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새 도시 정착하기 전에 마스터플랜 뒤집는 건 말도 안 돼”

[SPECIAL REPORT] 연 27조 공공건축 시장 요지경
조항만 교수

조항만 교수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이례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건축사협회·한국건축가협회·새건축사협의회·한국여성건축가협회 등 건축 관련 네 단체가 한목소리로 “공공건축 건축설계 공모 제도를 개선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신청사 국제설계공모전 과정에서 “짜고 치는 심사”였다며 심사위원장인 건축가 김인철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 이후(중앙일보 11월 1일자 18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건축 단체의 문제 제기를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고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7년 공모전 당선 조항만 교수
구릉 살린 옥상정원 등 열린 공간
국민 위한 건물이 핵심이었는데 …

마스터플랜은 건축 허가용 전락
우뚝 솟은 신청사는 행안부 갑질


 
조항만 서울대 건축학과 부교수는 현재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의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이다. 정부청사가 들어설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 국제공모전이 2007년 열렸고, 그의 아이디어가 당선됐다. 엄밀히 말하면 조 교수가 지사장으로 있던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미국법인과 서울 본사, 미국의 조경 디자이너 다이애나 발모리(1932~2016)가 팀을 이뤄 응모한 결과였다. 이들이 제안한 안은 ‘플랫 시티, 링크 시티, 제로 시티(Flat City, Link City, Zero City)’였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연결돼 있으며 지속가능한 에너지 효율성을 지닌 도시라는 의미다.
 
마스터플랜은 그야말로 도시의 틀을 짜는 기본계획이다. 땅을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쓸 것인지, 그 땅에 지어질 건축물도 어떤 형태와 규모로 지을 것인지 총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담긴다.
 
최근 열린 신청사 공모전에서는 이 기본계획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숱하게 제기됐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만든 설계 공모 지침서를 보면 ‘기존 청사에 적용했던 높이제한은 적용하지 않는다’거나 ‘기존 청사 간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청사 배치 계획’을 요구하는 등 개방적이고 위계 없는 도시가 되도록 구상한 마스터플랜에 어긋나는 내용들이 숱하게 나열돼 있다. 정부가 나서서 갖춘 도시의 기본계획을 정부가 나서서 마음대로 깬 꼴이다. 조 교수는 “이번 신청사 공모전의 기획 자체가 잘못됐다”며 “질문 자체가 잘못됐으니 오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일갈했다.
 
마스터플랜을 세워 놓고 왜 안 지키나.
“마스터플랜이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라 요식 행위가 된 지 오래다. 마스터플랜을 짜는데 건축 허가용이다. 백년지대계라 생각하지 않고 허가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다. 정부나 시공사는 마스터플랜의 경우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언제든지 재해석이 가능하고 바뀔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세종시 중심행정타운의 경우 지구단위계획과 토지사용계획이 숱하게 바뀌었다. 그때 그때 이해타산에 맞춰서다.”
 
원안은 뭐였나.
“정부청사가 공무원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건물, 국민을 위한 집이라는 게 가장 핵심이다. 주민과 공무원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수만 평의 옥상 공원이 있고, 건물은 필로티로 띄워 놓아 누구나 자유롭게 지상을 통행할 수 있게 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청사였다. 평평하고 열린 건물을 위해 건물의 높이를 최대 8층으로 제한했다. 또 청사만 덜렁 있는 게 아니라 상업지구·공원·문화시설·복합주거시설 등을 청사와 얽히며 연결되게 했다. 원래 땅은 굉장히 아름다운 구릉지였다. 그래서 이를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해 건축물의 옥상정원과 구릉지가 흐르듯이 연결되게 했다.”
 
청사의 구불한 형태 외에 지켜진 게 없는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심하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구릉지는 다 밀어 버렸다. 상업건물과 주상복합 등이 들어섰어야 할 청사 주변의 땅은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주차장이 됐다. 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할 청사의 경우 보안을 이유로 펜스가 쳐졌다. 옥상정원도 제한된 시간에 확인증이 있어야 올라간다. 건물의 옥상정원 아래에 주차장을 두고서 자동차가 구릉지를 타고 건물까지 들어갈 수 있게 계획했는데 다 없앴다.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안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원안을 최대한 지켜주는 법적인 장치나 당선자가 저작권을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없다. 국민 세금을 써서 연 공모전의 당선작을 특별한 이유 없이 이리저리 바꾸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가적인 낭비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어떤 안이 당선돼야 했을까.
“개인적으로 당선작이 1등으로 뽑혔다는 자체가 치욕적이다. 마스터플랜 상 모든 블록의 높이가 정해져 있는데, 신청사를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르게 짓겠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행정안전부가 가운데 부지를 요구했다면 그야말로 ‘갑질’이다. 기획 단계부터 잘못됐다. 새 도시를 만들겠다고 정부 주도로 마스터플랜을 뽑아놓고, 새 도시가 정착하기도 전에 이를 틀어 버리는 공모전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나.”
 
현재 청사가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동선이 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동선이 긴 게 아니라 건물이 큰 거다. 1만4000명이 근무하는 연면적 60만4248㎡(약 18만3000평)짜리 집이다. 워낙 크니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해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수용인원이 많은 건축물인 미국 펜타곤도 서너 개의 원을 중첩시켜 오각형으로 만들었다. 세종 청사 역시 반경 800m짜리 원들을 겹치듯 배치해 구불구불하다. 건물을 일직선으로 뒀다면 끝과 끝이 더 멀었을 거다. 건물이 워낙 크니 색을 달리 써서 구분할 수 있게 했다. 도시에서 길을 잃어도 청사를 보면 어디쯤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말이다. 필로티로 띄워진 건물 바닥에 LED로 안내 정보가 흐르게도 했는데 공사 과정에서 다 사라졌다.”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까.
“원안을 바탕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당선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건축대학원에서 아예 한 학기 동안 이 공모전 안을 발전시키는 연구를 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많았다. 처음 마스터플랜 공모전을 했을 때가 노무현 정부 때였다. 권위적이지 않은 청사, 국민의 집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한은화 기자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