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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인재풀로는 성공 못 한다 … 유리천장 허무는 오슬로

여성 인재 활용, 외국선 어떻게 하나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귀찮은 일을 맡기 싫어한다.” “좋은 사람은 이미 누군가 채갔다.”

노르웨이 오슬로 알루미늄 제조 업체
중공업 업체서도 젠더 평등 앞장
재택근무 도우려 집에 인트라넷

미국 뉴욕 생명보험·IT 업체
남자도 육아휴직 사용 권장
출산 휴가 중 임원 승진하기도

일본 도쿄 제약회사
2020년 여성 임원 비율 30% 목표
육아 중인 직원 위해 저녁 회식 없애

 
영국 경제·에너지·산업 전략부는 최근 FTSE 350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 이사, 여성 임원이 없는 이유에 대한 최악의 답변을 모아 발표했다. 한국 기업에선 빈번한 핑계다. 세계 곳곳에서 정부와 학계, 기업이 합심해 여성 리더십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젠더 균형을 시간에 맡기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액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각기 다른 단계의 액션이 한창인 세 도시를 갔다. 젠더 평등 모범국 노르웨이 오슬로, 다양성 확보에 사활을 건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 미국 뉴욕 그리고 한국과 함께 만년 열등생으로 꼽히다 최근 빠른 변화가 감지되는 일본의 도쿄다.
 
 
젠더 평등 모범 노르웨이 오슬로
 
 ’젠더 다양성 확보 위해 회사 전체가 노력한다“ 레네 나브스타드 노르스크 히드로 글로벌인사담당그룹장

’젠더 다양성 확보 위해 회사 전체가 노력한다“ 레네 나브스타드 노르스크 히드로 글로벌인사담당그룹장

오슬로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한적한 호숫가에 위치한 노르스크 히드로 본사. 중정이 있는 구조의 건물은 도서관처럼 장중하다. 히드로는 1905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알루미늄 기업으로 에너지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남성의 세계’로 분류되는 중공업 분야지만 히드로는 노르웨이에서도 손꼽히는 젠더 평등 기업이다. 이사회 40%가 여성인 것은 물론 상위 경영직 톱 200의 여성 비율은 30% 정도다.
 
레네 나브스타드 글로벌 인사담당 그룹장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연구원 출신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입사해 6년을 연구분야에 있다 2005년 히드로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기술 조직장으로 발탁됐다. 그가 맡은 업무는 젠더 균형을 포함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우고 달성을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다.
 
나브스타드 그룹장은 “젠더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기업으로서 성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공을 위해선 인재풀 전체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기용해야 하는데 반쪽 풀에서 고르면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히드로는 이를 추진하면서 다양성이 혁신과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가 꼽은 성공 사례는 다양했다. 나브스타드 그룹장의 커리어도 그중 하나다. 기술 조직은 남성 지배적인 분야였지만 여성 보스가 나와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여성 보스는 필드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며 “가령 우리 회사에 환경 이슈의 중요성을 부각한 게 여성 리더들이었다”고 말했다. 2020년께 알루미늄 생산 등에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는 것이 히드로의 목표다.
 
여성 자원이 역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기업이 인재를 보는 시각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들며 “혼자 두 아이를 키우게 됐을 때 회사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회사 인트라넷을 설치해줬다”고 말했다. 인재를 지켜야 할 주요 자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다. 나브스타드 그룹장이 익숙했던 실험실에서 벗어나 조직을 맡도록 격려한 것도 회사였다. “여성 직원은 자의식이 강한 경향이 있어 중책 앞에서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많다”며 “여성 리더를 고를 때 역량이 되는 사람을 찾아 적극적으로 임무를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리더의 40% 여성 목표 ... 현재 38%까지 올렸다“ 린네 베케 DNB 젠더 다양성 담당 팀장

’리더의 40% 여성 목표 ... 현재 38%까지 올렸다“ 린네 베케 DNB 젠더 다양성 담당 팀장

노르웨이의 가장 큰 은행인 DNB도 최근 여성 인력을 위한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년 전부터 팀단위 KPI에 젠더 균형 항목을 넣었다. 팀장급 이상인 레벨4 이상의 고위직은 올해 상반기 기준 38%에 달한다. 2008~2016년까지 25%대를 맴돌다 대폭 증가한 것이다.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주가는 128.4크로네에서 152.1크로네로 뛰었다. 여성 리더십에 신경쓰는 것만큼 실적에서도 좋은 성과를 보이면서 여성 인력 활용 드라이브에도 힘이 실렸다. 노후 대비에 취약한 여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DNB그룹 인사담당자인 린네 베케는 “가장 큰 성과는 여성 인재가 오고 싶어하는 기업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인력이 부족한 부문에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금융 IT 분야 여성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 여성 개발자 모임을 후원하고 네트워킹 행사를 진행하는 게 대표적이다.
 
 
다양성 확보에 사활 건 미국 뉴욕
 
’남성 위주 시각서 벗어나 새롭게 사업 보는 힘 생겨“ 엘리자베스 니에토 메트라이프 수석부사장

’남성 위주 시각서 벗어나 새롭게 사업 보는 힘 생겨“ 엘리자베스 니에토 메트라이프 수석부사장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미국 뉴욕의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대표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가 미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메트라이프 빌딩이다. 지난달 초 이곳에서 만난 엘리자베스 니에토 수석부사장은 “성별, 인종, 세대가 다른 다양한 직원들이 조화를 이룰 때 기업 수익이 늘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며 다양성을 강조했다. 특히 낮은 비율의 여성 임원을 늘리면서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사업을 보는 힘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최근 적극적인 여성 지원 정책을 펴온 메트라이프는 그룹 내 여성임원 비중이 업계 평균(18%)보다 높은 26%에 이른다. 미국에선 세계적인 기업을 중심으로 여성 임원 늘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여성 임원 비중이 소폭이지만 꾸준하게 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올해 미국 기업 내 최고위급 여성임원 비중은 지난해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자문사인 플레시먼힐러드의 델러 스위트먼 사업기획 총괄은 “기업의 성과에도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은 물론 기업의 고객사나 소비자로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임원 비중이 낮거나 백인 남성 위주의 조직은 기업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여성 임원을 늘리기 위해 기업들은 워킹맘을 위한 육아 지원에 신경쓴다. 회계법인 KPMG의 제니 프리드먼은 “26년 전 회사 입사 때 첫 질문이 ‘자녀가 있는데 회사를 다닐 수 있느냐’였다”며 “그때와 비교하면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엔 급하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 땐 회사에서 보모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백업 차일드케어)도 운영한다. 니에토 부사장 역시 “메트라이프는 여성뿐 아니라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권장한다”고 말했다.
 
’워킹맘 위한 육아 지원 비용 아닌 장기투자“ 티아 사일러스 IBM 부사장

’워킹맘 위한 육아 지원 비용 아닌 장기투자“ 티아 사일러스 IBM 부사장

IBM은 2012년 설립 100년 만에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버지니아 로메티가 경영을 맡으면서 변화의 바람을 절감하고 있다. 컴퓨터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에 투자해 일찌감치 미래 먹거리를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메티 CEO는 여성 지원 정책도 적극적이다. 올해 미국 여성임원협회(NAFE)가 뽑은 ‘여성임원이 일하기 좋은 회사’ 톱10에 뽑혔다. IBM 본사에서 만난 티아 사일러스 부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탁아시설, 육아휴직 등 여성에 대한 지원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가 지난해 12월 부사장으로 승진했을 때 출산 휴가 중이었다. 그는 “누구나 회사에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잊혀질까 두려워하지만 IBM은 승진 후보자가 출산 휴가로 3개월 지나야 복귀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일러스 부사장은 “제대로 된 장기 투자가 이뤄져야만 여성임원의 유리천장 문제를 없앨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임원 빠르게 느는 일본 도쿄
 
젠더 관련 모든 지표에서 한국과 번갈아 가며 꼴찌를 하는 나라. 여성의 경제적 평등과 관련해 일본도 한국만큼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열등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13년 2.7%에 불과했던 상장사 여성 고위 임원 비율은 올해 기준 10.3%로 대폭 늘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만들어낸 조어인 ‘워머노믹스(Womenomisc)’로 상징되는 여성 정책 등 다양한 움직임의 결과다. 아베 내각은 2020년 여성 고위 임원 비율을 30%로 만든다는 목표다. 인구가 줄면서 현재 7700만 명인 노동 인구(15~64세)가 2065년께 4500만 명으로 쪼그라든다는 전망에 여성 고용이 강조된 결과이다. 재앙에 가까운 저출산이 고민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대표적 제약회사인 다케다(武田)는 이 스케줄보다 조금 앞서가고 있다. 매니저의 여성 비율은 10% 이상이고 확대 속도가 가파르다. 매니저 승직 직전 인력 중 여성 풀이 탄탄하다. 조만간 매니저의 30%를 여성으로 채우는 게 목표다. 일본 직원 중 여성 비율이 28%인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다. CEO 등 14명으로 구성된 최고위 집행 임원 중에는 2명(14%)이 여성이다. 2014년 크리스토퍼 웨버가 CEO로 취임하면서 KPI에 다양성 지표를 넣고 조직 공동 목표로 삼은 결과다. 연공서열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매니저 이상 직책(상무·전무 등)도 없앴다. 매니저는 사실상 해당 업무의 최종 결정자다.
 
’연 2회 CEO주재 회의서 젠더 다양성 목표 점검“ 아카츠 에미코 다케다 인사·조직 개발 담당 그룹장

’연 2회 CEO주재 회의서 젠더 다양성 목표 점검“ 아카츠 에미코 다케다 인사·조직 개발 담당 그룹장

도쿄 긴자에 위치한 다케다 제약 본사에서 만난 아카츠 에미코(赤津惠美子) 인사·조직 개발 담당 그룹장은 “글로벌 회사의 경쟁력, 혁신은 조직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혼란스러웠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CEO 주재로 1년에 두 번 열리는 회의에서 젠더 균형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아카츠 그룹장은 “이런 회의는 구성원에게 굉장한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귀뜸했다.
 
다케다의 여성 인력 정책은 2010년부터 3단계에 걸쳐 진행돼 왔다. 이들이 ‘워라인(Work Life Integration, 일과 삶의 통합) 전략’으로 부르던 관련 정책은 웨버 CEO 취임 이후 ‘다양성과 통합(Diversity and Integration) 전략’으로 변신해 전사적 아젠다로 부상했다. 아카츠 그룹장은 “18% 정도였던 남성 육아 휴직 사용 비율이 현재는 70%로 올랐다”며 “코어 타임(필수 근무 시간) 없는 유연근무제를 비롯해 육아 맞춤 서비스 등 복지 프로그램도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다케다에 합류한 히라타 치카(平田千佳) 윤리·법무 담당 그룹장은 “여성 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육아 부담이 있는 직원을 배려한다고 중요한 출장이나 업무에서 배제하는 일은 없는지 면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이들이 참석할 수 없는 저녁 회식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히라타 그룹장은 또 “핵심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고 분석해 정직한 의사 결정을 내리면서 조직이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게 임원의 주된 업무이고 여성은 이 능력이 뛰어나 여성 임원에 거는 기대도 높다”고 말했다.
 
오슬로·도쿄=전영선 기자, 뉴욕=염지현 기자 azul@joongang.co.kr
한국언론진흥재단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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