 누더기 졸작으로

[SPECIAL REPORT] 연 27조 공공건축 시장 요지경 
국립어린이과학관의 설계 공모 당선작(왼쪽)과 현재 모습. 기본 콘셉트가 사라졌다. [사진 스케일]

국립어린이과학관의 설계 공모 당선작(왼쪽)과 현재 모습. 기본 콘셉트가 사라졌다. [사진 스케일]

 

날씨·주변환경에 반응하는 건물
착공하자 발주처 멋대로 지어

지난해 개관한 서울 종로구 국립어린이과학관은 건축설계공모전을 거쳐 지어졌다. 그런데 당선작과 실제로 지어진 건물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공모전 당선작은 스케일 건축사사무소와 선진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가 공동 제출한 ‘살아 있는 과학관’이었다. 건축가 하태석(스케일 대표)에 따르면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 건축이 서로 융합해 관람객에게 반응하는 건축물을 짓겠다는 콘셉트였다. 날씨와 움직임에 따라 입면이 변하게끔 디자인했지만 완공된 건물은 화강암 패널로 뒤덮였다. 어디서 봄직한 관공서 건물이 세워졌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하태석 건축가는 “공사 과정에서 지나친 설계 변경이 있었다”며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원안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 지어졌다. 전시를 하기 위한 창고 같다”고 토로했다.
 
공모에서 뽑혔을 때만 해도 어린이들이 건축물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체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알고리즘과 센서, 사물인터넷, 로봇공학이 건축과 만난 결과물이었다. 날씨와 주변환경에 반응해 스스로 변화하는 건축물이자 어린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관이 탄생한다며 미디어의 관심도 높았다.
 
하지만 공사를 위한 실시 설계에 들어가자 콘셉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주처 공무원들에게 당선작은 익숙하지 않은 건축물에 불과했다. 어렵게 아이디어를 지켜 냈지만 공사가 시작되자 공사비 문제가 불거졌다. 과학과 정보통신기술, 건축이 융합한 건축물을 짓기에는 공사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최저가 입찰로, 가장 싸게 지을 시공사를 선정한 탓이다. ‘살아 있는 과학관’을 구현하기 위해 첨단 기술이 필요한데도 고려되지 않았다. 건축가는 “처음에는 대안을 만들어 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단 변경이 시작됐고, 지금 같은 건물이 지어졌다”며 “지난 2년간 이 프로젝트에만 매달렸는데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공공건축 명작 사례는 국립어린이과학관과 다른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젊은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뽑고서 실제로 지어질 수 있게 힘을 실어 줬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의 경우 1969년 열린 국제 공모에서 30대 무명 건축가의 안을 뽑았다. 덕트와 같은 내부 설비를 외관에 설치하고 내부를 비우는 이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끝내 구현됐다. 그리고 당시 30대 무명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김종성 건축가(서울건축 명예대표)는 “당시 국제 공모전을 열기에 앞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뽑기 위해 담당 공무원이 전 세계를 돌며 건축가들의 참여를 독려했었다”며 “그 결과 49개국 681개의 설계안이 제출됐다”고 덧붙였다. 김인철 건축가는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원형 지붕)도 공모전을 거쳐 당선된 신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안을 끝까지 지원해 완성시켰고 오늘날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며 “공모전은 좋은 아이디어를 뽑기 위해 여는 것이고, 당선작을 뽑아 놓고 발주자 마음대로 바꾸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은 1988년부터 좋은 공공건축물을 동네마다 짓겠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로, 지사가 위촉한 커미셔너가 능력 있는 건축가를 추천하거나 설계 공모를 진행한다. 명망 있는 커미셔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좋은 공공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노력한 결과 81개의 공공 건축물이 지어졌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외국의 여러 도시들에서는 공공건축을 통해 동네 공간환경을 개선하고 시민 삶의 품격을 높이려는 정책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은화 기자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